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원 작가의 고무신 퓨처랩 현장 읽기 2
아이들이 들어옵니다. 거미줄이 성글게 쳐져있습니다. 슬아와 하랑이가 거미줄을 건드리지 않고 가뿐하게 들어옵니다. 아이들이 거미가 되어 거미줄을 만듭니다. 단단한 곳에 고정하고 줄과 줄 사이를 잇는 방법을 알려주니 아이들이 주의를 두리번거립니다. 거미줄을 들고 공간을 익혀 나갑니다. 이곳이 처음이 아닌 아이에게도 공간은 새롭게 다가옵니다. 아이들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뻗어나갑니다.
고무고무가 거미줄 높낮이를 다르게 합니다. 아이들의 시선도 달라집니다. 슬아는 문고리 위에 거미줄을 걸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습니다. 고무고무가 슬아를 안아 손이 문고리에 닿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고무고무 도움이 필요하면 또 말해.”라고 했더니, 더 높은 곳, 조명을 달기 위해 천장에 설치해 놓은 장치를 가리킵니다. 고무신이 사다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슬아가 사다리를 올라갑니다. 한 칸 두 칸 세 칸은 쉽게 올라갑니다. 네 칸 다섯 칸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발이 떼지지 않습니다. “무서우면 내려와도 돼.”라는 말에 슬아는 내려옵니다.
“하랑이가 저 위에 한 번 올라 가볼래?”라는 말에 하랑이가 시도해 봅니다. 다섯 칸 여섯 칸은 하랑이에게도 쉽지 않은 높이입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라는 고무고무 말이 하랑이에게 용기를 줍니다. 한 칸 더 올라섰습니다. “이제 두 칸 남았다.” 올라온 칸보다 올라갈 칸의 수가 더 적지만 더 어렵습니다. “사다리 꽉 잡고 있으니까 나 믿어줘.” 고무고무는 하랑이에게 계속 말을 겁니다. 두 칸 더 올라갔습니다. 천장 가까이에 거미줄을 걸고 가볍게 내려옵니다.
서은이가 왔습니다. 서은이는 아무것도 안 하려 합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서은이는 천천히 공간과 낯선 사람과 공기를 자기에게 맞추는 중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지후가 림보를 하며 거미줄을 통과합니다. 넘어오는 것이 너무 쉽다며 거미줄을 촘촘하게 낮게 만듭니다. 준이 왔습니다. “거미줄이 촘촘해서 들어오기 어렵겠다”라는 말에 “엄청 쉬워요.”라고 말하고 기어서 들어옵니다. 들어올 때부터 거미가 된 준의 마음이 말랑말랑합니다. 지후와 준은 알고 지낸 친구처럼 의논하며 거미줄을 칩니다. 준은 뛰어넘고, 지후는 기어가고 사이좋게 거미줄을 통과합니다.
아이들이 거미줄을 건드리지 않고 사이사이에 앉았습니다. “나는 고무고무입니다. 친구들에게 자기소개해주세요.”, “나는 하랑입니다. 소개해주세요.”, 돌림노래처럼 자기를 소개합니다. “나는 수완입니다.” “완수네요.”지후가 수완이 이름을 거꾸로 말합니다. 그 말을 고무고무는 놓치지 않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우리 서로서로 이름을 지어서 붙여주기 하자.” “고무줄. 고무장갑, 고무신…” 아이들이 고무고무의 이름을 마구마구 짓습니다. 슬아에게는 꽥, 하랑이에게는 호잇 달람쥐, 지후에게는 파란거미, 혁준이에게는 흐뭇미소, 준이는 쭌쭌준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아이들은 드로잉북에 이름을 쓰고 표지를 꾸밉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만든 거미줄 그려보자.” 아이들은 거미줄을 스케치북에 그립니다. 슬아는 거미줄 한 번 올려다보고 한 줄 그리고, 또 올려다보고 한 줄 그립니다. 하랑이는 대충대충 쓰윽쓰윽 긋고, 지후는 그림을 잘 그린다며 파란 거미줄을 그립니다. 슬아는 거미줄 칸칸에 다른 색을 칠하고, 하랑이는 거미줄 너머를 무지개로 칠합니다. 스케치북 위에 그려진 거미줄이 다양한 도형으로 변신합니다. 넓은 공간을 조각조각 잘라 새롭게 만드는 아이들이 신기합니다. 서은이는 깊이 생각하는 중입니다. 고무고무는 기다립니다. 바람을 거미줄로 잡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던지는 말들도 거미줄에 걸릴까요?
“자 이제 거미줄 걷어내자.” 아이들은 지그재그로 엮인 거미줄을 풉니다. 거미줄 푸는 건 거미줄 치는 것과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저기 제일 높은 곳에 거미줄 풀어줄 사람? 서은이가 한 번 해 볼래?”라는 말에 서은이가 사다리를 잡습니다. 네 칸까지는 씩씩하게 올라갑니다. 그런데 서은이가 갑자기 나무늘보가 되었습니다. 하나 올라가고 가만히 있습니다. 고무고무는 기다립니다. 서은이는 사다리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내려오지도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무서우면 내려오면 돼.” “한쪽 발을 사다리 발판과 직각으로 두면 더 안정감이 있어.” “밑에서 잡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서은이는 할 수 있어. 지금 못하면 다음에 하면 돼.” “현서, 수완 와서 사다리 좀 잡아 주세요.” “어른 셋이 사다리를 잡고 있으니 안심해도 돼.” 서은이가 한 발을 떼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또 사다리에 찰싹 붙었습니다. “나무늘보 알지.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해도 돼.” 서은이가 또 한 칸 올라갑니다. 결국,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미줄을 떼어냅니다.
고무고무는 사다리를 낮게 만들어 사다리 건너가기를 하자고 합니다. 슬아가 사다리를 건너가고 혁준이가, 류준이 사다리를 건너갑니다. 하랑이가 건너가고 서은이가 쉽게 건너갑니다. 아이들이 다 통과 한 다음 고무고무는 사다리 높이를 올립니다. 점점 높아지는 사다리를 몇 번 통과한 아이들은 이제 쉽게 사다리를 올라갑니다. 거미줄 칠 때 다섯 칸까지 못 올라갔던 슬아가 일곱여덟 칸을 쉽게 오릅니다. 나무늘보 서은이가 빠른 토끼로 변했습니다.
지후는 머리가 천장에 닿을 때까지 올라갑니다. “이런 건 쉬워요.” “그럼 거기서 뛰어내려봐.” 순간, 지후가 당황합니다. “너무 높으면 조금 내려와서 뛰어도 돼.” 고무고무는 바닥에 인형 쿠션을 깔아줍니다. 지후가 뛰어내린 후 아이들이 차례차례 사다리 위에서 뛰어내립니다. 혁준이는 뛰어내린 후 멋지게 포즈를 잡습니다. “이번에는 멀리 뛰기 한 번 해보자.” 고무고무는 인형쿠션을 멀리 놓습니다. 류준도 멀리, 서은이도 멀리, 하늘을 붕붕 납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본 친구가 있습니다. 하람이 입니다. 아빠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던 하람이는 지금까지 그림과 함께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람아 같이 놀자.” 고무고무가 말합니다. 하람이는 고개를 젖습니다. 고무고무가 빨대비행기를 날리며 또 말합니다. “하람아 같이 놀자.” 하람이는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하람이는 그림과 함께 비행기를 만듭니다. 보라비행기, 빨간비행기, 하얀비행기, 대형비행기까지요. 그림은 하람이가 익숙해질 때까지 옆에서 말 걸고, 관찰하고, 기다려줍니다.
고무고무와 아이들이 밖으로 나갈 때, 하람이는 비행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친구들에게 비행기를 나눠주고 함께 비행기를 날립니다. 고무고무와 아이들이 비행기를 멀리멀리 날립니다. 비행기 따라 아이들이 달려갑니다. 고무고무는 방향이 바뀌는 바람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바람을 따라 달립니다. 서은이가 사다리를 타며 마음이 열렸던 것처럼 하람이는 친구들과 함께 비행기를 날리며 마음이 열렸습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고무고무와 그림이 인상적이었어요.
고무고무는 아이들의 눈이 머무는 모든 곳에 멈추어 섭니다. 그 자리에 아이들은 분필로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이 지나가는 자리에 노랑 지렁이가 생기고, 분홍 목도리가 생깁니다. 아카시아 잎을 하나씩 떼어내며 점을 치기도 하고, 버려진 바퀴 위에 올라 돌아가는 팽이가 되기도 합니다.
물가에 도착했습니다. 고무고무는 성큼성큼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들이 물속으로 따라 들어가 물장구치고, 누가 오래 잠수하나 내기를 합니다. 슬아와 하람이는 멋진 수영 솜씨를 뽐냅니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 풀과 곤충과 돌로 노는 아이도 있습니다. 혁준이는 곤충박사입니다. “이건 여왕개미예요. 날개가 달렸거든요.” “벌이 이렇게 힘이 없는 건 침을 쏘았기 때문이에요. 다시 힘을 모으고 있는 거 같지만 곧 죽을 거예요.” “이건 물거미예요.”
혁준이는 물고기가 보고 싶어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옷이 젖는 건 싫어서 무릎까지만 들어갑니다. 물속에서 물장구치던 서은이랑 하랑이가 혁준이에게 다가와 물을 뿌립니다. 혁준이 옷이 젖었습니다. 흐뭇미소 혁준이가 웃습니다. 물고기를 보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혁준이는 커다란 돌에 파란 물고기를 그립니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것을 아이에게서 배웁니다.
퓨처랩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남깁니다. 슬아는 사다리 이름을 길쭉이라고 지었습니다. 길쭉이 사다리를 탈 때 긴장을 많이 했대요. 슬아를 아슬아슬하게 한 사다리 타기가 재미있었대요. 하람이는 역시 비행기를 그렸습니다. 모두 빨간 비행기입니다. 비행기가 모두 빨간색이었냐고 물으니 모두 하얀색이었다고 합니다. 가장 빨리 나는 비행기, 새 똥처럼 떨어지는 비행기 등 비행기의 특징들을 말해줍니다. 물에 흠뻑 젖은 아이들이 스케치북에 물기를 나눠줍니다. 잘 놀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