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기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by 잿빛달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책이었다. 많고 많은 짐 중에서 책을 골라 넣은 이유는, 이번에 묵게 될 숙소의 이름이 무려 '램프 라이트 북스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호텔 이름만 듣고 크게 기대하며, 굳이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보지 않았다.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었고, 혹시 실망하더라도 그것 또한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 중에서 이번에 선택한 책은 '여행의 이유'였다. 얼마 전 읽었던 '모든 요일의 여행'을 무척 만족스럽게 읽었던 터라, 이번 책도 마치 운명처럼 다가왔다. 더구나 알쓸신잡을 보고 김영하 작가님의 매력에 반했기에 그의 산문집을 들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이 책과 함께 나만의 '여행의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2박 3일의 여정 중 틈틈이 책을 읽었다. 재미없었다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텐데,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님의 산문이라 그런지 틈틈이 읽어도 몰입감이 크게 줄지 않았다. 덕분에 여행을 마치고 난 뒤 책을 다 읽고 이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생겼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여행의 이유를 찾았을까?


강물이 흐르고 나는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곳에서 뭘 하고 있을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여행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위 메모는 나카 강변 포장마차 거리에서 강을 바라보며 적었던 글의 일부다. 그렇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명확한 여행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김영하 작가님이라면 내게 이렇게 조언해 주셨을 것 같았다. 무언가를 얻기엔 너무 안전하게 움직였다고.


이처럼 '추구의 플롯'으로 구축된 이야기들에는 대부분 두 가지 층위의 목표가 있다. 주인공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것(외면적 목표)과 주인공 자신도 모르는 채 추구하는 것(내면적 목표), 이렇게 나눌 수 있다. …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이런 목표는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와이에 가서 서핑을 배우겠다, 치앙마이에서 트레킹을 하겠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인도에 가서 요가 클래스에 참가하겠다, 유럽 전역을 떠돌며 미술관을 둘러보겠다 같은 것들. …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이번 여행에서 '뜻밖'의 순간이라 부를 만한 일은 두 가지였다. 마지막 날 공항에 가기 전, 숙소 근처 카페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던 중 옆자리 일본 여성분이 먼저 말을 걸어와 대화를 나눈 것, 그리고 둘째 날 즉흥적으로 버스를 타고 아무 정거장에서 내려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다닌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 번역 앱에 크게 의존해야 했고, 임신 중인 반려자 님과 함께였기에 오래 돌아다니진 못했다. 그래도 그때 어렴풋이 '나만의 여행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듯한 실마리가 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문화와 삶, 사고방식을 경험하고 싶다.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의 불안함과 새로움에 적응하기 위한 나의 몸부림, 그때 겪는 나의 감정 상태를 알고 싶다. 그런 과정 속에서 시야가 넓어지지 않을까?


어쩌면 여행을 통해 거창한 이유를 찾으려 해서, 오히려 더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행의 이유를 찾으려는 과정 속에서 중요한 것을 놓쳤을 수도 있다. 다음번 여행에서는 깨닫게 될까?




후쿠오카에서 돌아오자마자 팀 동료들이 "후쿠오카는 어땠어?"라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먹은 음식이나 돌아다닌 곳이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텐동과 모츠나베, 라멘을 먹었고, 바다와 강을 봤으며, 공원과 거리를 걸은 게 전부였다. 음식점 이름이나 지명 같은 것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위에 적은 지명들도 글을 쓰면서 검색해서 확인한 것이다.

가 말하고 싶은 건, 경험했다고 해서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시공간을 함께 겪는다고 해도 내 경험과 타인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지방 사람이 나의 고향인 부산에 대해 물어볼 때면, 나는 오히려 검색해서 정보를 찾아준다. 대체로 내가 좋았던 곳을 추천하기보다 가장 후기가 많고 평이 좋은 곳을 추천해 주었을 때 피드백이 가장 좋더라. 내가 좋았던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는 흔히 어떤 곳을 여행하고 왔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그 도시의 전부를 속속들이 다녀온 것은 아니다. 설령 그 도시의 주민이라 할지라도 그 도시의 전부를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서울에 살고 있지만 그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지역은 아주 한정돼 있다. 그런데도 외국인이 서울에 대해 물으면 마치 서울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처럼 행세한다. 때로는 서울에 대해 책을 읽은 외국인이 나보다 더 정확하게 총체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알고 있을 때가 많다. … 우리는 여행 에세이나 여행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 어떤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그곳을 다녀온다. 그러나 일인칭으로 수행한 이 '진짜' 여행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그곳을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우리는 또 다른 여행서나 TV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읽거나 보게 된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내 여행의 경험에 얹힌다.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 한 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 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다른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후쿠오카에 다녀왔지만, 후쿠오카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자세한 정보 없이 겉만 훑듯이 지나쳤으며, 반려자 님의 계획대로 옛 추억이 깃든 곳을 주로 돌아다녔기에 경험도 제한적이었다. 사실 누군가 "사실 네가 다녀온 곳은 후쿠오카가 아니라 교토였어!"라고 해도, 나는 을 자신이 있다. 오히려 다녀와서 지인들의 후쿠오카 여행담을 들으며 그곳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이 기분 좋았던 기억으로 남은 건 함께한 반려자 님의 추억과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좋아했던 장소를 걸으며 옛이야기와 함께 기분 좋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후쿠오카에 대한 애정을 엿보았다고 할까? 그런 간접경험이 쌓여, 결과적으로 내게도 후쿠오카가 '다시 오고 싶은 곳'이라는 인상으로 남은 것 같다.

알쓸신잡을 통해 김영하 작가님을 알게 된 뒤, 그의 입담에 반해버렸지만 정작 그가 쓴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소설이나 에세이를 평소에 잘 읽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여행의 이유' 덕분에 그의 다른 글도 궁금해졌다. 오랜만에 교보문고 앱의 장바구니가 무겁게 채워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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