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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Aug 19. 2018

뽀로로 없이 살 수 있을까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결심: 아기에게 동영상을 보여주지 않겠어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 지도 어언 3년. 그 사이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남들처럼 육아월드에서 정신없이 헤엄치며 살아왔다. 11월이 되면 그 아이가 벌써 두돌이 된다. 아이를 낳고 기른 지난 2년을 돌아보고 글로 정리해 보려고 하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TV다. 


남편이 게임과 TV를 워낙 좋아하고, 나 또한 자제력이 없기 때문에, 나는 "아이에게 두 돌까지 TV를 보여주지 말자". 라고 임신했을 무렵부터 남편에게 선포했다. 떨떠름해 하던 남편도,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서적들을 읽고 나더니 나와 의견을 함께 했다. 그래서 우리 집은 2016년 겨울 이후로 TV를 켜지 않고 살고 있다. 물론 아직 뽀로로 동영상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외식을 하러 백화점이라도 가면, 좌우 테이블에 앉은 아이들은 죄다 동영상을 보며 얌전히 밥을 먹고 있는데, 우리는 아이가 밥을 다 먹으면 심심하다고 난리를 치니 한 사람씩 교대하며 놀아주거나 장난을 받아줘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또, 날씨가 안 좋아 집에서 있어야만 하는 장마철에는, TV를 틀 수 없으니 오로지 책읽기 아니면 미끄럼틀, 숨바꼭질 처럼 체력이 요구되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해서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십분 공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생을 하는 것은, 뇌 발달의 황금기라는 이 24개월동안 동영상 말고도 느끼고 체험하게 해 주고 싶은 자극들이 많기 때문이다. 동영상을 보여주었다면 우리 아이가 이만큼 책과 색연필, 자동차를 좋아할 수 있었을까? 집의 모든 사물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모든 것을 장난감으로 갖고 놀 수 있었을까? 책의 내용들을 모두 외우고 알아서 척척 상황에 맞는 책을 가져올 수 있었을까? 엄마아빠의 몸은 상상 그 이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2년동안 동영상보다 더 귀중한 시간들을 선물해 주었다고 믿기에 후회는 없다. 얼마 전 영유아검진에서 아이의 언어, 인지 능력이 또래에 비해 높다고 나온 것도 나는 이 영향이 없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지금 발달이 빠르다고 나중에도 똑똑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제 날씨가 쌀쌀해지면 나도 우리 딸에게 뽀로로를 보여주기 시작할 것이다. 대신, 말도 잘 알아듣고 발음할 줄 아는 단어들도 늘어났으니 "하루에 20분", 시간을 정해서 약속을 하자고 설득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 동영상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들이 있다면, 2년만 힘을 내보시라고 응원하고 싶다. 이 의지력 약한 우리도 해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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