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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Jun 14. 2020

당신도 추억의 책이 있나요?

이병률 여행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

이 책은 조금 외롭기도, 한편으론 조금 따뜻하기도 한 책이다. 스물넷 무렵에 한창 좋아했던 책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십 년 만에 꺼내 읽게 됐다. 큰 아빠가 갖고 계신 석모도의 별장에서 조용히 하루 쉬고 온 지난 주말, 나름 여행 기분을 내고 싶어 이 책을 골라갔던 것 같다. 흔히 생각하는 별장의 이미지와는 먼 서까래로 된 낡은 한옥주택에 마당이 있는 허름한 집이지만 그래도 큰아빠 큰엄마가 이십 년 동안 애정으로 열심히 가꾸신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어서 사랑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좀 이른 점심으로 고기를 구워 먹고 한바탕 치운 다음 남편과 아이도 낮잠에 빠져 조용한 오후 1시, 나는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붙여놓고 그곳에 비스듬히 앉아 발을 뻗고 책을 읽었다.


이십 대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그냥 외로움에 대한 단상 정도로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외로움도 고민도 많은 사람이어서 그 외로움의 독백이 마냥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이병률이라는 시인은 사람을 참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 분인 것 같다. 여행을 좋아하는 데는 풍경, 휴식, 뭐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을 테지만  언제나 그의  여행의 이유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인간 소믈리에'라는 그의 표현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행여 나와 정반대의 사람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해보고자 하는 그의 마음씨가 책에서 가득 묻어난다. 그는 특히 20대에 꼭 혼자 여행을 해보아야 한다는 말도 남겼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잊고 있었던 혼자 여행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 나도 스물아홉 혼자 제주로 떠났었지. 단 한 번이었지만 혼자 밤비행기에서 내려 렌트를 하고 혼자 숙소에서 삼일을 지내고 혼자 한라산을 오른 그 기억. 비록 잊고 있었지만 분명 알게 모르게 내 인생에 큰 용기와 깡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도대체 이 책이 무엇 이길래 왜 이렇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자꾸 나의 20대의 어느 날로 불쑥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같은 책을 읽고 사람마다 여러 개의 반응이 있을 수 있지만, 나라는 한 사람이 20대와 30대에 각각 같은 책을 읽고도 깨달음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사실 몇 달 전 서재의 책장이 배불러오면서 몇 년 간 읽지 않을 책들은 싹 정리해서 지인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고 중고 서점에 팔기도 했었는데, 이 책도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남기기로 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가끔씩은 이렇게 오래된 책을 꺼내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엄마 컴퓨터 그만하고 사탕 달라고요~"를 외치며 내 옷깃을 잡아 끄는 다섯 살 소녀와 매일 아침 북적이는 지하철, 그리고 회사 책상 위의 서류들 틈에 파묻힌 정신없는 현실 속에서 가끔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래도 삶이 조금은 영화 같고 또 메말라진 감성이 살아날 수도 있을 테니. 혹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겠지.


오늘 밤은 2015년 가을처럼 홀로 제주로 떠나는 꿈을 꾸길 기대 하며 조금 일찍 침대에 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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