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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나몽 Dec 07. 2015

커피가 타는 찰나에 문득 든 잡념

12월은 언제나 우울하다

1.

12월의 황금 같은 어느 주말

이불속에 흡수되듯 숨어 예능을 돌려 보며 멍 때리는 찰나

가스냄새와 함께 무언가 타는 쿰쿰한 냄새에 용수철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뛰어갔다


무슨 일을 해도 손에 안 잡히는 오늘, 커피 한잔으로 기분전환 좀 해보려고

사십 분쯤 전에 가스불 위에 둔 비알레티 머신이 새카만 모습으로 연기를 뿜고 있고

검은색 손잡이와 뚜껑 손잡이는 플라스틱 타는 냄새와 함께 이미 바닥에 녹아있었다


'와 큰일 날 뻔했다'

방 천장에 척 하니 붙어있는 연기 감지센서에 주황 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다행히 울리지는 않았다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찬 주방 문을 헐레벌떡 열어 재치고 가스밸브를 잠갔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 멍하니 가스레인지 주변의 처참한 광경에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이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세 번의 이사를 하면서 가지고 있던 커피머신들을 나눠주거나 버렸다

나에게 남은 커피머신이란 이 작은 이삼 인용 에스프레소 비알레티 모카포트가 다인데

난 이제 어떡하나. 싶었다

나름 사연이 있는 물건이라 버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다

아 이 새카맣게 불태운 정든 모카포트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분간 저 상태 그대로 두지 않을까 싶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겠다

물건에 정을 많이 둔다

저 커피머신은 요즘 하는 말로 내가 제일 애정 하는 물건 중에 하나다


삼 년 정도의 시간을 매일매일 나를 위해 몸을 달구던 이 물건을  폐기 처분해야 한다니 속이 상했다

똑같은 거 하나 사면 되는데 말이다


12월. 그래 12월이라 그런 것 일 것이다


매년 12월은 나에게 상실감과 무력함, 우울함을 준다

내 생일도, 성탄절도, 온갖 송년회 따위의 파티와 연말 세일이 판치는 이 화려한 12월에

나는 왜 이리도 무기력한가

시간은 언제나 손을 벗어난 화살처럼 빠른데 이 시간을 견디는 것은 꽂힌 화살을 빼는 것보다 힘들다

그 우울함에 내 커피머신은 나에게 이십 킬로짜리 아무 자루 하나를 더 얹듯 우울함만 짖누르며,


그 찰나에 나를 버리고 떠났다


흥, 잡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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