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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Oct 08. 2024

Dear 나의 몸에게

낫고, 낳고, 나아가기

요즘은 집 앞 의료생협에서 운영하는 운동공간에 저녁마다 운동을 하러 가. 약속한 게 아닐 텐데도 늘 대여섯 명이 함께 운동을 하게 되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을 해. 몸에 대해 잘 알고, 공부도 많이 했을 선생님은 자신의 몸과 신뢰가 두터워 보여. ‘이렇게 움직이면, 이렇게 몸이 반응할 것’이라고 찬찬히 이해하기 좋게 이야기해 주시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따라 움직이다 보면 희한하게 그게 맞더라고. 그 말들을 귀로 좇으며 나도 내 몸에 말을 걸어보았어.   


‘너 이 자세 가능해? 이 동작은 어때? 할 만 해?’ 


너는, ‘와… 대체 이게 얼마만의 대화냐!’ 하며 내 말을 잘 들어주었어. 물론, 이 공간을 나보다 자주 찾았을 다른 이들의 몸에 비하면 아직 우리의 대화 수준은 아주 얕다고 볼 수 있지. ‘어이구, 너 갑자기 나한테 왜 이래?’라고 하면서도 쪼개진 입은 가리지 못하는 '츤데레' 마냥 너 참 기뻐하더라. 우리 시작이 참 좋아. 운동을 하고 난 나의 몸은 단 몇십 분간의 운동인데도 불구하고 이전의 내 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해져. 내 앞에 나타날 고난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희망과 안도가 찾아온달까? 넌 나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늘 방치되곤 했지. 솔직히 가끔 널 짐처럼 느꼈던 적도 있었어.     


나는 특히나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살아왔어.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는 나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읽으며 하루를 보내곤 하지. 그 사이 나의 몸은 사라져. 머리가 시공을 초월해 엄청난 속도로 보이지 않는 공간을 쉬지 않고 걷거나, 날아다니는 동안 몸은 문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해 내내 외로웠어.    


내 다리는 맨발로 몽골의 평원을 내달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내 팔은 거대한 나무를 깎아 카누를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지. 내 어깨는 그것을 지고 해변가까지 걸어올 수 있을 만큼 튼튼해. 내 손가락은 맨손으로 물을 가르며 수영해 물아래에 있는 전복을 따 올 수 있을 만큼 유연하고도 실용적이지. 내 엉덩이는 골반과 협력해 신명 나게 춤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원한다면 며칠 밤이고 춤을 출 수도 있을 거야. 그 탁월한 엉덩이로 인내심만 길러 왔다니.        


그런 대단한 네가 까짓 운동 한 번 했다고 환희에 차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야. 너는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다시 한번 말을 걸었어. “나 또 여기 오는 거지? 또 오고 싶어.”라고 말이야. 분명히 들었다니까. 항암을 하는 동안 나는 두려웠어. 아직도 혈관이 부어 있는 오른팔뚝을 만지면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나. 내 몸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느낌. 내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나 헛소리를 할 것 같고, 앞으로도 계속 그 헛소리에 내 인생이 끌려 다니게 될까 두려웠지. 나는 무엇보다 몸의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어. 내 몸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하고, 몸을 잘 쓰는 사람들과 사귀고 싶어. 몸의 언어로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매력적이야. 나는 앞서 말했듯 오랜 시간 머리만 써온 사람이거든. 앞으로의 내 목표는 가슴과 몸이 하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것이야. 몸, 바로 네가 나에게 협력해 준다면 나는 더 용감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잔뜩 주눅 들어 있는 내가 도무지 채울 수 없는 영역이 예상치 못하게 쓰윽하고 채워진 기분이랄까. 튼튼한 내 몸이 있으면 이 팍팍하고 불투명한 미래도 너끈히 살아낼 것 같은 느낌이 오늘에야 비로소 움트는 것 같아. 그래, 이게 바로 내가 갖고 싶었던 진짜 자신감이야. 


자기 전에 은은한 침실 조명등을 켜고서 거울 앞에 앉아 내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를 해. 


‘오늘은 어땠어? 네 이야기를 잘 들을게. 이제는 너를 외면하지 않을 거야. 너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들을 거야. 너를 배신하지 않을게. 그러니 안심해. 오늘도 고마워.’


너에게 이렇게 계속해서 이야기해 줄 거야. 네가 지쳐 나를 떠나지 않도록. 이제부턴 힘겹게 암이라는 경고장을 내밀었던 너를 위로를 해 주고 싶어. 얼마나 애썼는지, 살아나기 위해 이토록 몸부림치는 너의 목소리를 이제라도 들을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이렇게 멈추어 설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덕분이라고. 매일 밤 그렇게 말을 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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