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도 갑질도 아닌, 보이지 않는 퇴사의 이유
심장마비처럼 부부의 관계가 뚝 끊기면서 결혼생활이 종지부를 찍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수년간 쌓인 작은 감정적 상처들로 피를 흘리다 결국 이혼으로 끝나고 만다.
『직장으로 간 뇌과학자』
갑작스러운 퇴사, 번아웃 때문도 갑질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왜 돌연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일까요? 위 인용문에 그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사직도 이혼과 비슷합니다. '갑자기' 그만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신경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는 이를 '마이크로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유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때로는 사소한 스트레스의 누적이 하나의 큰 사건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민 사직서에 상사는 적잖이 당황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그게 그렇게 힘드신가요? 누가 갑질을 하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요." 퇴사 면담에서도 이렇다 할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냥 좀 참아보자."라며 버틸 수야 있지만, 해결되지 않고 계속 쌓이기만 하는 상황을 오래 견디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조직문화도 잘 바뀌지 않기 때문이죠. 버티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이제 그만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퇴사에 당황한 사람은 상사일 뿐입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2023년)에서는 이런 상황을 '마이크로 스트레스(micro-stress)'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순간적 스트레스들이 누적되어 에너지 고갈, 건강 악화, 웰빙 저하를 초래하는 보이지 않는 힘." 대단한 하나의 사건이 아닌, 소소한 일들의 합입니다. 마치 퇴적물이 쌓이듯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에 겹겹이 쌓여갑니다. 그러나 한 번 만들어지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Rob Cross의 연구는 마이크로 스트레스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용량 소모형' 스트레스입니다.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자체를 갉아먹는 상황입니다. 갑작스럽게 바뀌는 업무 지시, 애매한 지시를 반복해서 받는 일, 끝없이 이어지는 미팅.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집중력과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감정 소진형' 스트레스입니다.
정서적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상황입니다. 리더의 변덕스러운 반응에 눈치를 봐야 하거나, 열심히 해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늘 불안해하는 동료 옆에서 일해야 할 때. 이런 환경에서는 동기부여가 사라지고 회복력도 약해집니다.
세 번째는 '관계 위협형' 스트레스입니다.
자존감과 소속감을 흔드는 상황입니다. 이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거나, 다른 사람은 칭찬받는데 나만 제외되거나, 피드백이라는 이름으로 인신공격을 당하는 경우. 미묘하지만 계속 반복되면 '나는 이 팀에 속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생산적인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의 차이는 '심리적 안전감'에서 온다.
구글의 인재분석팀(People Analytics)은 효과적인 팀의 비밀을 찾는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180개의 팀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생산적인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심리적 안전감'이었습니다. 시간 엄수, 목표에 대한 신념 공유 같은 다른 요인들보다도 서로에게 느끼는 신뢰가 훌륭한 팀을 만드는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심리적 안전감'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팀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통된 믿음입니다. "이 팀에서는 질문을 해도, 실수를 인정해도 괜찮아. 다른 의견을 제시해도 받아들여질 거야,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라는 신뢰가 깔려 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훌륭한 성과는 월급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물질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사람은 결국 정서적 욕구를 채우려 합니다. 이는 사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조직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월급은 훌륭한 성과의 필수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직원을 관리하는 자리에 있다면 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월급, 그것만으로는 다른 조건들을 상쇄시킬 수 없습니다. '다른 데 갈 만한 곳이 없겠지.'라는 생각은 착각일지 모릅니다. 단기적으로는 높은 연봉과 복지로 좋은 인재를 붙잡아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개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는 회사가 필요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언제든 다른 길을 가기 위한 능력들도 채워가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직장은 없습니다. 어디에나 힘든 일은 있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행복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상한가?', '당장 나가면 뭐 먹고살지?', '다른 데도 마찬가지지 뭐.' 이렇게 생각하며 버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때로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이 나를 갉아먹는 곳은 아닌지, 그 사람이 나를 소모시키는 사람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합니다.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때로는 떠날 수 있는 것이 용기도 필요합니다.
[참고문한]
- 『직장으로 간 뇌과학자』메디나, 존 (김미정 옮김). 프런티어, 2024.
- Edmondson, A. (1999). Psychological Safety and Learning Behavior in Work Teams.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44(2), 350-383.
- Cross, R., & Dillon, K. (2023). The hidden toll of microstress. Harvard Business Review. https://hbr.org/2023/02/the-hidden-toll-of-microst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