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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Jul 06. 2020

공황장애예요, 공항장애예요?

6. 공황의 스펙트럼은 실로 놀랍다!

얼마전 안타까운 기사를 봤다. 제주에 놀러가는 비행기 안에서 코로나 확진자와 동승하여 자각격리중이던 한 여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였다. 나는 단박에 이 분이 혹시 공황장애가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자신은 공황이 있다고 관계자들에게 불안감을 호소했다고한다. 심해진 우울증을 달래려 지인이 여행을 제안했다가 이런 비극이 일어 난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공황및 불안장애로 목숨을 끊은 국내외 기사를 심심찮게 보았다. 스페인에서는 간호사가 자가격리대상이 되면서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가 옮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자살을 했고, 해외로 파견 근무를 나간 한 한국인 여성은 자가격리 대상이 되면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반사람들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을 기사지만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나로서는 그 기사들이 유독 크게 다가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 다 확진자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저 자가격리만 되었을뿐인데, 어쩌면 14일 뒤면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는데, 일반인 입장에서는 황당한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순간보다 타기 전이 더 심장이 떨리고 두근거린다는 사실, 줄이 줄어들수록 아 그냥 타지 말까, 너무 무서우면 어쩌지 하며 긴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가격리대상이 되면서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동떨어져있게 되고, 시시각각으로 내자신이 확진자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견뎌내는 14일은 그야말로 죽음을 넘어서는 불안일 것이다. 


나는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으면서 또 일반인들이 공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가장 흔한 댓글이 이 것이었다. 


"공황장애라면서 비행기는 어떻게 타고 갔죠?"


 흔히 공황장애하면 비행기를 못타거나 엘리베이터탑승,  터널을 지나가지 못하는 폐쇄공포증을 떠올리지만 공황의 스펙트럼은 그야말로 방대하다. 어떤 분은 이마트는 가는데 코스트코는 못간다. 어떤 분은 집앞에 10분도 채 나와있지 못하는 반면, 어떤 분은 차를 운전하고 장거리 여행도 한다. 비행기는 타지만 기차는 못타는 등, 같은 공황장애환자라 할지라도 그 공황의 색은 각각 다르다. 


심지어 공황이 나타나는 양상도 다르다. 공황하면 막 발작을 일으키면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나 죽을 것같다하면서 봉투에 입을 대고 들숨 날숨을 쉬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공황환자들은 조용하게 자기자신과 싸우면서 타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넘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심한, 발작에 가까운 공황은 초반에 응급실 몇번 들락거리면서 '몸에는 아무 이상 없으니 정신과를 가보세요.'라는 의사의 판단을 들으면서  어떤 촉발점이 없는한 자주 오진 않는다. 다만 그 이후로는 또 공황이 오면 어쩌나, 아. 또 시작이구나, 지하철에서 제일 먼저 공황이 시작되었으니 지하철은 못 탄다. 하는 식으로 일상을 위협하고 생활반경을 좁게 만드는 잔잔바리 불안으로 이어진다. 발작만 일어나지 않을뿐 날마다 공황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황환자인 자신 조차도 내가 공황인가? 그렇게 미칠것같은 발작은 오지 않는데 이미 공황을 지난것인가? 헷갈리게 된다. 환자인 본인 조차 이러하니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은 공황에 대해 더욱 무지하기 마련이고 엄살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 쉽다. 


친정엄마는 몸이 허해서  어지럽고 힘든것이라고 장어며, 삼겹살이며 기회가 닿으면 자꾸 먹이려 하셨고, 시어머니는 너무 편해서그러니 밭에 나와서 일하면 말끔해질 일이라고 누군가 그러더라면서 당신의 속내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틀린 말이면서 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공황은  남들이 보기엔 엄살에 가까운 몸과 마음의 민감성에서 촉발한 것도 맞다. 무엇보다 내 멘탈, 생활 관리가 부족함에서 비롯된 질병인 것도 맞다. 공황인 사람들은 유독 남들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받고 싫은소리를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 너무나도 충격적이 어떤 사건에 맞닥드려서 발생하는 것도 맞다. 어떤 분은 동네에서 믿고 따르던 아이 엄마가 여기저기이간질을 하고  다니면서 자기 뒷담화를 하고 다니던 것을 몇 년뒤에야 알고 극심한 공황이 왔다. 엄마의 친구분은 남편이 지붕에서 떨어져 허리수술을 하면서 서울의 고시원에서 잠깐 지내게 되었는데 그때 여러 스트레스로 공황이 왔다. 


이토록 명확한 촉발점이 있다면 그나마 병을 고치기 수월하다. 정말 어려운 사람은 나처럼 대체 어디서 어떻게 터졌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래서 대체 내가 무엇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었나 공황발생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갔지만 억울하게도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열심히 잘 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가열차게 희망에 차서 출장을 다니면서 취재를 하던 시기에 발병했으니 극도의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멀다. 친정엄마는 혹시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털어놓지 못하고 전전긍긍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까지 의심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공황이 오기 딱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일단 성격적으로 신체적으로 민감했다. 불안증이 심하고 작은 사건에도 크게 반응했다.  아이가 기침만해도 또 고열감기가 오는게 아닌가 걱정했고 두드러기만 나도 식도를 막는게 아는가 지레 겁먹었다.  노산에 아이를 낳고 잠을 자는게 아까워서 아이가 자는 동안 책을 읽고, 블로그를 했다. 아이가 제법 크고나서도 기관에 맡기지 않고 아이와 이런 저런 체험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가 잠든 시간에도 나는 깨어나 블로그를 하면서 밤을 보내곤 했다. 피로를 물리치기 위해 커피를 서너잔 마시는것은 기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보니 손과 머리만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삼 시 세끼 꼬박 차리는 것이 바닥난 에너지를 짜내서 할 수 있는 살림의 전부였다. 


 설상가상 블로거가 되다보니 유명 레스토랑에서 공짜 시식의 기회도 많아 일주일에 두서너번은 외식을 했다. 외식은 과식으로 이어졌다. 일상에 활력을 준다고 믿었던  식도락의 댓가는 불어나는 체중과 위장장애였다. 게다가 눈뜨는 순간 오늘은 목이 아프다, 오늘은 관절이 쑤신다, 오늘은 머리가 아프다.면서 몇년째  통증을 호소하는 엄마와  하루에 몇 번씩 통화를 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글쓰는 것인지라 또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썼다. 있는 체력 없는 체력을 다 끌어모아 쓰고 나니 종종 끔찍한 두통에 시달렸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체크하고 업무를 조율하고 친구들과 카톡도 해야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살았던 것도 나쁜 자세에 한 몫했다. 


한마디로 삶이 아무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던 시절이었다. 공황이 왔기에 망정이지 수술을 요하는 큰병이 와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삶이었다. 


이렇듯 공황은 공황환자인 본인 조차도 그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정신과에 가도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의사가 내 증상을 듣고 고개만 잘 끄덕여준대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 남편은 아직도 내가 어디가 어떻게 불안하다는 것인지 해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행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는 공황때문에 여행을 포기하는것이 죽도록 싫어서 여행을 계획하고는 그 전날까지 불안에 잠을 뒤척인다. 여행을 생각만해도 스트레스기 때문이다.  터널이 길어지면 불현듯 답답함을 느끼고, 응급실에 가기 힘든 산속에 있는 호텔에 가는 것도 왠지 두렵다. 그토록 좋아하는 숲속에 들어가서도  어지러움이 느껴져서 머리가 몽롱할때도 있다. 낯선 잠자리에서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수시로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여행내내 남편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때마다 일일이 말을 하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 역시 내색하지 않고있지만 혼자 식은 땀 흘려가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공황 환자에게 엄살이라던가, 움직이면 나을 것이라던가 하는 말은 하지 말자.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민감한 정신과 몸뚱이 덕분에 이런 병이 온 것일뿐.  그저 지켜봐주면서 도울일이 없는지 살펴주면 그것만으로도 사랑하는 사람의 공황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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