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잔혹사

by 잿빛달

어릴 땐 돈을 잘 모았던 것 같다. 명절이니 뭐니 할 때마다 받은 돈을 통장에 넣었고, 초등학교 이후로는 가정 형편이 괜찮아져서 용돈이 부족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기에 남은 돈은 다 저축했던 것 같다.


어느덧 돈을 꺼내 쓸 나이가 되었을 땐 이백만 원에 가까운 목돈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달마다 30만 원의 용돈도 받는 상황이었으니 대학교에 입학한 후 남들보다 금전적 여유가 있었고 세상물정 모르던 나는 동기나 선배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밥을 사주게 되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돈을 너무 쉽게 생각했고 쉽게 빌리고 쉽게 빌려주고 쉽게 사용했다.


직업 군인으로 4년, 소방공무원으로 7년. 10년을 일하고 통장에 남은 건 빚뿐이다. 어찌 잘 풀려 철밥통 생활을 지속하게 됐고 돈이 궁할 시점에 꼬박꼬박 월급이 입금되니 돈이 소중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나이 서른셋, 돈을 쉽게 보고 간절함을 잃은 대가는 혹독했다.


결혼 시기가 되고 집을 사려하자 빚만 있던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 생각 없던 과거의 나는 선의와 호의란 이름 아래 대출까지 받아가며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이자는커녕 돌려받지도 못했다. 사람 좋다, 착하다 등의 허울 좋은 거품이 걷히자 가혹한 현실만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그제야 돈 때문에 동분서주했다.


나는 이 상황에서도 남을 생각했다. 아쉬운 소리를 해봐야 받을 거란 기대도 크게 없었기에 달라고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하나 둘 포기해야만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쓰라린 내 맘을 다스리는 것, 그게 다였다. 내가 선택한 것이고 책임은 내가 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앞에 놓인 현실은 그것만을 허용했다.


결국 내가 손 벌릴 수 있는 건 부모님과 은행뿐이었다. 정말 많은 일과 괴로움 끝에 인연이 닿아 내가 살 수 있는 최적의 집을 샀으나, 나는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보다 억대의 빚에서 느껴지는 무게와 돈 때문에 생긴 마음의 상처가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입는 옷만 입는 단벌 신사에 소형 suv를 타고 다니며 담배,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커피도 안 마시고 명품 이런 거도 사지 않는다. 내가 돈을 쓰는 거라곤 책, 반려견 용품, 술자리, 단 거 이 정도고 이젠 술도 밖에선 잘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왜 돈이 없을까? 돈 아낀다고 가계부 쓰고 고정 지출 줄이면 뭐 하는가.


이젠 돈이라면 정말 신물이 난다. 내가 얼마나 헤프게 돈을 사용했는지 뼈저리게 느꼈고 인간관계에 있어 절대 돈을 엮지 말자는 신조가 생겼다. 부자 될 생각도 없었고 미니멀한 삶을 좋아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병신이 되선 안 된다.


나는 돈을 빌려도 보고 갚아도 보고 빌려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 어떤 메커니즘인지 잘 알면서도 또 빌려주길 반복한 병신이 나다. 빌린 사람이 먼저 돈 얘길 꺼낸 케이스는 한 두 명이나 될까? 다 내가 돈이 급하거나 참참못 해서 어렵게 말을 꺼낸다. 그럼 하나 같이 하는 말이 비슷하다. 결론은 지금 못 준다는 거지.


대다수의 빌린 자는 자기 쓸 거 다 쓰고 남은 돈으로 갚으려고 한다. 이런 케이스는 받기 힘들다. 씀씀이 자체가 크기도 하고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빌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변호사 찾아가서 법적으로 해결하고 손절 치는 게 가장 현명하다.


빚지는 거 싫어하는 나의 경우, 차 산다고 2천 빌려서 달에 170만 원씩 해서 1년 만에 다 갚았다. 나는 천 원 단위 소액도 빌린 건 다 갚는다. 남이 밥 사줬으면 나도 한 번은 사야 직성이 풀린다. 나는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못 받는 일이 종종 생기다 보니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돈. 이제 빌려줄 돈도 없지만 로또 대박이 터져도 절대 안 빌려준다. 정승처럼 벌어서 아주 이기적이게 쓰련다. 빌려준 돈 받고 집 산다고 은행에 빌린 돈 다 갚으면, 내 인생에 더 이상 돈이 만드는 잔혹사는 없을 것이다.


P.S. 단 한 명, 말하지 않았는데도 보낸 친구가 있다. 취업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기에 안 갚아도 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돈을 다 입금하고 보낸 "잘 썼다."라는, 짧은 카톡 하나가 내게 어떤 울림이었는지 이루 말할 수 없다. 단지 돈을 갚아서가 아니라 친구라서 고맙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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