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에 있는 답답함을 모조리 내보낼 듯이 깊은 호흡을 반복한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천 보 조금 넘었다. 다섯 바퀴를 채우니 아침에 외로이 참전한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문 듯했다. 한결 같이 기본 오천 보를 채우는 것을 보면 평탄한 하루를 만나기란 어려운 것 같다.
오월에 찾아온 ‘오복’이와 예쁜 보석 같은 딸이길 바라고 지었던 ‘오팔(Opal)’, 그리고 내 기분에 따라 저장된 이름이 달라지는 남편. 주로 ‘J’ 혹은 ‘최애’로 부른다. 사랑스러운 이들 덕분에 언제부터인가 움직이기 싫어하는 내 인생에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어디든 걷기 위해 나간다는 것. 가깝게는 공원으로 멀게는 강의나 전시회 등 ‘프로 참석러’로 변하여 무조건 간다. 그저 걸어야 하는 나를 위해 말이다. 가파른 산을 제외하고. 이 은혜로운 루틴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문 밖에 나서는 것의 시작은 오팔이의 생일이었다. 전 날, 오복이 훈육을 한바탕 하신 최애씨는 다음날도 엄하심을 이어갔다. 그 꼴을 보자니 숨을 못 쉴 것 같아 최애씨가 케이크 사러 간 사이 아이들에게는 TV를 틀어주고 무작정 신발을 신었다. 바람이 차고 바닥에는 은행 열매 지뢰가 곳곳에 있었지만, 목적지 없이 그냥 걸었다. 오팔이가 원하는 케이크가 없다고 다른 지점에 가겠다는 그의 전화에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
‘사지 마. 안 해.’
그러고는 다시 걸었다. 움직여야 했다. 담배를 태우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다가는 아이들에게 화살이 돌아갈 것만 같았고, 부모가 언성 높이는 모습은 더 보여주기는 싫었고, 오복이가 본인 때문이라고 죄책감 갖는 모습이 슬펐다. 사실, 모두 나로 인해 생긴 일이었다. 반복되는 상황. 사춘기를 걱정하는 초2 오복이는 가끔 눈이 돌아가 반항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백 번 참고, 생각하고, 최애씨에게 SOS를 친다. 아빠로서 한 마디 부탁하는 마음으로. 역시나 매번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또 전화한 내가 바보 같고 미웠다. 한 시간쯤 걸었나. 만 보 채운 것을 확인하고 평화로운 가정으로 돌아왔다. 예상된 평화로움이다.
최애씨는 혼자 나가 걷는 나를 걱정한다. 그런 그가 좀 우습다. 걱정할 게 그리도 없나 싶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이용해 먹는 못된 나는 일부러 보란 듯 만보를 꽉꽉 채우고 돌아온다. 나를 걱정스러워하며 기다리던 최애씨를 보면 미안한 맘이 없지 않다.
‘나는 너를 딸이라고 생각해.’
마흔이 다가오는 아줌마에게 머리를 따뜻하게 쓰다듬는 최애씨를 보고 있자면 내가 얼마나 좁아터진 사람인가를 실감케 된다. 졌다. 부모라는 명찰을 달면 당연히 철이 드는 줄 알았는데, 이런 나는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려나. 동시에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사랑의 약자는 나만이 아니구나.’
저녁 시간.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차려져 있었다. 물론, 내 기준이다. 아이들은 타이머를 맞추고 순서대로 TV를 보며 밥을 먹었고, 최애씨와 나는 나란히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30년 넘게 ‘밥맛이 없다’는 말은 전혀 이해 못 하며 살아온 내 배는, 극 T 최애씨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뚜욱’ 입맛이 떨어지는 첫 경험을 한다. 망각의 축복을 가득 받은 나는 그의 이성 가득한 말들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안다. 정 떨어지는 느낌이 확실하다. 이상하게도 타인의 말에는 타격이 없지만 최애씨의 표정이나 지나가는 말은 어퍼컷을 세게 맞은 것처럼 아프고, 서운하고, 기분 나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달랐다. ‘뭐지? 멀미하는 이 느낌’ 진심으로 싫었는데 도른자처럼 나는 한바탕 웃어 재꼈다.
‘아, 이거다'아르키메데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유레카를 외치며 연신 고맙다고 최애씨의 등짝을 토닥거렸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내 몸뚱이 하나 철저히 컨트롤하지 못하는 나에게 대단한 발견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대자연의 날을 앞두고 무의식적으로 손과 입이 먹을 계획을 마쳤을 때, 슬그머니 최애님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