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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Sep 08. 2015

서른으로 가는 길

스물아홉 당신의 이야기



우연히 발견한 스물네살 나의 일기.
요즘 말로 버킷리스트라 부르는 반짝반짝한 꿈들이 쭉 곱게도 적어있다.

반가운 타이밍이다.
마침 내게 남은 이십대는 네 달이니까.
둥근 보름달이 네 번 뜨고 나면 이십대와 작별이다.
영원히 헤어질 것 같지 않았는데
그렇게 길었는데, 결국 헤어짐의 순간은 오는구나.

과연 버킷리스트는 몇개나 이루어졌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동그라미를 쳐 본다.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는 순간마냥 두근두근 하다.

선택 받은 몇 개의 노란 동그라미들이
마치 거르고 걸러 올라온 연기대상 후보들마냥

고귀한 포스를 뽐내고 있을 때, 나는 네 발짝 앞에 있는 서른에게 해줄말을 정리한다.

너를 만나면 해줄 말들.


스물 넷, 나는 뮤지컬을 배웠어
덜덜 떨리고 숨차는, 그래도 제법 간드러진 목소리로 녹음실에서 녹음도 했었지
뮤지컬 그리스에 나오는 '프레디마이러브' 라는 노래. 너도 들으면 아마 아 이노래구나 할꺼야

스물다섯의 나는 직장인 연극반에 들어갔어. 밤샘 연습이라는 것도 해보고 연극무대에도 섰어. 아마츄어 배우의 꿈을 이루었지

그리고 말야
제작년에는 내가 번 돈으로 당당히 파리에 갔어
그토록 보고싶었던 고흐 아저씨 그림을 눈앞에서 오래오래 원없이 보고왔었어

참, 올봄부턴 한달에 한번 꽃꽂이도 배우고 있어
꽃내음을 맡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훨씬 힐링이 되더라
어버이날 어머니한테 직접 만든 꽃을 선물하는 그 감동을 너는 아니?

그리고 나는 요즘
다시 펜을 드는 날이 많아졌어
노트가 한장한장 채워질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라.
나의 소박한 일상을 특별히 간직할 수 있어서 그 어느때보다 즐거워.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익숙했던 시간과의 이별 앞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짠한 마음이 번져온다.


크나큰 돈이나 성공을 거머쥔 것도, 높은 자리에 오른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람을섬기고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운

나의이십대.

그래서 돌아보면 결국엔 감사한 마음이 든다.
힘든 날도 많았지만 그것조차 행복을 위한 비싼 과외같은 거였지 싶다.


감사 한조각슬픔 한조각절망 한조각희망 한조각

아메리칸퀼트에 나오는 대사처럼 나의 모든 이십대를 예쁘게 꿰어서 너에게 가져가고 싶다.

서른으로 가는 길,
나는 이렇게 또다른 이별과 만남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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