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글을 빌려

이슬아 작가님의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by 잿빛달

반려자 님이 가지고 있던 책들 중 시집처럼 얇은 책이 눈에 보여 출근할 때 들고 왔어. 시집인 줄 알았는데 제목에 서평집이라고 쓰여있지 뭐야. 처음엔 딱딱하거나 따분한 글들이 모여 있겠구나 싶었어. 편견 어린 눈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웬걸. 독백하듯 쓰인 문체가 날 사로잡았어. 당신의 독특하고 담백하면서 살며시 느껴지는 외로운 감성이 좋았어. 그래서 서문에 '내게는 없지만 책에는 있는 목소리와 시선을 빌려 쓰는 글이다.'라는 문장을 보고, 내게는 없는 감성 한 스푼을 당신의 글에서 빌려.

나의 사랑스러운 반려인은 당신의 서평집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책 사이사이에 밑줄 그어진 문장을 읽으면서 그녀의 마음을 곱씹었어.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감정선을 당신의 시선으로 다가가 봤어. 뭔가 뭉클하고 욱신거리는 무언가가 있는데, 역시 잘 모르겠어. 그녀에게는 내가 잘 모르는 그녀만의 세계가 있고 난 그 세계를 지켜봐 주는 것이 최선인가 봐.

p.17
언젠가 네가 그만 살고 싶은 듯한 얼굴로 나를 봤던 걸 기억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네가 계속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작 내 바람만으로 네가 살아서는 안 되잖아. 살아가려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어야 하잖아.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첫 번째 서평의 밑줄 그어진 문장의 문단을 옮겨 적어 봤어. 읽는데 두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느껴져서 안타깝더라.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고민해 봤는데 좋은 답이 떠오르지 않았어. 그런데 뒷장을 펴보니 답이 있더라. 나도 밑줄을 그었어. 밑줄을 긋고 보니 제목이더라. 책에 표시하는 거 싫어하는데 이번엔 하고 싶었어. 내가 밑줄 그은 문단을 옮겨 적고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해.

아 참, 당신의 서평집엔 참 좋은 글들이 많아. 나는 언제부턴가 에세이나 소설 같은 종류를 잘 읽지를 않았어. 왜 그렇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만약 다음에 내가 또 다른 서평집을 산다면 그건 무조건 당신 덕분이야. 고마워.

p.20
그리고 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어.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한 생에서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날 수 있잖아. 좌절이랑 고통이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이 새로운 정체성을 주니까. 그러므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다시 태어나려고. 더 잘 살아보려고. 너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느라 이렇게 맘이 아픈 것인지도 몰라. 오늘의 슬픔을 잊지 않은 채로 내일 다시 태어나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어. 같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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