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소리가 난다. 오전 8시경. 새벽 같은 시간은 아니지만 누군가 부엌에 있는 온갖 것들을 건드리고 있다. 조심하면서도 이리 와보라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아직은 어두운 방 안, 오른편에 누워있는 오팔이가 내 볼을 감싸고 뽀뽀하며 말한다.
"엄마, 나는 오늘을 계속 기다렸어요. 왜냐하면 엄마의 잔치니까요."
딸에게는 본인의 생일보다 엄마의 생일이 더 큰 이벤트이다.
크리스마스와 날짜가 가까워 엄마 생일은 크리스마스가 맞다는 오팔이
"쉬지 않고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나는 밥 안 먹어도 돼요. 계속 쉬어요."
'요리하기'가 엄마의 가장 큰 Job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엄마 없으면 제일 먼저 밥을 걱정하는 아이들이다.
"아니야, 괜찮아. 아침 뭐 먹을까."
머릿속으로 냉장고 안의 재료들을 떠올리며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켜본다.
"엄마, 진짜 괜찮아요. 조금 더 누워계세요. 나는 늦게 줘도 좋아요." 왼팔에 붙어있는 오복이가 펑펑 인심 쓰며 토닥거린다.
"사실 아빠가 미역국 만들고 있어요." 비밀 전달하듯 속삭이지만 항상 다 들리는 오복이는 머리까지 이불을 덮어 씌우며 말한다. 알고 있었다. 가위질 소리에 짧아지는 미역을 상상했고, 정수기 소리에 쌀뜨물을 만든 것을 알았다. 뭇국 만들려던 소고기를 꺼내 볶는 향까지. 모든 사운드는 '나 여기서 널 위해 열심히 요리하고 있어'의 메시지였다. 생색은 내지 않지만, 그는 행동으로 굉장한 티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바로 가보지 않았다. 이참에 서랍, 냉장고 탐방 시간을 충분히 주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곧 최애씨의 부름에 달려가 재료를 찾아주었고, 오구오구 기특하다고 칭찬 듬뿍 해주며 요리하는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이 사진은 일 년 만에 불 앞에선 그에게 일시불 결제 영수증과도 같기 때문이다. -물론, 집을 제외하고는 가장 부지런히 움직인다. 엄마 제사도 뚝딱 차리며, 놀러 가서면 날이 춥던 덥던 요리나 궂은일들 앞에는 항상 그가 있다.-
그는, 미역국의 달인이다.
오복이가 태어나고 조리원의 식단들을 보고는 친정엄마와 최애씨는 한 주 연장을 추천했다. 아직은 한겨울 같았던 2월 말, 출산을 하고, 근 한 달 만에 따뜻한 봄 날씨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최애씨는 미역국 끓이기 기계가 되었다. 입덧으로 살이 빠져가며 임신 기간을 물과, 링거로 버텼던 내가 불쌍했던 걸까. 당기는 음식을 물어 식당을 찾아 매일 포장해 왔고, 집에 도착해서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불 앞에서 미역국 한 솥을 끓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의 루틴이었다.- 그 주에 약속이 많을 때면 와이프가 여행 가기 전 사골 끓이듯 솥에는 미역국이 넘치려고 했다. 육아를 주도적으로 하거나, 새벽에 눈 뜨거나 -젖만 물었던 아이였다- 하지는 않았지만 본인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고마웠다. 친정엄마는 같은 서울에 계셨지만 가끔씩만 오시라고 했다. 셋 키운 엄마가 힘든 게 싫었다. 그냥 혼자만 힘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반찬을 나르셨고, 동생과 자주 오셔서 큰 딸 낮잠을 재우셨다.
"미역국은 내가 더 잘 끓이지."
옛 생각을 하니 최애씨의 미역국 부심은 인정받아 마땅했다. 식탁 위, 미역국을 사랑하는 그의 아들 오복이가 몇 입 먹더니 국그릇을 앞으로 민다. '참기름을 너무 많이 넣었어요' 본인의 생각을 솔직히 전달한다. 건너편의 베테랑 요리사는 '참기름 넣지도 않았어. 알지도 못하면서. 주는 대로 먹어야지'라고 속상함을 맘껏 뽐낸다. 그 모습이 매우 우습다. 본인이야말로 묻지도 않은 피드백을 한 마디씩 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떠난 자리 씩 웃는 최애씨.
"고소하라고 참기름을 오버해서 넣었어."
정말 웃기고 있어, 웃음이 났다. 차가운 이 남자는 겪어봐야 타인을 이해하는 것 같다.
"오빠, 오늘 하나 배웠네. 이제 주는 밥 감사하게 드셔."라고 말하며 맛있게 -조금 짜다고 느꼈지만 차려주는 밥은 다 맛있다- 미역국을 그릇째 드링킹 하는 퍼포먼스로 고맙다는 표현을 진하게 해 본다.
어리굴젓 처음 만들어보는 최애씨 손
"가 있어."
비닐장갑에 '후' 바람을 불며 자꾸 멀리 보낸다. 간 보라며 금세 찾을 거면서 말이다.
저녁까지 잘 차려준 최애씨의 머리 위에 오늘 요리에 대한 셀프 평가 별 다섯 개가 빛나고 있는 것 같다.
종일 선물 만드는 아이들 / 테이프 덕지덕지 사탕모양으로 구석에 앉아 포장한 오복이
정작 본인 생일은 그냥 지나가길 바라는 최애씨지만, 주는 기쁨에 자신의 행복 만족도가 더 올라가는 것을 보니 고마웠다. 다음 생일에는 부끄러움을 버리고 -결혼 11년 차 아직도 왜 부끄러운지- 부엌에 입장하기 전 사랑 가득한 말들로 하루를 시작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