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고 있지만 보지 않고 있다

두개골 안에 긷힌 뇌가 세상을 보는법

by Iro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놀라운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데이터를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139p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마주치고 다양한 세상을 바라봅니다. 출근길 스쳐 지나간 사람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이어진 가게들, 회사 복도에 걸린 그림들, 그리고 스마트폰 속 영상들까지. 이 중 얼마나 기억하고 있으신가요? 매일 지나가는 복도의 바닥의 무늬, 매일 타고 내리는 엘리베이터 문의 색깔, 분명 눈으로는 보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럼 좀 더 가까운 것들은 어떨까요? 오늘 함께 일한 동료의 옷 색깔, 점심 메뉴로 나왔던 반찬의 종류, 5분 전 내가 했던 생각은 기억하시나요?


조금 전까지 마주 보고 대화했던 사람인데, 매일 출근길에 지나치는 풍경인데, 왜 막상 떠올려보라고 하면 생각나지 않을까요?


오늘은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그리고 그런 뇌를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뇌를 쓰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갈 때 우리는 보지 않고도, 때로는 핸드폰을 보면서도 익숙하게 내려갑니다. 매일 다니는 출근길은 어디로 가야 한다는 생각 없이도 발이 알아서 찾아갑니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은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 듯 금세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계단이 한 칸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없을 때, 익숙한 보도블록이 새것으로 바뀌었을 때, 출근길에 노래 부르며 지나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제야 뇌는 이 변화를 의식하며 주의를 쏟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생각보다 뇌를 많이 쓰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일은 자동적으로 처리됩니다. 예상 밖의 변화가 있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일이 아니라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낀 에너지는 위기 상황에서 즉시 동원되어 생존 확률을 높입니다.




우리 눈은 카메라처럼 세상을 보고 있지 않다.


뇌는 영화처럼 모든 장면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대부분의 정보는 우리의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자동으로 필터링됩니다.


대신 뇌는 끊임없이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합니다. 감각 정보가 예측과 다르면 의식이 작동해 오류를 수정합니다. 우리 뇌가 이런 방식으로 설계된 것은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가까이 접근하는 사자를 보고 의식적으로 처리한 뒤 움직이면 이미 늦습니다. 부족한 정보라 할지라도 빠르게 판단해 도망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눈은 보고 있지만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것은 의식적인 영역으로 들어오기 전에 사라집니다.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정보는 처리하지 않는 편이 뇌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에 시선을 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위험을 알아차리는 것만큼이나, 그의 행복한 얼굴과 평범한 하루를 기억하는 것도 소중한 일이니까요.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 뇌를 깨워라!


자주 쓰지 않는 뇌의 부위는 신경 연결이 약해진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랜 기간 뇌가 잘 기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일상 속에서 이런 '뇌 근력 운동'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 매일 걷던 익숙한 길 대신, 낯선 골목으로 퇴근해 보기.

- 나와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과 대화하며 '생각의 틀' 깨기.

- 왼손으로 양치질하거나 컵을 들어보며 뇌 회로 자극하기.

- 악기나 외국어처럼 뇌의 새로운 영역을 사용하는 취미 갖기.

- 평소에 싫어하거나 꺼려졌던 것에 도전해 보기.

-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이색 음식의 맛 경험하기.


이 방법들은 뇌 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해 주고,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안 할 이유가 없겠죠? 물론 매일 하는 것은 뇌에 피로감을 줄 수 있으니 가끔씩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수도 없이 걸었던 동네 골목길, 과연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우리 동네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길을 가다 없어진 가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업종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하고 남편과 머리를 맞댄 뒤에야 겨우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모르고 있다는 생각조차 잘하지 못합니다. 익숙한 것들은 자동으로 필터링하는 뇌의 특성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끔은 의식적으로 주변 풍경을 바라보세요. 익숙함에 놓치고 있던 소중한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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