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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Mar 31. 2022

전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만

이태원 헬카페

2019년 커피를 끊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봐도 병명이 안 나오니 정 떨어진 애인 걷어차듯 커피부터 끊었다. 몸이 안 좋을 때마다, 무언가 결심할 때마다 커피는 제거대상 1순위였다. 그동안 내 잠을 빼앗아가고, 위염을 일으키고, 달달한 것을 당기게 만든 모든 원흉이 이 놈이라고 생각하자 꼴도 보기 싫었다. 수면부족으로 아우성치던 내 몸도 커피 끊기를 열렬히 환영했다. 블로그로 용돈이나 벌며 애 하나 기르는 전업주부가 수면 부족이 웬 말이냐고 묻는다면, 아이가 잠든 시간에 깨어나 밤에는 글을 쓰고 낮 동안 좀비가 되어 육아와 살림을 했노라 변명해본다. 결혼 전부터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살아왔고 그때마다 커피는 삶을 헝크러트리는 공범이었다.     


작심삼일 인생인 줄 알았던 내가 무려 반년 넘게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커피를 끊고 나니 세상은 커피와 커피가 아닌 것으로 나뉘었다. 한 카페 건너 한 카페. 커피를 마시러 오라고 유혹하는 세상에서 커피를 끊는다는 것은 속세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결연함마저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전 커피 안 마셔요.”라고 말할 때 내게서 수도승의 품위마저 풍기는 것 같았다.       

커피를 끊고 나서 나는 10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는 반듯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 몸도 좋아졌고 살도 빠졌다. 에너지도 충만해졌다. 그 좋아하던 커피를 어떻게 단칼에 끊었냐는 주위의 찬사에 커피를 끊으며 얻게 되는 미덕을 열거했다.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아 얻는 에너지는 미래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일’이라는 말도 덧붙여 가며.      



커피를 다시 마시게 된 건 2020년 1월 30일이었다. 뭐 엄청나게 근사한 동기가 있었다면 좋겠지만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므로 개연성보다는 우연성에 의한 사건이 더 많은 법이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시댁에서 설을 쇠고 집에 돌아와 널브러져 있는데 그야말로 갑자기 미치도록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끊어온 기간이 아깝지도 않으냐, 커피를 끊고 나서 얻은 반듯함을 버리려는 것이냐 하는 설득도 다 필요 없었다. 마늘만 먹던 호랑이도 별다른 계기가 있어서 동굴 뛰쳐나간 건 아닐 거였다. 자기는 원래 마늘만 먹고는 못 사는 종족임을 깨달은 것이다

.       

전화번호 지워 버린 애인을 수소문하듯 나는 꾸역꾸역 언덕배기 동네 카페를 찾아 올라갔다.

커피를 융에 내려 주는 고단한 작업이 지겨워 바리스타 스스로 ‘헬 카페’라고 이름 붙인 카페였다. 물을 것도 없이 헬라떼를 주문한다. 바리스타는 뚱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와 에스프레소가 든 잔에 은밀한 의식을 하듯 잔을 천천히 돌려가며 우유를 부어 섞는다.  

“바로 첫 모금을 드세요. ”

그는 자기 눈앞에서 먹는 걸 기어이 확인하겠다는 듯 잔을 코앞으로 들이민다.

카........

소주 첫 모금도 아니고 별로 우아하지 않은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온다. 낮은 탄식을 확인하고 나서야 바리스타는 만족한 듯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이 진득한 향기라니…. 고소하고 시큼하며 부드럽고 씁쓸한데 단맛이 느껴지는….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하다.      


헬카페를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 동네에 커피 성지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어차피 카페란 죽치러 가는 곳이지 커피 마시러 가는 곳이 아니었던 내게 헬카페의 작은 매장은 별 매력이 없었다. 상호가 궁서체로 쓰인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매장의 창문이 도로변으로 나 있어서 그 안에 앉은 사람이 꼭 쇼윈도 마네킹처럼 보인다는 것도 싫었다. 어느 날 이 쪼그맣고 보잘것없는 동네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 것을 목격했다.

“저거 왜 저래?”

“아, 언니, 얼마 전에 수요 미식회에 헬 카페 나왔잖아.”

그랬단다. 나는 티브이도 안 보니까 알 턱이 없었고 수요 미식회 아니라 어딜 나와도 갈 턱이 없었다. 아니 뭐 커피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줄까지 서서 먹나.

“저기 테이크 아웃이 안된대, 무조건 가서 먹어야 된다잖아. 우리 언제 가보자.”

아니 뭔데 또 테이크아웃이 안돼? 웃기네. 나는 조금 그렇게 생각했다. 사장님께 이제 와 사죄드린다. (나중에 알고 보니 테이크 아웃된답니다.  무려 2천 원 할인된다네요)


그리하여 어느 봄바람 불던 날, 딩가 거리며 시장을 보러 나온 나는 시간이 붕 떠버려서는 그럼 어디 나도 한번? 하는 마음으로 헬카페를 찾았던 것이다. 매장 안에는 웅장한 클래식이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추리닝에 잠바 떼기를 걸친 동네 아줌마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아 조금 뻘쭘했다. 버스로 지나갈 때면 카페 앞 긴 나무 의자에 앉아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짧은 머리의 남자를 종종 목격했었는데 그분이 사장님이었다. 분위기는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저냥 어두침침하고 중간에 뜬금없이 길고 높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뭘 주문할지 몰라 일단 클래식이 들어가는 클래식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여기 이름이 왜 헬카페예요?”

궁금한 건 못 참는 나는 커피를 내리는 동안 사장님에게 물었다. 대답이 충격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 어처구니없이 성의 없는 대답에 글씨는 왜 궁서체인지는 물어보지도 못했다.

자리에 앉아있으니 사장님이 다가와 커피를 우유를 붓더니 갑자기 얼굴에 들이대고 “빨리 마시세요. 빨리!”라고 재촉하는 게 아닌가. 얼떨결에 사진도 못 찍고 후다닥 마시는 바람에 안 그래도 적은 양의 커피가 반이 줄었다.

“아니, 원래 카푸치노에 파우더 쓰지 않나요?”

“저희 가게에는 어떤 파우더도 쓰지 않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왔냐는 식이다. 그러면 카푸치노와 라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물어보았다간 당장 나가시오 할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다. 마침 전화가 와서 여보세요? 네네 어쩌고 몇 마디 하는데 손님, 통화는 밖에서 하세요라는 소리를 듣고는 완전 기분 상했다. 아니 여기가 뭔데, 도서관이야? 자세히 보니 테이블에 대화는 조용히 하고 전화 통화하지 말라고 쓰여있다.

야. 잘 나간다 이거지.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헬카페에 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뒤...

그러니까 커피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맘먹었을 때 왜 하필 헬카페를 갔는가는 나도 의문이다. 동네에 괜찮은 카페가 없어서라고 해두자. 그러고 보니 헬카페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헬라떼를 그때까지 못 마셨던 게 기억나 이번에는 헬라떼를 주문했다. 다행히 오늘은 사장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젊은 바리스타가 와서 커피에 우유를 빙빙 돌려 부어주면서 빨리 마시라며 잔을 들이대고 재촉하는 것은 똑같았다. 나는 도대체 뭔데 여기는 성가스럽게 이러나 싶었는데 엇! 마셔본 순간 그것을 알았다.      


아아아아아. 맛있다!!!      


이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은 무엇인가. 여태 마셔보지 못한 그 무엇이었다. 지난 글 ‘플랫화이트를 쫓는 모험’에서 헬라떼는 왜 빠졌는가 질문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왜긴 왜겠는가. 여기는 0순위다. 무엇보다 엄밀히 플랫화이트가 아니고 어... 장르를 따지자면 헬라떼다.  

맛있는 커피는 원래 달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거기다가 쓴 맛이 강한데 우유가 그걸 중화시켜주는 느낌이다. 직화 로스팅 카페라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고기도 탄 고기를 좋아하는 나의 혓바닥은 헬카페의 직화를 사랑했나 보다. 원래 뭘 알고 부러 찾아다니는 성격이 아니긴 하지만 동네에 파랑새 놔두고 전 세계 여행하고 온 치르치르의 기분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헬라떼의 커피는 첫 모금이 제일 맛있고 갈수록 맛이 없어진다. 아니 맛이 없어진다기보다 다른 카페의 라떼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러니 아껴먹고 싶어도 아껴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카페 놀이할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주부의 오전 같달까.  


불필요하게 웅장한 클래식 음악(전화통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견디기 힘든 전위적인 음악이 나올 때도 있다)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두 잠자코 입 다물고 커피를 음미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스꽝스럽기는 한데 헬카페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할 수 있다. 헬카페 궁서체조차도 고풍스럽고 우아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커피 지옥으로 가는 패스를 다시 얻으러 간 날, 헬카페를 찾은 것은 참으로 적절했다. 고단한 작업에도 커피 내리는 일을 끊지 못한다는 바리스타의 등짝에서 커피에 영혼을 저당 잡힌 동지애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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