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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Jun 18. 2020

이맘때쯤 생각나는 음식이 있나요?

날이 더워지면 찾게 되는 나만의 소울푸드

야호! 당분간은 스타킹 빨래에서 해방이다. 날이 금세 더워져서 오늘부턴 맨다리로 출근했기 때문이다. 동면에 들어갔던 에어컨도 이제 깨어나 바쁘게 일하고, 찬장 안에 숨어있던 휴롬착즙기도 어느새 식탁 위에 우아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렇게 더위가 시작될 때쯤 나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아마 다들 여름에 즐겨먹는 냉면, 수박, 혹은 삼계탕 같은 걸 떠올리겠지만 아니다. 콩국수나 팥빙수? 그것도 아니다. 바로 ‘콥샐러드’다. 언젠가 구내식당에서 매일 밥을 먹는 사촌 오빠가 해 준 말이 기억난다. 구내식당 샐러드 코너는 반년 동안 아무도 없이 파리를 날리다가 6월부터는 줄이 입구까지 늘어진단다.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가끔은 재료가 금방 동이 나서 줄을 서도 못 먹을 때도 있단다. 이쯤이면 당신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여름이 다가올 때 우리가 (특히 여자들이) 제일 많이 찾는 음식은 바로 샐러드란 것을 말이다.

내가 콥샐러드를 알게 된 건 한 십 년 전쯤이었나. 일일 요리수업에서였다. 요리연구가이자 보자기 포장법을 연구하는 선생님과 회사 동호회 담당자가 인연이 닿아 어떻게 한 번 수업을 주선했다. 지금은 인사동에서 한복과 보자기를 팔고 우리 문화를 알리는 멋진 일을 하고 계신 그분께 얼떨결에 나는 수강생이 되어 콥샐러드라는 것을 처음 배웠다. 당시의 나는 어려서 건강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했고 샐러드를 밥으로 먹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종류의 샐러드가 있다는 것도 알리 없었다. 콥샐러드는 'Cobb'이라는 셰프가 주방에서 남은 야채로 만든 샐러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내 생각엔 ‘찹샐러드’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야채와 과일 등을 그냥 엄지손톱 크기 정도로 착착 썰어서 소스에 버무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다양한 재료를 같이 버무려 먹는 게 예상보다 꽤 맛있기도 했거니와 선생님 표 특제 소스가 새콤달콤하면서도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나는 그날로 콥샐러드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또한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알려주신 도시락 보자기 포장법은 받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씨가 손끝으로 전해져서 나는 콥샐러드를 먹을 때마다 그 요리수업을 받던 저녁의 따뜻한 공기가 느껴진다. 비록 단 하루였을지라도.

아무튼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콥샐러드를 백 번도 넘게 만들어 본 나의 경험으로 감히 말하자면, 가장 최고의 조합은 삶은 달걀과 방울토마토, 오이, 사과, 유기농옥수수콘(건강을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옥수수는 먹지 말도록 하자), 그리고 아보카도와 올리브다. 기호에 따라 달걀을 닭가슴살이나 두부로 대신해도 된다. 소스는 홀그레인 머스터드(요즘은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와 좋은 올리브오일, 화이트 식초와 꿀을 사이좋게 1:1:1:1의 비율로 섞어서 만드는데, 지금까지 내가 콥샐러드를 만들어 준 지인들 중에 이 소스가 싫다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렇게 소스까지 만들어 가지런히 섞고 나면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 식물성 지방 등 여러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한 그릇 음식이 되어 건강한 한 끼 식사로 제법 훌륭하다. 맛도 좋고 포만감도 있는데 다이어트에도 좋으니 한여름엔 더욱 자주 찾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콥샐러드는 또한 힐링에도 제격이다. 요즘은 칼라테라피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색색가지 예쁜 과일들을 접시에 담아 두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약간 좋아지는 효과도 덤으로 누릴 수 있다. 새빨갛고 영롱하기까지 한 토마토 옆에 까만 강아지 코를 닮은 올리브 한 주먹, 노란 옥수수알에 조금 더 연한 노란 속살의 사과. 보기만 해도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는 싱그러운 연두색 오이에 군침 도는 아보카도까지. 저마다 다른 색깔과 다른 태생의 재료들이 비슷한 크기로 썰려 버무려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만의 색깔도 모습도 잃지 않으며 최고의 맛을 선사하는 멋진 작품 같기도 하다. 사람들도 이렇게 자기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함께 아름답게 섞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여름마다 콥샐러드를 이렇게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세 식구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입맛 까다로운 남편도 샐러드는 언제나 마다하지 않고, 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다섯 살짜리도 이 “퍼먹는" 샐러드에는 환장하며 달려든다. 아이 것을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이 넉넉하게 한 그릇 만들어 각자 앞 접시에 덜어 먹기만 하면 되는 간편함에 비하면, 약간의 칼질 정도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진다. 재료 준비에 손이 좀 많이 가서 그렇지만 이 정도 정성은 들어가야 사람 냄새나는 좋은 음식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완성된 한 그릇을 향한 숭고한 수고의 손길은 분명 먹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거라는 어떤 믿음 같은 게 내겐 있나 보다.

저녁 바람도 뜨거워지려 하는 6월 중순의 저녁, 나는 오늘도 열심히 야채를 썬다. 그릇 맨 밑에는 여분의 아보카도를 숨겨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보카도를 좋아하는 딸에게 오늘은 결코 다 빼앗기지 않으리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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