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책과 뇌

디지털은 주지 못하는 것들

by Iro


레비틴은 아이들이 주의를 빼앗는 일련의 자극들에 익숙해진 나머지 뇌가 사실상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에 내내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합니다. 이 호르몬들은 대개 싸움과 도피, 스트레스와 관련 있지요.
이 아이들의 나이는 불과 서너 살이고 때로는 두 살 이하일 때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엔 수동적으로 자극을 요구하게 되지요. 자신들보다 훨씬 나이 많은 아이들에게나 걸맞은 자극을 규칙적인 간격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책으로』

요즘엔 주로 유튜브로 음악을 듣습니다.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찰떡같이 알고 좋은 노래를 계속 틀어주니까요. 그런데 한 번씩 마음에 들지 않는 노래가 나옵니다. 서둘러 다음 곡으로 넘겨보지만 얼마 못 가 또다시 '다음' 버튼을 누르곤 하죠. 마치 TV 채널을 돌리듯 음악을 넘겨대는 나를 발견합니다.


출근길엔 숏츠를, 설거지할 때는 유튜브를, 운동할 때는 오디오북을 틀어놓습니다. 눈과 귀는 쉴 틈이 없고, 손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서 떨어지지 않죠. 어떤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를 못 견뎌 의미 없는 자극들을 채워 넣는것 같기도 합니다. 단 몇 초의 공백조차 견디지 못하며 가만히 생각할 시간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끊임없는 디지털 자극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요.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뇌는 또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오늘은 우리의 주의를 흩트리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멀티태스킹의 달콤한 유혹


출근과 함께 메일을 확인하고 웹페이지를 열어 로그인을 합니다. 페이지가 로딩되는 사이 메일함으로 되돌아가 다음 메일을 열어봅니다. 그러는 사이 스마트폰이 울리네요! 알림 창을 확인하고는 컴퓨터 화면으로 돌아와 열린 창들 사이를 바삐 오고 갑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합니다. 여러분의 모습도 저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했으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걸까요? 그런데 웬일인지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그리 효율적이지도 않았고, 일을 빠르게 처리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멀티태스킹이라는 용어와는 달리 우리 뇌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없습니다. 한 번에 하나의 일에만 주의를 집중할 수 있습니다. 여러 일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는 것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착각할 뿐이죠. 게다가 여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전환 비용(Switching Cost)'입니다. 잦은 작업 전환으로 인해 각각의 일에 주의를 집중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됩니다. 이로 인해 작업 속도가 느려지고 오류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집니다. 그 비용 역시 생각보다 큽니다. 연구에 따르면,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전환 시 1~2초가량의 지연이 발생하며, 하루 평균 20-40% 정도의 생산성 저하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멀티태스킹으로 주의력과 에너지를 빼앗아간다는 걸 알면서도 왜 쉽게 멈추지 못하는 걸까요? 바로 뇌의 도파민 보상 시스템 때문입니다. 뇌는 이메일 확인, 스마트폰 알림, 새로운 정보를 탐색에서 얻게 되는 불규칙적인 보상을 기대합니다. 마치 언제 잭팟이 터질지 모르는 슬롯머신에 빠져드는 것과 같습니다. 한 가지 일은 지루하게 느껴지고, 멀티태스킹의 달콤한 유혹에 점점 더 빠져듭니다.




스마트폰이 아이들에게 더 치명적인 이유


이런 일은 비단 직장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도 멀티태스킹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반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그 안에는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다양한 놀거리가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대화, 그림 그리기, 뛰어놀기, 책 읽기, 상상하기 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자극들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침투는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걸음마를 떼고 세상을 만지고 느끼기도 전부터 스마트폰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빠른 보상에 익숙해진 뇌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됩니다. 도파민을 더 강하게 찾는 아이들일수록 중독에 더 취약해집니다.


성인이 된 우리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자극으로부터 지켜줄 사령관, 즉 전전두피질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충동을 조절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주의를 집중하는 이 부위는 아이들의 뇌에서 가장 늦게 발달합니다. 청소년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여 25세 전후로 완성되죠. '나 왜 이러고 있지? 그만 봐야 하는데'라는 마음의 소리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다들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어떻게 안 줄 수가 있을까요. 이미 봐버린 숏츠의 즐거움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쇼츠 그만 봐, 뇌 썩는데." 아무리 잔소리해도 끊어낼 수가 없습니다. 아직 조절장치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대신 책 읽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폭발하는 도파민 대신 오래 지속되는 즐거움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장기적인 노력과 주의집중으로 얻는 쾌감을 느껴보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사령관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정상적인 조절시스템을 갖출 때까지 어른들이 방패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뇌를 회복시키는 종이책 읽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과도한 멀티태스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뇌에서 전방대상피질(ACC, Anterior Cingulate Cortex)의 부피가 줄어들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ACC는 우리 뇌에서 감정 및 충동 조절, 그리고 주의 집중을 담당하는 부위입니다. 디지털 기기가 주는 끊임없는 자극은 단순히 산만해지는 것을 넘어 뇌 구조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ACC 회백질 밀도가 낮은 사람이 멀티태스킹에 더 쉽게 빠지는 것인지, 멀티태스킹이 뇌를 변화시킨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두 요소 사이의 관련성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와는 달리 종이책은 정보제공 이상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끝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종이의 무게감을 느끼는 물리적 경험은 텍스트에 대한 '정신 지도'를 만듭니다. "그 내용은 왼쪽 페이지 하단에 있었지"와 같은 공간적 기억을 함께 저장하는 것이죠. 그 결과 더 쉽고 정확하게 기억을 꺼내올 수 있게 됩니다.





책의 장점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고 계실 겁니다.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으니까요. 그럼에도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가 참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책 말고도 즐길 거리는 차고 넘치니까요.


드라마가 조금 더 보고 싶어도, 책을 많이는 읽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책 냄새와 오프라인 서점의 평온함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책장을 넘길 때 느껴지는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에 밑줄을 긋고, 필사할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은 다른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이 눈길을 빼앗고, AI가 책을 순식간에 내용을 요약하는 지금이지만, 책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LP판과 필름 카메라가 그랬듯 아날로그의 감성은 그대로일 테니까요.






- Rubinstein, J. S., Meyer, D. E., & Evans, J. E. (2001). Executive control of cognitive processes in task switching.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Perception and Performance, 27(4), 763–797.

- Loh, K. K., & Kanai, R. (2014). Higher media multi-tasking activity is associated with smaller gray-matter density in the anterior cingulate cortex. *PLoS ONE, 9*(9), e106698.

- Mangen, A., & van der Weel, A. (2016). The evolution of reading in the age of digitisation: An integrative framework for reading research. Literacy, 50(3), 116–125.

- 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 전병근 옮김, 어크로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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