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은 없다

너의 변화를 환영해

by GOMU

나의 전문가는 나

"엄마, 피나는 것 같아요."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하다. 울상 짓는 얼굴로 다가오는 오복이는 교정 중이다. 되도록 늦게 해주고 싶었지만 세상에 나오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한참을 기다리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 오복이는 아픈 이를 만지작 거리며 방에 들락날락하더니 피 가득한 웃음을 활짝 지으며 '뽑았어요' 자랑한다. 오복이와 오팔이는 현재까지 셀프 발치 중이다. 핀셋으로 살짝 잡아당기는 치과 발치 영상을 본 후로 말이다. 나름 기특한 상황에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 최애씨.

'친구가, 아들 이를 뽑아줬대. 흔들리는 이를 묶고 문을 닫았나 봐. 지금 누가 흔들리지?'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기대와 설렘이 느껴졌다. 대화를 들었는지 흔들리는 이를 소유하고 있는 오팔이는 울면서 나온다. 분명 방 안에서 놀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아빠, 내가 뽑을 거예요. 으아아 앙.' 미리 걱정하는 오복이를 보고, 최애씨 얼굴은 벌게진다. '미안해, 그냥 해본 소리야. 그래도 이가 신경 쓰이면 아빠한테 말해.' 포기하지 않고, 치과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 참아빠다.


치아요정/이 요정/이빨 요정 _ 아이들에게는 Tooth fairy 뿐이다


Tooth Fairy를 아시나요?

오복이 어린이집 시절, 6살이었다. - 나는 아이들의 키, 몸무게 등 정확한 기억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친정엄마와는 다르게. 오직 외우는 것은 생일이다. 주민번호도 가끔 헷갈려 최애씨에게 확인한다 - 오복이의 첫 이가 빠진 날, 아주 잠깐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 할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재료는 다 있었다. 가장 중요한 달러와 요정의 흔적을 남겨줄 반짝이 섀도 (glitter eye shadow) 그리고 글 쓸 줄 아는 손이면 충분했다.

결혼 전에는 미국드라마에서도 이빨 요정을 접한 적은 없었다. - 아마도 그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모른 체 넘어갔을 수도 있다 - 뉴질랜드에서 일주일간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난생처음 듣는 요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의 최애씨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외국에만 있는 요정인가. 별 게 다 있네. 이는 지붕에 던져야지.'하고 말이다. 그러던 내가, 결혼 후 아이들과 제대로 그림책 안에서 Tooth fairy를 만난다. - 오복이는 문자 그대로 tooth fairy로, 오팔이는 이 요정으로 가끔 부르고, 최애씨와 나는 이, 치아, 이빨 아무거나 부른다 - 그리고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의 동심에 요정을 추가한다.


다행히 그날의 기쁨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겼다


특명, 그를 조심하라

눈치 빠른 오복이를 위해 글씨체를 매번 바꾸고, 의심할 때면 표정관리로 대응하고, 달러가 떨어질 때면 홍콩 달러, 파운드, 위안 등 다 등장시켰다. 뭐를 해야 하는데 까먹고 찝찝함에 잠이 들 때면 최애씨가 다가와 '요정으로 변신하셔야죠'라며 나를 살렸다. 그렇게 3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오복이는 엄마 지갑의 익숙한 지폐를 보고 요정의 정체를 확신했다. '역시, 엄마였어. tooth fairy와 산타까지 미신이었어. 하나님도 미신인가.' 오복이의 첫 반응이었다. 어깨를 으쓱이고 혼자 중얼거리며 한 마디 더 한다. '미신 믿는 사람은 징크스 있는 사람이야.' 실망했나 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한 명은 졸업이다'와 '오복이가 크고야 말았다'는 후련함과 아쉬움의 두 감정이 동시에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 오복이가 다 컸네. 진심으로 기특해. 그런데 사람은 크면서 좋은 점도 생기지만, 아쉬운 점도 생기기 마련이야."

"아쉬운 점이 생겼네요. 엄마, 그래도 또 빠지면 베개 아래에 두고 잘래요."

"아니야, 오복아. 비밀은 밝혀진 순간 사라진단다."

"그럼 산타는 계속 찾아올까요?"

"응, 오실 거야. 말 잘 들으면."


불 꺼진 거실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한 요정이었다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어제. 오복이는 포카칩을 먹다가 놀란 눈으로 말한다. "어금니가 흔들리는 것 같아요." 별 거 아닌 말에 내 작은 마음에는 긴장감이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오복이의 행동이 예상되어, 어떻게 또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기어코 빠진 어금니를 예쁘게 솜으로 감싸고 있다. '오겠지'라는 혼잣말 같지 않은 혼잣말과 함께. 슬며시 다가와 엄마에게만 몰래 보여주듯 손을 펼쳐 보인다. "올 수도 있어요."라며 엄마에게 요정으로 다시 변신하라고 강요하듯 말에 힘을 준다. 안타까운 표정의 엄마를 몇 차례 확인하고, 이내 베개 밑에서 보물을 도로 수거하는 오복이다. 포기하고 잠든 아이는 새벽녘에 기침으로 잠을 설쳤다. 그런 아이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꼭 안아주고 보살폈다. 피곤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한 오복이는 어제의 속상함은 이미 잊은 듯했고, 그 모습에 정말 고마웠다.


등교하기 전, 오복이는 밝은 얼굴로 나를 안더니 속삭인다.

"엄마, 내가 똑똑해서 Tooth fairy 정체를 빨리 알게 된 거예요. 오팔이는 늦게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비밀로 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전혀 걱정 안 하는 엄마에게 듬직한 모습과 멋진 척하는 제스처 더하기 윙크를 날리고는 문을 닫는다.




대문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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