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時節因緣)

by 잿빛달

불교 용어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에는 ‘그 시기에 만난 인연’ 정도로 해석되곤 한다. 살다 보면 어떤 관계는 계속 이어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잊히는 관계도 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회사에서, 동호회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다가도, 관심사가 달라지거나 직장을 옮기면 서서히 멀어지고 단절되기 마련이다.

어렸을 때는 그런 관계를 붙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떠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기보다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신경 쓰는 편이 훨씬 의미 있다고 느낀다. 이미 끝나가는 인연에 힘과 시간을 쏟기보다는, 내 곁에 남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고 함께하는 것이 내 마음도 편하고 좀 더 깊은 관계가 된다는 걸 이젠 안다.

살다 보니 인간관계가 점점 협소해지는 게 느껴진다. 누가 불러도 견공(개) 핑계를 대며 나가지 않으니, 나를 부르는 곳도 줄어들고 직장 동료들과도 거리를 두게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부어라 마셔라 하며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과도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는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만 남기고 어색해져 간다. 사실 연 단위가 아니라 불과 며칠 전까지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과도 별 일없으면 연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그 시절의 인연이었음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고, 그들도 그때의 그들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 앞에 모든 것은 무상함을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정말 잘 맞는 친구들은 언제 어디서나, 아무 때나 연락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다. 그런 인연들이 있음에 감사하며 지내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다. 오고 가는 인연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어른으로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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