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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Mar 29. 2022

플랫화이트를 쫓는 모험

삼각지 쿼츠 


그 모험을 시작하게 된 것은 심장내과 선생님 때문이다. 자율신경조절이 잘 안 되고 맥이 높은 나에게 커피를 아예 끊으라 하셨던 것이다. 선생님, 디카페인도 안 되나요? 커피는 제 유일한 낙이란 말이에요.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선생님께 호소했다. 선생님께서는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그냥 차라리 하루에 한 잔만 드세요.”라며 쿨하게 허락하신 것이다. 의사가 하루에 커피 한 잔을 반드시 음복하시오라 처방한 것 마냥 나는 다른 주의 사항은 다 까먹고 ‘커피에 대한 예의’만 기억했다.    

  

하루에 한 번이니까 무조건 맛있어야지!! 그 집착에서 나의 플랫화이트를 좇는 모험이 시작되었다. 내 머릿속에 딱 떠오른 맛있는 커피는 바로 플랫화이트였던 것이다. 

     

언제부터 플랫화이트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속이 쓰리고, 라테를 먹으면 배부르니 그 중간 정도 되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 나만 한 건 아니었는지 언제부턴가 카페에 가면 플랫화이트라는 메뉴가 있었다. 호주인지 뉴질랜드인지에서 시작된 메뉴라고 하는데 일단 주문해보니 양이 터무니없이 작았다. 역시 커피는 이태리지, 호주에서 무슨 커피람. 괜시리 사기당한 기분을 호주에 대고 풀었다.


그러다 우연히 해방촌의 ‘업 사이드’ 카페에서 플랫화이트를 마셨는데 이게 너무너무 맛있었던 거다. 물론 양은 턱없이 적어 서너 모금이면 끝나버렸지만 최소한 사기당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 카페는 정말 제대로 플랫화이트를 내려주는 곳이었다. 


혹여 플랫화이트에 입문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거나 먹어봤는데 라테랑 차이가 없더라 하는 분들은 부디 소문난 곳에서 드셔보길 권한다. 플랫화이트는 우유와 에스프레소의 비율을 잘 맞춰야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데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플랫화이트는 라테와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일반 카페에서도 플랫화이트라고 이름 붙이고 대충 비율을 섞어 파는 데가 대부분이라 밍숭 맹숭해서 안 마시니만 못하다.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리스트의 음악을 듣고 주인공이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기교적으로는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곡이거든요. 악보대로 그냥 쳐 버리면 아무 재미도 없는 음악이 되죠. 반대로 너무 감정을 많이 넣으면 싸구려처럼 보이고요.”

리스트야 내가 모르니까 수긍할 수 없는데 저 말을 플랫화이트에 대입한다면 음 맞는 말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무슨 커피 전문가 같지만 나는 사실 호텔 라운지 커피보다 맥도날드의 맥카페를 더 좋아하는 사람, 즉 막 입이다. 남들이 게이샤 원두니, 프릳츠 커피니 운운할 때 외국어 듣는 기분으로 경청하고 흘려버린다. 그러나 플랫화이트에 관해서는 내 말을 믿어도 좋다.      


아, 그리고 플랫화이트 카페에 관해서 하나 눈여겨봐야할 것은 플랫화이트는 무조건 종이컵이 아닌 유리잔이나 자기잔에 주는 곳이어야한다 점이다. 따스한 플랫화이트의 온기를 양손으로 감싸 쥐는 기분은 최고다. 만약 카페의 네임벨류만 믿고 종이컵에 담아주는 플랫화이트 집이 있다면 일단 별점 하나를 빼자. 플랫화이트 자체의 온도가 높지도 않기 때문에 종이컵에 담기면 금방 식는다. 어차피 양이 적어 오래 마실 수도 없는데 금방 식어버리기까지 한다면 커피로서도 꽝인 셈이다. 플랫화이트는 잔부터도 완두콩 공주처럼 까다롭지만 모양에 있어서도 그렇다. 거품은 카푸치노처럼 봉긋해서도 안 되며 미세한 입자의 스팀 밀크를 사용해서 그야말로 플랫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여하튼 내과의사 선생님의 1일 1잔 음복 지시가 있고나서부터 집 근처 한남동에는 의외로 플랫화이트 맛집이 많았다. 이미 소문이 날대로 난 챔프 작업실을 필두로 유포리아 로스터스, 에스프레소 코어, 라운지 한남, 페이퍼 블랑, 겟썸 커피, 나름대로 플랫화이트 맛집처럼 생긴 곳을 찾아다녔고 연희동에 갈 때는 일부러 디폴트 벨류를 찾아갔다.       

그러다가 알게 된 곳이 바로 삼각지의 쿼츠였다. 사실 쿼츠는 커피 마니아라면 다 아는 유명한 곳이었다. 바리스타가 여성 최초 2관왕 챔피언이라는데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하면 박태환이 접영과 자유형에서 2관왕 딴 것과 똑같다 한다. 


그건 뭐 내 알바아니고 그래서 쿼츠의 커피는....     


너무 맛있었다~!! 고소하고 쌉쌀하면서 새콤하고 달달한 것이 한꺼번에 들어있다. 혹시 설탕이 들어갔느냐고? 절대 아니다. 알고 보니 이곳은 농축 우유를 사용한다고 한다. 플랫화이트 특유의 걸쭉한 느낌은 그 농축우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엄밀히 이곳은 플랫화이트는 아니지만 비율이 적합한 소량의 라테를 판다. 그러니까 일단 우유가 신선한데 커피를 내리는 솜씨 또한 좋으니 맛이 나쁘기가 더 힘든 것이다. 나는 산미가 강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 고소한 맛이 주는 산미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매장에 커피 나무 심어놓고 날마다 새로 따서 볶나 싶게 커피가 신선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가 바닥을 보이는 순간 쿼츠 플랫화이트가 속삭인다. 

“네 혓바닥은 이제 다른 플랫화이트는 못 마셔.”  

찐으로 맛있는 라테나 플랫화이트를 원한다면 쿼츠를 들려보시기 바란다. 나는 그날 건너서는 안되는 미각의 강을 건넜다. 


자, 그럼 쿼츠를 만나고 난 뒤부터 쿼츠만 가느냐고? 아니. 그건 아니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플랫화이트를 쫓는 모험은 거기서 끝이 났다. 뭐랄까. 맘에 드는 남자 두고 소개팅해봐야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다. 쿼츠의 플랫화이트는 내가 꼭, 오늘은 너무 우울해서 커피로밖에 위로할 수 없는 날, 오늘은 너무 기뻐서 뭔가 내게 보상을 주어야 하는 날을 위해 남겨두고 있다. 혹은 진짜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어디냐고 누군가 물을 때를 대비해 남겨둔 대답이기도 하다. 


쿼츠로 가, 근데 거기 커피 마시면 딴 데 플랫화이트는 못 마시니까 각오는 하고. 


*글을 다 마무리하고 생각해보니 쿼츠에는 플랫화이트가 없고 시그니처라떼를 판매하는데 이게 플랫화이트에 가깝습니다. 도대체 제목은 왜 저렇게 뽑은걸까요...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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