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루 호텔
유난히 합이 잘 맞는 노트와 펜의 조합이 있다. 다이소에서 산 A5 사이즈의 코끼리 그림 노트와 BIC 볼펜이 그렇다. 여행 짐에 무거운 일기장을 껴 넣지 못하니 여행 다닐 때만 쓰자하고 갖고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이 작은 코끼리 노트에는 여행에서 맞이했던 모든 아침의 기록이 쌓였다. 내가 이 노트를 ‘세상의 모든 아침’이라 부르는 이유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가면 가족들이 잠든 사이, 새벽에 일어나 혼자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거나 조식을 먹는다.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 탓에 여행지에서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데, 수면 공황(자다가 공황이 오는 경우)이 있고부터는 램 수면상태에서 계속해서 깨어나는 연옥에 갇힌 기분으로 밤을 보내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러다 보면 새벽 무렵에는 녹초가 되어버리지만 그럼에도 새벽에 갖는 혼자만의 시간을 거른 적은 없다.
여행을 가기 전날, ‘세상의 모든 아침’ 노트를 넣고(물론 BIC볼펜도 함께)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신중하게 고른다. 숙소 근처에 산책할 만한 곳은 있는지, 조식이 없는 곳이라면 아침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까지 도보로 얼마나 걸리는지 살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조식은커녕 카페 출입도 불안하던 재작년, 생일을 맞아 어디로 여행을 갈까 고심을 하다 남이섬 안에 있는 정관루 호텔을 선택했다. 내 생일마다 북 스테이를 고집해왔지만 사람 많은 호텔은 불안하고, 가정집 스타일의 작은 북스테이는 방역이 염려되었다. 그렇게 골라낸 곳이 정관루 호텔이었다. 왜 진작 여기를 떠올리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남이섬에는 책도 있고, 카페도 있고, 숲도 있지만 차도 없고, 사람들도 없고, TV도 없었다. 게다가 예전에 친구들과 정관루 호텔에서 묵었을때도 나는 새벽에 혼자 남이섬 산책을 했던 기억마저 좋았었다. 딱 내가 찾던 곳이었다.
과연 겨울의 남이섬은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간 장소 같았다.
아이에게 마스크 잘 써라, 사람 근처에 가지 말아라 잔소리를 덜어낸 것만으로도 홀가분했다. 어지간해서 연박을 하지 않는 남편이 ‘하루 더 자고 가자’고 제안한 것을 보면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첫날은 앞이 안 보일 정도의 폭설이 온 숲을 감쌌고 아이는 자연이 빌려준 놀이터 위에서 눈썰매를 타며 지칠 때까지 놀았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날씨가 말짱해지다 못해 더웠다. 사흘 동안 남이섬의 사계를 다 맛본 것 같았다. 남편과 아이가 작은 남이섬을 지칠 때까지 돌아다니며 온 에너지를 다 방전하고 깊은 잠에 빠져든 새벽, 나는 ‘세상의 모든 아침’ 노트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섰다.
눈으로 만들어진 공기와 발을 따라오는 뽀득한 눈 소리, 새소리, 질리도록 하얀 것들로 가득한 새벽이었다. 정관루 호텔 로비에 꽂혀있는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를 들고 산책을 하다가 아무 데나 앉아 조금씩 읽었다. 나와는 결이 다른 젊은 작가였지만 이런 글을 나도 써보고 싶다고 아주 오랜만에 생각했던 것 같다. 때론 온전히 익어야만 좋은 글은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따뜻한 글이었다. 서울에 올라오는 길에 바로 같은 책을 주문했지만 남이섬 모닥불 향이 묻어있던, 내 새벽을 함께한 그 책이 종종 그립다. 삼십 분 정도 섬 산책을 마치고 정관루 호텔 1층 로비에 있는 작은 조식당에 들어섰다.
가뜩이나 투숙객이 한정된, 작은 규모의 호텔인데 조식마저 패키지가 아니다 보니 식당은 남녀 한 팀과 나뿐이었을 정도로 한가로웠다. 샐러드, 소시지, 계란 프라이 등이 제공되는 간단한 아메리칸 브렉퍼스트 그리고 커피. 조식 커피 중 맛없는 커피는 없지. 기본이 두 잔이다. 식사한 접시를 밀치고 두 번째 커피를 곁에 둔 뒤, 노트에 그 아침의 소회를 적었다.
아침 일찍 산책, 눈 덮인 메타세쿼이아 길, 갓 태어난 말간 햇살들에 반짝이는 나무들, 눈꽃들, 하얀 눈 위의 토끼 발자국, 죽어있던 설레임
그날, 정관루 호텔 조식당에서의 커피와 여행은, 빅 볼펜과 ‘세상의 모든 아침’ 노트처럼 합이 맞는 느낌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침잠하던 나를 이영차 건져내 볼까 마음먹었던 새벽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여행의 모든 새벽이 그렇게 이영차하는 힘이 있다.
지리산의 대나무길에서, 원주의 조각공원에서, 양양의 해변가에서, 정동진의 절벽 위에서, 강릉의 안목해변에서, 설악산 입구의 산책로에서, 춘천의 미술관에서, 평창의 정원에서... 셀 수도 없는 세상의 모든 아침과 한잔의 커피가 내 안을 거쳐갔다. 커피를 끊었을 때 조차도 새벽 산책의 마무리는 커피여야 했다. 그 오롯한 시간이 찍힌 한 장의 사진을 볼 때면 그날의 기억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이런 새벽이면 엠마 보바리가 떠오른다. 점잖은 시골의사의 아내이자 예쁜 아이의 엄마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엠마는 정부에 대한 욕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모두 잠든 새벽 몰래 집을 빠져나온다.
날이 밝기 시작했다. 엠마는 멀리에서부터 애인의 집을 알아보았다. 제비 꼬리 모양을 한 두 개의 바람개비가 뿌연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가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머리 위에 묶어 맨 스카프는 목장에 부는 바람에 펄럭였다.... 그러고는 숨을 몰아쉬면서 뺨이 장밋빛으로 변하고 온몸에서 수액과 초목과 대기의 신선한 냄새를 발산하며 도착했다. 로돌프는 그때까지도 자고 있었다. 마치 봄날 아침이 그의 방 안으로 찾아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녀의 머리칼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황옥의 후광처럼 얼굴을 온통 에워싸고 있었다. 로돌프는 웃으면서 그녀를 끌어당겨서 가슴 위로 꼭 껴안았다. <마담 보바리> 중에서
마담 보바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읽는 순간 나는 내 비밀을 들켜버린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의 발밑으로 즉시 그녀의 조급한 발걸음, 새벽이슬에 젖은 발바닥의 축축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호흡마저 가빠지는 것 같았다. 새벽 여행지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곁을 허물 벗듯 스르르 빠져나와, 남편이 깨지 않도록 주섬 주섬 옷을 입고 카드키를 하나 챙겨 나와 새벽 공기를 잔뜩 마시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엠마가 그랬듯 내가 아닌 어떤 곳을 향해, 엄마도 아내도 그 무엇도 아닌 시간을 향해 나선다. 여행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이라면 그 혼자만의 새벽은 외도에 필적할 만큼 은밀하다. 그 들끓는 시간은 언제나 커피잔 속 소우주에서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30분 남짓한 잠깐이지만, 더 바랄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드는, 커피와 인생의 합이 딱 맞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