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잿빛달

나는 태산과도 같은 고고한 큰 산이 되고 싶었다. 눈앞에 보이는 산의 정상에 오르면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정상을 향해 위만 보고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위만 쳐다보니 발아래의 풀과 꽃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에 걸리면 뿌리쳤고 아무렇게나 짓밟았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나는 풀과 꽃을 밟지 않기 위해 아래를 보고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어디까지 왔나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산 위의 정상이 예전과 다르게 외로워 보였다. 태산의 고고함이 고독함을 내포하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쳐 쉴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오른 산의 중턱에는 보이지 않던 동식물이 가득했다. 마음 놓고 휴식할 수 있었다. 비록 목표로 했던 정상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나는 오르기를 멈추었다.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목적은 이루었기 때문이다.

(2022. 11. 10.)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푸른 하늘 한편에 높은 산의 정상이 보인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어느덧 시간은 제법 흘러 산을 올랐던 이유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어떤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이곳을 올랐을까.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산 중턱 즈음에서 머무는 상황이 신경 쓰였다.


동식물과 함께 해서 즐겁다. 하지만 어느새 정상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음을 느낀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못 다 이룬 꿈이 가시가 되어 찌른다.


왜 이곳에 만족하지 못하냐고 묻는다.


나는 산이 되고 싶었다. 산의 일부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목적을 이루지 않았냐고 묻는다.


나는 분명 목적을 이뤘다. 가 산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산과 같이 모두를 품을 수 있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지 내 역량이 안 되기에 그들의 일부가 되어 머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산이 되었다. 나는 분명 산이 되었지만, 산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했다. 주위를 돌아보니 산 중턱엔 이미 내 손길이 닿은 동식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물 뿐이다.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정상에 닿는다 한들 내가 바라던 산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정상에 의미를 부여한 건 나다. 산 정상은 그저 그곳에 자연의 일부로써 존재한다.


그래도, 그렇다 해도 그곳에 무엇이 있든 간에 가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 꿈이었기에.


나는 오늘도 바위 위에 앉아 하늘 아래 정상을 바라본다. 위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을 타고 온 내음에 설렘이 있다.

(2024.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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