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준 기억, 스스로 꺾어버릴 뻔했던 한 떨기 꽃을
이 기억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 건 우연히 읽게 된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이라는 한 권의 책이었다.
한 '유품 정리사'가 말하는 한 사람의 삶이 죽음으로 마무리된 후 남겨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를 작가는 아주 잘 정리해 두었다.
이 책을 보니 이십 대 초반의 한 기억이 떠올랐다.
21살. 십 대의 풋풋함이 아직 남아있으며 여자 어른의 향기가 영글기도 전의 그 나이.
그때 나는 이 생을 접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것은
다행히도 한 차례 ‘미수’로 끝났다. 해프닝이나 자살소동으로 표현하기엔 심각했기에 ‘미수’라고 말하고 싶다.
끔찍하게 아팠던 이 사건 이전의 나는
자살하려고 하거나 자살한 사람들을 향해
‘자살하려고 하는 그 용기로 살지’라고 맹목적인 비판만 했었다.
하지만 나의 자살시도 이후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자살하려고 하는 용기(?)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용감해야 한다.
하지만 자살하려고 하는 마음은, 살아야 하는 것이 그 용기보다 더 힘들 때 나온다.
절대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이지만
잠깐 잊고 살았다 그때를.
엄마는 위대하다고 했던가.
마지막 순간 엄마를 향한 온갖 감정이 치솟았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뭐해? 일해? 엄마 오늘 몇 시에 들어와?"
"........... 너 무슨 일이니, 지금 집이야? 기다려 엄마 조퇴하고 갈게."
단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평소에 말하는 것처럼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엄마는 아는가 보다
딸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엄마에게 전달되기 전부터 그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나 보다
'아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머리가 웅웅 거리고 가슴이 너무 답답해, 왜 이렇게 억울하지? '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온갖 감정에 휘둘린 채 거짓말처럼 내 기억들은 어린 시절을 향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나의 짧은 온 생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은 간사하다고 했던가.
너무 무서웠다. 아니 두려웠다.
진짜로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온 정신을 휘감았고, 나는 미친 듯이 통곡하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웠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게 다 억울했다
꺼이꺼이 목 노아 울다가 입 밖으로 '살고 싶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한 시간도 더 되는 거리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엄마는 한 시간이 흐르기 전에 집으로 도착했다.
사색이 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는
곧 내 옆에 있던 약통을 발견하고 나를 화장실로 끌고 가 구토를 시켰다
등이 부서질 것처럼 등을 두드렸고, 쓰디쓴 약 맛이 역류했다
곧 병원차가 왔고, 위세척을 받고
알지도 못하는 의사에게 옷갓 꾸지람을 받으며 병원을 나왔다.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집에 도착하고 엄마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나를 봤다
그리고는 집이 떠나가라 언성을 높이셨다가 자책하셨다가 나를 달래셨다가 침묵하셨다.
죄송했다. 죄스러웠다.
죄송하다는 말 말고 다른 말을 찾고 싶은데 찾을 수 없었다.
그 이후
후유증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한 달이 넘게 바닷속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것처럼 일상에서도 그렇게 소리를 들어야 했고,
이명도 있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고도가 약간만 높아져도 귀가 찢어질 듯 한 압박을 느낀다.
다 내 업보라..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가끔 상담을 한다
무척 부담스럽지만 천천히 듣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붙잡는다
'포기하려던 삶을 부여잡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건 거창한 도움이 아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中>
우연히 읽게 된 책으로 인해 떠오른 기억.
오랜만에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 문자 한번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