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발견

그의 눈동자가 슬프다고 말을 한다

by GOMU

"에잇, 이런 내용인 줄 알았으면 혼자 봤어야 해."

부끄러운 건지 마흔 넘은 남자는 눈에서 나오는 물을 닦으려 안경을 급히 벗는다. 그의 반대편에는 태어날 때부터 웃음과 눈물이 많은 여자가 울음소리를 음소거 모드로 전환하는 기술을 뽐내며, 가까이 있는 물티슈 한 장을 뽑아 흐르는 콧물을 막고 있다. 각자의 감정에 충실하고 있는 둘은, 서로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고 본인만의 zone에서 곧 사라질 감정의 여운을 붙잡고 있다.


우리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KakaoTalk_20231128_133044445.png -tvN홈페이지

아이들은 일찌감치 잠이 들었고, 회와 소주, 하이볼을 앞에 두고 각자의 편한 자세로 '울다, 먹다, 대화하다, 웃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물론, 안방의 문틈으로 빛이 침입하지 못하게 거실의 불은 꺼져있다. TV는 볼륨 '7'로 낮게, 한글 자막으로 설정되어 있다. 대화 중 한 명이라도 장면을 놓치게 되면, 상대방을 위한 배려 차원으로 드라마는 '10초 전'으로 되돌아간다.




최애씨는 우는 나를 이해 못 한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고여지는 눈물을 말이다.

뉴스를 보다 눈물 흘리고 있는 나에게 그가 묻는다.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우는 거야? 지~인짜 궁금해서 그래."

"모르지 나도. 그냥 나와. 이 생각, 저 생각, 이 상상, 저 상상 다하니 나오나."

달래면 더 울까 봐 그런가. 날 강하게 키우는가. 그의 달램의 방식은 두 가지다.

"엄마 슬프시다, 가서 안아 드려. 얼른."

리모컨을 누르듯 아이들에게 말하거나, 내 이마를 손바닥으로 톡 친다.

정말이지 멋짐이 철철철 넘치는 남자가 아닌가.


이런 최애씨도 우는 경우가 있다.

최애씨는 대학생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몇 년 누워계시다 돌아가셨는데 엄마의 건강했던 마지막 만남은 지방에서 아들 자취방 청소해 주러 오셨을 때라고 한다.

"청소를 뭐 하려 해, 그냥 둬."

엄마가 청소만 하러 오시는 게 미안한 아들이었다. 학교 근처 대학병원에서 오래 입원하셨는데 슬프게도 그가 잠깐 휴대폰 고치러 가는 사이 엄마는 세상과 작별을 하셨다고 한다. 누워 계신 엄마에게 평소와 같이 다녀온다고 짤막하게 전한 그날, "엄마, 나 휴대폰 고치고 금방 올게요."가 그가 전한 마지막 말이었다고. 그 순간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고. 휴대폰 나중에 고쳐도 됐다고. 그는 가끔은 담담히, 어떤 때는 슬픔에 젖은 눈으로 이야기한다.


어느 날, 회사 동기 가족 모임에서 최애씨에게 이모가 오랜만에 전화가 오셨다. 간단한 안부 전화를 마친 후, 이모로부터 문자를 받는다. "엄마 대신에 입덧하는 며느리에게 맛있는 거 라도 해줘야 되는데. 미안하다." 급히 문 밖으로 나가는 최애씨. 그 뒷모습에서 슬픔이 '펑'하고 터지는 것만 같았다. 화장실 급한 아이 쫓아가듯 따라나가 보니, 역시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엉엉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엄마가 또 생각났구나. -엄마와 똑같이 생긴 이모는 그에게 엄마를 더 떠올리게 한다-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최대한의 공감력을 발휘해 봐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그저 바라만 볼 뿐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른다. 가만히 따라 울 수밖에. "담배 한 대 피고와." 나의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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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이 만삭 사진 찍은 날, 최애씨의 쓴 편지


최애씨는 장인, 장모 앞에서 자신이 선배라고 말한다. 두 분 다 엄마가 살아계시니까.

이십 년이 지났는대도 엄마 생각에 우는 배 나온 남자. 오랜 기간을 저렇게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니 마음이 아프다. 그는 항상 친정 엄마한테 잘하라며 나보다 더 챙기는 사람. 아이들에게 엄마한테 잘해야 된다며 나보다 더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 다 가야 한다는 사람이다. 엄마와의 짧은 만남이 그의 인생의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를 보고 있자면 미안하고, 불쌍하고, 고맙고. 여러 감정이 든다.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나는 가끔 우리 엄마가 안 계시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지 떠올려 본다. 손 꼭 잡고 싶어도 만지고 싶어도 못 잡으면 어떻게 살까. 흐르는 눈물은 헤어짐이 슬퍼서일까, 나에 대한 비참함일까. 지금 당장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외국서 매일 전화하는 동생과 달리 큰 딸은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살고 있다. 엄마가 삐지기 전 한 번씩 연락하는 못된 딸년이다. "엄마,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나 봐."로 엄마에게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네며 등짝 스매싱을 유발하고는 한다. 왠지 시댁에 잘 못하는 나로서는 무의식 중에 양가의 밸런스를 맞추려는 것만 같다. 나이를 어디로 먹은 것인가-친정 아빠가 어렸을 때 장난으로 물어보셨던 고정 멘트다- 코로 먹은 것인가. 결코 비난이 아닌, 가끔 철없는 모습을 돌아보며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구나 외롭다.

누구나 힘들다.

다들 아닌 척 살아갈 뿐이다.

- <어떤 하루> 신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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