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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나몽 Jan 10. 2016

병신년 서른이들 파이팅!

조금 늦은 새해 각오. 요 이~ 땅!

몇 해 전,

서른 살이 된 언니 오빠들에게 서른 개의 계란에 초를 꼽아 찍은 사진을 따발총 쏘듯 전송을 해댔었다

웃기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곧 다가올 나의 서른은 생각도 못한 채 까불어 댔었다


시간 참 빠르다고 했었던가.

2016년 1월 1일이 되기도 전에 나의 서른을 '감축'드린다는 몇몇 선후배들의 문자를 받았다

내 생일 때도 연락한 통 없던 놈들이 눈물 나게도 나의 서른은 챙겨잡순다


요즘 제일 많이 태그가 되는 바로 이곡, '광석이'오라버니의 [서른 즈음에]. 

정확하게는 음악감독 정승원님이 작곡한 곡.

밤과 새벽이 만나 몽롱함에 젖어있는 이 시간에  또 한 번 들어본다 

.

.

.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 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워가는 내 가슴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워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

.



듣고 있자니 뭔가 서글픈데 곡이 너무 좋다


김광석님은 서른 즈음이 청춘이 끝나는 것이라 생각했었나 보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갈 때의 그 자유로운 느낌을,

나이 앞에 3자가 달리면서 젊음이 서서히 시든다 생각했었나 보다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 없어 떠나간 사랑이 그리워지고 가슴속엔 멍하니 공허함만 있었나 보다


그렇게 멍하니 곡을 곱씹고 있는데 난대 없이 가사가 마음에 안 든다

서른을 맞이한 나는 이 명곡을 귀에 넣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학교 다니느라 과제에 치이고, 서로 눈치 보며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려 겉치레를 하고,

이력서에 까만 잉크 한 줄 더 넣으려 아등바등 애쓰며 틈틈이 아르바이트와 봉사활동 등...

결국 나를 둘러볼 시간이 없었던 이십 대를 보낸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계획에 없던 머나먼 이국땅에서 나는 서른이 되었다


한해의 마지막 날 즈음이 되면 지난 한해의 정리와 함께 신년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그런데 서른이 되니 작년 한 해가 아니라 나의 이십 대를 정리하게 되더라 

나의 이십대로 말할 것 같으면, 굳이 겪었어야 했었을까 말도 못 할 만큼 온갖 경험들과 사연들로  파란만장했었다

모든 것이 소중한 경험이었고, 추억들이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굳이 한번 더 겪어 교훈을 남기는 것 따윈 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있다


모든 경험과 기억과 추억들이 쌓여 우리는 더 성숙해간다

성숙이라는 것에는 결코 좋은 것들만 담겨있진 않다

다시 돌이켜보아도 쓰리고 아픈 것들 투성이다

다만 한번 겪어봤기에 덜 아플 수 있고 덜 상처받을 수 있는 것이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살아온 연습을 통한 실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서른에 접어들면서 이미 불어온 내 주위의 변화들을 생각해 본다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파도 타기 하듯 결혼하는 친구가 늘어나고, 곱디 고운 얼굴들을 뽐내듯 올라오던 셀카와 사랑놀이로 도배되었던 각종 SNS는 이제 귀엽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앙증맞은 아기들 사진으로 갈아치워 졌다. 무엇보다 패션, 남자친구, 취업, 미용 등으로 지배되었던 각종 모임의 화두는 직장, 결혼, 육아, 남편 등으로 새롭게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제 웬만한 모임엔 입도 뻥끗 못한다. (나는 아직 솔로이며 학생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생겼고, 아직도 학생 신분인 나는 왠지 모를 뒤쳐짐에 언제나 조급했었던 나의 이십 대 후반이었다. 그리고 그땐 그 조급함이 나를 지배했다. 근데 그냥 거기까지. 부럽지도 샘나지도 걱정되지도 않는다.


사실 나는 조급함을 가면 삼은 사람이다

조금은 느리지만 내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이십 대 중반이 될 때쯤, 좀 빨리 알았다

그래서 다들 취업할 때, 결혼할 때, 느린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마음과 오지랖을 들을 때도 혼자서만 느긋했다. 이제 겨우 번데기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고 아직 엄청나게 많은 일들과 사람들이 나를 지나가겠지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십 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했던가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했다

진짜 청춘은  서른부터다

이제 뭔가 어른의 구역에 발한 켠 디딜 수 있는 서른이 되었다

아마 서른이가 된 모두들, 그리고 서른을 지나간 수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비슷한 느낌을 가졌을 테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고, 주변에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도 

그렇게 새롭거나 재밌거나 신기하지도 않을 나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무엇을 해도 늦지 않은 나이는 분명하다는 거다 

무엇을 해도 도전으로 보일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다

어제와 다를 거 하나 없는 시간들이 수없이 지나가겠지만 뭔가 멋있는 나이다

이십 대 보다 더 많은 책임이 필요하겠지만, 나를 인정해야 하는 나이다

멋있는 서른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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