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라플란드
수요일마다 반나절짜리 여행을 한다. 그 요일을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아이 방과 후 수업이 있어 늦게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다닐 때는 낮잠을 재우지 않고 데려왔고 유치원은 한 시에 끝나면 학원은 보내지 않고 친구들과 공원에서 뛰어놀게 하고 여행을 다니고 체험을 다녔다. 초등학교 가면 내 시간 좀 있겠거니 했더니만 역병 코로나로 가정보육 1년을 더했다. 아이가 전면 등교에 방과 후 수업을 하면서 3시에 끝나는 것, 그것이 바로 수요일이었다. 9년 만에 오롯이 내 시간이 생긴 것이다!! 무려 6시간 반이라니!! 부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원주, 충청도까지는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요일만큼은 기념비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과연 나는 어디를 제일 가고 싶은가? 고민할 것도 없이 일 순위는 파주였다. 출판사 택배 박스에 ‘파주 문발리’라는 주소지만 봐도 가슴이 일렁 일렁하면서 파주에서 묻어온 바람 냄새라도 맡으려 소포 박스에 킁킁댈 만큼 사랑하는 곳이 바로 파주다. 운전을 못하는 내게 그곳은 버스를 세 번 갈아타도 한 시간 넘는 거리여서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수요일에는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파주부터 가지 않았다. 뭐랄까. 딱 내가 가야 할 운명적인 날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었다. 나는 쿠키 통에서 제일 맛있는 과자는 나중에 먹는 성격인 것이다.
일단 네이버 지도에 평소에 찜해 두고 시간이 닿지 않아 가지 못했던 서울 시내 북카페, 독립서점들을 순차적으로 돌았다. 합정의 북띠끄, 일룸 엄마의 서재, 문학동네 북 카페 꼼마. 후암동 고요서사. 등등 수요 여행에서 갔던 모든 곳은 다 좋았다. 그러던 중 파주의 미메시스 뮤지엄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거다!’ 싶었다. 파주가 보내오는 확실한 러브콜이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직장 가는 남편에게 홍대까지 태워달라 했다. 홍대 앞 홀트 아동복지회 앞에서 2200 광역버스를 타고 자유로를 달리면 무정차로 20-30분 내에 파주 출판단지에 도착한다. 파주를 그토록 좋아하고 북 스테이까지 했지만 막상 나 혼자 버스 타고 가본건 처음이었다.
과연, 파주로 가는 버스는 기다리는 순간부터 남달랐다. 정류장에는 핸드폰 대신 책을 손에 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모습에 벌써부터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죽이는 수동적인 행위라면, 책을 읽는 것은 자발적으로 내 시간을 허락하는 능동적인 행위다(라고 나는 믿는다). 버스에 올라타 창밖을 보는 척하면서 내 옆자리의 비니를 쓴 여자는 무슨 책을 읽는지 흘끗 훔쳐보며 자유로를 달렸다. ‘그 책 재미있나요?’ 물어보는 80년대식 상상에 설레기도 했다. 나의 손에도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들려있었기에 출판단지행 티켓을 손에 쥔 사람처럼 당당했다.
사실 나는 20대 때부터 고속버스를 타지 못했다. 과민성 질환을 달고 살았던 나는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검사를 해봐도 별 이상이 없으니 그냥 예민하고 별난 성격으로 취급받았지만 세월이 흘러 알고 보니 그 또한 일종의 폐쇄공포증이었다. 점점 고속버스처럼 화장실을 갈 수 없는 대중교통수단은 회피하게 되었다. 단체 여행이라도 가면 전날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고 토익처럼 긴 시간이 걸리는 시험은 시험 자체보다 두 시간 버텨내는 게 더 힘들었다. 그러니 무정차로 20분 넘게 달려야 하는 파주 여행은 나에게는 나름의 스트레스다.
이건 사실 뇌의 오류다. 우리의 뇌는 실로 놀라워서 부정의 고속도로가 한 번 뚫리면 광속으로 불안의 시나리오를 쓴다. 즉 무정차를 응급으로 인식하여 온몸이 긴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에 요즘처럼 마스크를 쓰고, 창문도 열 수 없는 광역버스는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환경이다. 하지만 그래도 파주를 가겠다고 나선 그 순간만큼은 그런 뇌의 오류 따위도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만큼 그곳은 가야 하는 곳이었다.
은석교 사거리에서 내렸다. 대부분의 출판단지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하차하는 손님들이 많은 곳이었다. 평일 오전 파주는, 여느 직장인들이 있는 곳과 비슷하면서도 향기부터 남달랐다. 어디선가 밥 짓는 것 같기도 하고, 나무 타는 것 같기도 한 냄새가 났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그 시간, 온 나무들이 힘껏 타오르는 냄새였다.
전시회가 시작하는 10시까지 시간이 남아 하릴없이 기지개를 켜는 파주의 거리를 여기저기 쏘다녔다. 문학동네, 사계절출판사, 보리출판사, 나남, 창비, 들녘, 살림, 시공사... 활자로만 보던 출판사들이 건물로 존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상현실 같았다. 그 개성 있는 건물들 하나하나 짚어가며 구경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젠가는 나도 여기에 책을 계약하고 편집자를 만나러 오는 날이 올까.
미메시스에서 전시회를 보고 미리 봐 둔 파주의 라플란드를 향했다. 출판단지에서는 도보 15분 정도 되는 거리다. 한때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헤르만 하우스를 지나간다. 낮은 2층으로 이뤄진 이 멋진 주택단지는 각 주택마다 작은 정원이 딸려있고 2층 테라스는 도로를 향해 나와 있어 앞 집이며 뒷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길을 걸어가는 이방인의 눈에도 잘 보인다. 누군가는 나와 가을볕 받으며 뜨개질을 하고, 누군가는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아 담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 파주는 이런 곳입니다라고 홍보영상을 보여 주는 것처럼 질투 난다. 아... 나도 이 동네에서 살아보았으면.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서울 여기저기에 그리움을 묻고 사는 내가 파주로 이사 온다는 건 유배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꺼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파주는, 언제든 가고 싶은 그리운 곳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파주 카페 라플란드는 심학산 자락 밑에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근교 공장형 베이커리 카페만큼은 아니지만 1, 2층에 로스터리 룸도 따로 있는 대형 카페였다. 노천 테라스의 썬베드와 파라솔들이 여름날의 화려했던 과거를 증명해주었고 지금은 뒹구는 낙엽들과 어울려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나는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 브런치를 주문했다. 통창 너머로 파주의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파주에 오면 으레 출판사 단지의 건물들만 보곤 했는데 심학산 자락에 오니 처음으로 파주의 강도 보이고 들판도 보이고 구름도 보였다. 파주가 이렇게 드넓은 곳이었나. 생각해보면 나는 파주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 언제까지고 뻗은 노을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여기는 왜 이렇게 햇살이 많아? 언젠가 내가 물어보자 남편이 '높은 건물이 없으니까 그렇겠지.'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했었다.
메뉴를 고르다 보니 잘 구워진 호두 파이가 눈에 들어온다. 호두가 듬뿍 들어간 것이 남편이 좋아할 듯싶어 포장을 했다. 마침 아이 방과 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와 긴 통화를 했다. 나의 삶과 마음은 보이지 않는 실처럼 서울의 가족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고립감을 주었다. 시간 때문이었는지, 장소 때문이었는지, 줄리언 반스 때문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너무 좋았다. 완벽하다는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 내가 늘 꿈꾸던 -사실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떤 장소에 다다랐다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카페가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창 밖에 첫눈이 오고 있었다. 공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벚꽃 같은 가벼운 눈이었다. 무채색 구름은 첫눈을 대충 흩뿌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천천히 흘러갔다. 신기루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대학생 토니는 똑똑하고 매력적인 친구 아드리안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한없이 까탈스럽던 전 여자 친구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었다며 양해를 구하는 편지다. 잘난 친구와 사귄다니 마음이 불편하지만 잘 사귀어 보라며 쿨하게 답장을 보내고 그 사실을 잊는다. 그러나 아드리안은 그 이후 자살을 했고, 60대가 된 토니는 우연히 자신이 아드리안에게 쓴 그때 그 편지를 읽게 된다. 몇 장에 걸쳐 욕설을 담아 그들을 있는 힘껏 저주한 저질 편지였다. 독자는 그 편지를 읽게 되는 시점부터 토니만큼이나 혼란스러워진다. 그가 자기 보호를 위해 힘껏 미화한 모습에 본의 아니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한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속일 만큼 자기 본위적이다. 애초에 객관이라는 것 자체가 뇌의 오류일지도 모르고 믿을 수 있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감정뿐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날 기억하고 있는 라플란드의 모습도 사실 그렇다.
그날 정말 첫눈은 왔던 것일까. 단톡방에 누군가가 눈이 온다고 올린 영상을 보고 파주에도 눈이 왔으면 하고 바란 것을 착각하는 게 아닌가? 파주에 혼자 왔다는 사실에 들떠 필요 이상으로 그 카페를 좋게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이후 다시 혼자 파주를 찾았고 내 몸은 나침반처럼 라플란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나는 라플란드를 가지 않았다. 완벽했던 그 시간을 내 머릿속에 좀 더 간직하고 싶었다. 내 멋대로 미화된, 내 뇌의 오류가 만들어냈을지도 모를 시간을 들추고 싶지 않았다. 아껴둔 마지막 쿠키는 기대했던 만큼 맛있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