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어려움

by 잿빛달

어젯밤, 티빙의 인기 드라마 원경 1화를 본 뒤 실제 태종과 원경왕후의 스토리가 궁금하여 정보의 바다에 입수했다. 이방원을 검색하다 보니 그의 아들인 양녕대군부터 시작하여 세종대왕, 문종, 단종, 세조까지 읽다 보니 어느새 1시가 넘어 있었고 부랴부랴 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 8시, 일어나자마자 잠이 덜 깬 뇌를 찬물로 각성시킨 뒤 반려견들과 산책에 나섰다. 찬 바람이 불긴 하지만 겨울이라 하기엔 따뜻하다. 맨투맨 티 하나에 2만 원짜리 얇은 패딩으로도 문제없는, 겨울에서 봄으로 접어드는 날씨 같다고 할까. 저번 주부터 칼바람과 함께 강추위가 찾아와 진짜 이제 겨울이구나 싶더니 요 며칠 사이에 다시 사그라드는 듯하다. 윗 지방엔 눈도 내리고 블랙 아이스로 대형 교통사고도 잦다고 하지만 내가 사는 경남 김해시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기상 이변으로 매서운 한파가 찾아올 거라며 준비했을 패션업계가 울상이라는 기사를 종종 접한다. 작년엔 자주 보이던 롱패딩도 올해는 거리에서 한 두 번 봤을 정도로 드문 것을 보니 확실히 작년에 비해서 따뜻한 것을 체감한다. 내년에도 이러면 좀 무서울 듯하다. 빙하가 다 사라진 북극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


산책을 끝내고 집에 와서 뜨끈한 물에 샤워하고 신문을 펴든다. 작년부터 동아일보 신문을 구독 중이다. 인터넷 신문이 잘 되어 있는 요즘, 굳이 종이 신문을 읽어야 하나 고민했었다. 디지털 디톡스로 스마트폰을 멀리 하기도 하고 특정 알고리즘에 의해 양질의 기사를 접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딱 1년만 읽어보자 싶어 신청했다.


신문을 구독하며 느낀 것은 우리나라 정치가 참으로 코믹하다는 것. 특히 대통령 영부인의 이름이 이렇게 많이 나와도 될까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눈여겨볼만했다. 공무원 신분이라 말을 아끼겠지만, 아마 26년이 돼도 자주 보지 않을까 싶다. 경제와 사회, 세계 면도 하향 곡선을 그리는 기사뿐이다. 인터넷 기사로 볼 땐 내가 눈에 들어오는 건들만 보게 되지만 종이 신문을 구독하면서 매일 여러 가지 관련 기사를 꾸준히 보게 되니 절로 경각심이 들었다. 곧 태어날 아기와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방향성을 가지고 준비해야 '평범'한 노후를 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신문을 보자니 한숨만 나온다. 신문을 덮고 냉동된 피자를 해동시켜 늦은 아침을 먹는다. 다이어트를 위해 당을 줄이는 중이다. 제로 음료도 많이 마시면 좋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어 물을 탄 흑초를 마시며 콜라의 유혹을 참는다. 탄산이 주는 쾌감과 단맛은 참 끊어내기 힘든 마력을 지녔다. 특히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맥주나 콜라 같은 탄산이 주는 목 넘김의 매력은 뇌가 알기 때문에 더 참기 힘든 고통이다. 한 달. 딱 한 달만 참으면 버틸만하다. 나는 결국 흑초의 신맛으로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근데 다이어트 중인데 피자를 왜 먹었지?


털썩, 소파에 앉는다. 이미 글러먹은 의지와 멍청함을 탓하며 티브이를 켠다. 다이어트 따위는 내일의 나에게 맞긴다. 내일의 나는 분명 잘할 수 있으리라. 뭘 보면 좋을까. 아, 원경! 분명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를 위해 2화부터 보지 않고 남겨두었음이 틀림없다. 안 봤으면 모르겠는데 일단 보면 끝장을 봐야 한다.


원경을 틀어놓고 보던 중 폰에서 띠링, 소리가 들린다. 브런치스토리 앱의 알림이다. 아 참. 쉴 땐 책을 읽거나 글을 쓰자고 다짐했던 과거의 나가 떠오른다. 고민한다. 소파가 내 몸에 껌딱지처럼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인생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민 끝에 티브이를 끄고 일어선다. 글 하나만 쓰고 다시 보자고,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는다.


그렇게 해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이다. 고생했다. 이제 티브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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