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해변 커피 커퍼
동네 도서관에서 무료 회복탄력성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고 당장 신청했다. 사서 주관으로 관련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가 돌 지났을 무렵 친정엄마에게 어렵게 아이를 맡겨두고 어렵게 참여한 것이었다. 참여자는 모두 여성들로 연령대는 다양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알코올 중독자 모임처럼 둥글게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우울증으로 주제가 옮겨갔고 사서는 간단한 테스트 용지를 주면서 빠르게 자신의 우울증 정도를 체크해보라 했다. 중급 이상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해서 나는 우물쭈물 손을 들었다. 내가 20개월쯤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라고 하자 모두들 그러면 우울증이 안 나오면 이상한 거라고 크게 수긍해주었다. 졸지에 우울하지만 안 우울하게 된 나는 가만있었는데 구석에서 불만에 찬 듯한 50대 회원이 손을 들었다. 이 테스트는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였다. 저기 애기 엄마(나를 가리키며)는 그렇다고 치지만 본인은 하루도 집에 있지 않고 늘 약속이 있으며, 봉사활동에 모임에 바쁜 날을 산다고 했다. 거기다 정신력이 워낙 강한 사람이어서 우울증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목소리를 약간 높이더니만 아마도 우울증이 있다면 자신의 남편과 아들일 거 같다고 했다. 남편은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만 있는데 강아지 산책을 한 번을 안 시켜주고, 아들은 백수인데 숟가락 한 번 놓는 법이 없다고 했다. 둘 다 내가 들어오기만 하루 종일 기다리며 집에 있는데 이들이 우울증이 아니면 무엇이겠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터진 자루처럼 수루 루룩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남편과 아들에 대한 증언을 오분 남짓한 시간동안 숙연하게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때 모두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테스트, 제법 정확하네.' 누가 봐도 우울의 한 가운데 있었는데 본인만 그걸 모르고 있는 듯했다. 하긴, 언젠가의 나도 그랬다.
울부짖는 산모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누워있었다. 커튼으로 둘러쳐져 있어 그들의 나의 얼굴을 살필 리도 없건만,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무표정했다. 비명소리가 그렇게 당차고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그녀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생산의 아픔을 뽐내는 중이었지만 나는 낙오된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양수가 빠져나가 텅 빈 자궁 속에 웅크리고 있을 아이를 빨리 꺼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다. 16주 된 아이를 잃는다는 게 몸과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내는지. 38살, 늦은 결혼에 신혼 2개월 만에 덜컥 들어선 아이는 기쁨이어야만 했는데 우리 부부의 감정은 당황에 가까웠다. 태명 지을 겨를도 없이 하혈을 반복하다 결국 그렇게 떠난 것이었다.
‘애는 또 가지면 되지요. 뭐.’
상대의 동정이 듣기 싫어 나는 지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슬픔을 이야기하는 타입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 겨울, 나는 몸조리를 한답시고 집에만 누워있었다. 이듬해 3월 남편이 일본으로 출장을 간다고 했다. 그 2박 3일 동안 나는 뭘 할까? 어딜 갈까? 오래간만에 들떴다. 마침 안목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커피 거리가 SNS에서 유명해지고 있을 때였다. 가보지도 않은 안목해변에 벌써부터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유산의 후유증으로 커피를 끊은 상태였기에 커피거리를 갈 명분도 없었는데도 그랬다.
소나무가 포근하게 둘러싼 해변이 끝나자 카페거리가 펼쳐졌다. 2km 남짓한 거리를 따라 바다를 면한 카페들이 소나무를 대신했다. 나는 카페 하나하나 신중히 살피다가 통창이 있는 그 카페에 들어갔다. 겨울, 평일날의 바닷가 카페에는 낭만을 찾으러 온 연인 외에는 손님도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카페는 커피커퍼라는 스페셜티 커피전문점으로 자체 박물관까지 운영하는 규모가 제법 큰 카페였다.
바리스타는 커피커퍼라는 이름이 새겨진 머그잔에 커피를 내려주었다. 갈색의 음료는 진 청록색의 바다향과 잘 어울렸다. 전망 좋은 3층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3월 바다에서는 저 멀리 훈풍이 불어오고 있어 창이 열려 있었지만 춥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오는 내내 읽고 있던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를 펼쳤다.
종군기자 출신의 저자는 행복의 실체를 확인하려 10여 개 국가를 떠돌아다녔다. 행복지수가 높다는 스위스, 태국, 아이슬란드는 물론 가장 불행하다는 몰도바까지. 그가 내린 결론은 역시나 집 만한 곳은 없다였다. 두꺼운 분량에 비해 맥 빠지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도 나처럼 떠나야 했을 것이다. 자기가 가진 곳을 잘 들여다보려면 그곳을 떠나야 하는 법이니까. 행복을 살피려면 불행의 패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의 행적에 동화되어 나는 커피를 아껴마시 듯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아껴 읽었다. 그리고 간간히 고개를 들어 창 너머 바다를 바라보았다. 좋은 커피에 향이 있듯, 좋은 책들에는 여백이 있기 마련이다. 그 여백에 커피를 끼워 넣고 바다를 끼워 넣으며 <행복의 지도>를 읽던 중, 문득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갑자기 한군데로 기울었던 추가 균형을 잡는 느낌이랄까. 모든 것이 가까스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저 밑바닥에 묻어두었던 무언가가 차오르면서 기분,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아... 그동안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구나.
그날, 나는 비로소 내가 잃었던 것이 나를 아프게 찔러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지러움과 심장박동수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이 유산의 후유증인 줄만 알고 뜨끈한 방에서 몸만 지져댔다. 의사도 이상이 없다고만 했지만 그건 마음이 슬프다고 보내는 신호였다. 아이를 잃은 슬픔? 아니 그건 아니었다. 나는 잃어버린 아이에게 너무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아 미안했지만 사실 내 몸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소비된 것에 대해 위로하고 싶었다.
그 고통으로 울부짖는 산모들 틈에 내 울음을 보탠다했던들, 위로를 건네는 사람의 손을 잡고 통곡을 했던들 그게 무슨 큰 흉이었을까? 마음이 곪는 줄도 모르고 웃음까지 지어 보이진 말았어야 했다. 몇 달 묵힌 슬픔을 그 날, 그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조용히 떠나보냈다.
내 생애의 모든 순간,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 지금까지 했던 여행.
내가 이룩한 성공, 내가 저지른 실수, 내가 겪은 불행이 모두 내게 딱 맞았다. 그것들이 전부 좋았다거나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난 저속한 운명론 따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은 모두 내게 딱 맞았다. 그러니까... 괜찮다.
- <행복의 지도> 중에서
카페를 나와 안목해변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어느 소설가가 그랬듯 바다는 막상 가보면 늘 상상했던 것보다 컸다. 그리고 겨울 바다는 늘 내가 각오했던 것보다 따스했다. 3월의 바다에서는 꽃향기가 났다. 아니 그 향기는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에서 나온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난바다에서부터 굉음을 내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던 바다는 물 띠를 그리며 모래 속으로 사라지고 또 사라졌다. 뭉뚱그려진 일련의 사건들은 가까이서 보면 거대한 포말이지만 멀리서 보면 끝을 알 수 없는 잔잔한 침묵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바다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