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4일의 단상(斷想)
2024년이 저물고 2025년이 시작된 지 어느덧 나흘이 지났다. 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24년 12월에 벌어진 사건들로 인해 새해의 밝은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아침에 손에 든 신문지엔 그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내란의 우두머리는 아직도 대통령 관저에서 경호처와 극우 지지자들을 방패막이 삼아 버티고 있고, 전남 무안에선 가족을 잃은 자의 통곡과 절규가 그치질 않고 있다.
25년은 힘들 것이다. 정치는 극단에 치우친 자들의 난립으로 분란이 가득하고, 경제는 파탄에 이르러 회복할 기미가 없으며, 세계는 트럼프의 재당선으로 인한 혼돈과 오랜 기간 지속된 전쟁, 서로에 대한 혐오로 어지럽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알 수 없으나, 시작부터 전 정권이 싼 똥을 치우는 것도 모자라 우리나라 주변을 둘러싼 강대국의 눈치를 보기 바쁠 것이다. 과연 독이 든 성배를 누가 마시게 될지,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뿐이랴. 근래 들어서 느끼는 기후 변화도 예사롭지 않다. 여름의 폭염은 길어지고 겨울은 롱패딩이 필요 없을 정도로 따뜻해졌다. 사계절이 뚜렷하여 아름답던 우리나라는 어느덧 옛말이 되어,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여름과 겨울만이 남은 듯하다. 붉고 노란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 황금빛 물결의 벼와 추수가 끝난 논밭, 야외 활동하기 좋게끔 적당한 찬 바람이 불어오는, 독서와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을 사랑하는 나로선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을사년에도 나에겐 기쁨이 있다. 3월 말 즈음에 벚꽃에 푸른빛이 찾아들면 바라고 바라던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철없던 스무 살 시절 아기를 키운다는 의미와 책임감, 사랑하는 여자도 없으면서 단순히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입양 단체에 전화를 걸어 입양을 문의하는, 단순무식했던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남자 혼자선 입양이 불가하다며 내 나이를 듣고 어처구니가 없어 웃던 목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도 키워보고 싶던 아기가 드디어 곧 태어난다. 나의 첫 반려견인 알파를 입양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아기를 처음으로 받아 안을 때, 알파를 품에 안았을 때와 같은 느낌일지 혹은 더 강렬하고 따뜻한 느낌일지 정말 궁금하다. 혹은 작디작은 아기를 안았을 때 느껴지는 책임감의 무게가 너무도 커서 내 영혼이 짓눌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두렵기도 하다.
올해는 매년 장황하게 노트에 적어놓던 목표 쓰기를 하지 않았다. 내 나이 만 서른셋. 이미 쓸 만큼 썼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목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음을 안다. 무엇보다 연초 계획은 계획일 뿐 상황과 맥락에 따라 하루하루 바뀌지 않던가. 올해는 육아라는 엄청한 이벤트가 내 눈앞에 닥쳐있기 때문에 작년부터 준비해 왔던 것을 대략 머릿속에 몇 가지만 생각해 둘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찬 한 해가 될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나는 쓰고 또 쓴다.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소소한 위로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