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가득한 염세주의자

by 잿빛달

누군가가 나에게 한 마디로 자신을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문득 떠오른 생각을 붙잡고 긴 시간을 고민했다. 사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삼십여 년이 넘도록 나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해야 한다면, 나는 나를 이렇게 정의 내릴 것이다.


모순 가득한 염세주의자.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나다.


나는 정말 무수히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건 기본이다. 말은 허무맹랑하고 한없이 가벼우며 그에 비해 행동은 굼뜨고 게으르다. 하고 싶고 바라는 이상은 태산보다 드높지만 내 앞에 주어진 현실은 보잘것없고 약소하다. 이것을 인지하고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제대로 해낸 것이 없다. 그 사실에 절망하나, 곧 합리화해 버리고 현실에 맞춰 계획을 수정해 버린다. 그리고 나약하디 나약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뒤돌아서 다른 길을 택한 자신을 외면하지 못하고 다시금 절망한다.


차근차근 비워낸다고 말하고 차곡차곡 채워 넣는 나. 그런 나를 싫어하지만, 그런 나를 싫어하는 이런 나를 좋아하는 모순 가득한 나. 역시 잘 모르겠다.


고통스럽다. 세상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가득하다. 어릴 땐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상상을 많이 했다. 가슴엔 화가 들끓었고 조금만 건들어도 열기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남 앞에선 웃고 웃겼던 것 같다. 속으론 무시하고 욕을 해도 겉으론 웃었다. 오히려 나를 비하해서 남을 웃겼다. 나는 나 자신을 억누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나를 위로해 준 것이 책이었다. 특히 만화와 판타지 소설이었다. 주변에서 오타쿠라 부르건 놀리던 상관없었다. 그 세계 속에 있으면 현실의 고통과 괴로움이 옅어졌다. 숨 쉴 수 있었다. 지금은 거의 보질 않지만 가끔 보게 될 때면 그때의 나를 마주하는 느낌을 받아서 기분이 참 좋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건 그 시절의 내가 방 안에서 책장을 넘기며 홀로 보낸 시간이다.


그렇게 나는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지인들은 잘 모르고 착하니 순하니 어쩌니 하지만, 나는 굉장히 비판적이고 비관적이다. 나 자신이 가진 이상이 정말 높아서 주어진 현실이 너무도 싫기에 냉소적으로 반응할 때가 많다. 물론 잘 모르는 사람에겐 굳이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친해지면 슬슬 못된 성질머리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는데, 그러면서 부딪히다가 틀어지는 경우가 잦았고 이젠 웬만해선 마찰이 생길 일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 정확히는 사람과 일정 거리를 두고 친해지지 않거나 시비가 생길 주제로 대화하지 않는다.


나로 인해 가장 불편한 사람은 내 가족일 것이다. 반성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또 툭툭 말을 내뱉겠지.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얼마나 쓸모없는 인간인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이상향에 닿길 원한다. 부족하고 비굴한, 나 자신이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속물임을 잘 알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하루하루 더 나은 사람이 되 진심으로 희망한다.


공자가 가장 아꼈다는 제자 안회처럼,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남 탓을 하지 않으며 나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내면을 성찰할 수 있길 바란다.


때가 타서 시커먼 거울을 닦고 닦아서 비로소 그 거울로 나를 비출 때 진짜 참나를 볼 수 있 거란 생각이 든다. 나만의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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