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개를 보는 내가 있다

by 잿빛달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알파는 거실을 한 바퀴 돈다. 마치 순회하듯 공간을 누비다가 몸을 부르르 털고, 두어 바퀴를 빙그르 돌고선 자리에 눕는다.

나는 눈앞에 엎드린 알파를 본다. 한편으론 개를 본다. 하지만 내가 본 개는 어디까지나 내가 본 개일뿐, 그 자체를 온전히 보지 못한다. 흔히들 내가 사라져야 비로소 눈앞이 분명해진다고 말하지만, 알 듯하면서도 잘 모르겠다.

알파는 분명 개이지만, 에겐 개가 아니라 알파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알파, 그리고 한 마리의 개에 내 생각이 덧붙여진 존재가 바로 알파다.

스스로도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지만,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엎드려 졸던 알파는 고요히 잠들고, 나는 여전히 그를 바라본다. 개를 보는 건지, 알파를 보는 건지, 혹은 내 생각을 덧씌운 그 무언가를 보는 건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개를 보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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