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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Mar 14. 2019

Lesson3   0.5프로의 성장

우쿨렐레는 해치지 않아 

Lesson3. 05%의 성장 



우쿨렐레는 참 신기한 악기입니다. 연습할때마다 0.05퍼센트씩 실력이 느는 게 느껴집니다. 전혀 연주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주법도, 코드도, 세 번 짚을때와 네 번짚었을때 느낌이 달라요. 어제와 오늘도 당연히 다르지요. 저는 영어를 전공했으니까 어학을 예를 들어보면, 어학이란건 계단식 상승을 하잖아요? 좀 되는 듯 싶다가 정체기가 생기고 또 어느 순간 실력이 늘어있는데 또 정체기가 찾아오고. 그렇게 지난한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나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쿨렐레는 입력값과 결과값이 정직한 악기예요. 살면서 이런 성장의 즐거움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억울할 지경이죠. 새로운 곡을 연습할때엔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아이가 옆에서 뭐라 하거나 말거나 몇 시간이고 연습을 했어요. 하루종일 어디 틀어박혀서 연습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오늘 꼭 마스터해야한다도 아닌데 온전히 이 시간에 좀 더 잘 치고 싶다, 좀 더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물론 이런 몰입의 순간이 처음은 아닙니다. 평생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너무 재미있다, 이건 나랑 딱 맞는다, 잘하고 싶다하는 몰입감을 느껴봤을텐데요. 고등학교때 제 친구는 수학문제를 풀다보면 쑥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면서 너무 신나는 느낌이 날 때가 있지 않냐고 반문해서 수포자인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요. 그것이 수학이 아니라면 이해는 갑니다.      


논문을 쓰면서 어느 순간 정말 ‘신들렸다’라는 느낌이 들면서 글이 술술 풀려나갈 때 그 짜릿함.  벨리댄스를 배울 때 그랬고 수영을 배울 때, 아 이건 나 왠지 잘할 수 있을거 같다. 난 타고 났어 하는 느낌이 들면서 쑥 빠져들었을 때,

그리고 30대에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 몰입감과 열정은 또 시작되었어요. 누가 돈을 주는것도 아닌데 며칠에 걸쳐서 자료를 모으고 구글링을 하고 포스팅을 작성하는 일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오탈자를 몇 번이나 점검하고 발행버튼을 누르고 출근하면 오늘은 몇 명이나 내 글을 봤을까, 직장에서도 종종 생각나곤 했죠. 첫 댓글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웃신청이라도 들어오면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20,30대에 일어난 것들이죠.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던 시절입니다. 사실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에건 사랑에 빠지기 쉬웠어요. 


제 인생의 몰입감이 훅 줄어든 것은 서툰 육아를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아이가 잠든 후에 글을 쓰고 공모전에 도전 하고 그런 나날들이 이어졌지요. 그러나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저는 유모차에 애를 재우고 스타벅스에서 해리포터를 썼다는 조앤롤링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애가 잘 때는 같이 자야 그나마 버틸 수 있는 나이든 엄마일뿐이라는 사실을요. 


육아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밤잠을 못 잘 때, 아이가 친구와 문제가 있었을 때, 고열로 밤샘간호를 해야했을 때 등등 어느 한 지점이지만 이런 순간들은 어느 순간 정점을 찍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정말 힘든 것은 저라는 사람의 개성과 정체성이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한없이 투명에 가까워져가고 있음을 느낄때입니다.      


일테면 저는 사람이름을 정말 잘 외우는 편이거든요. 친구들이 “그 사람 누구지? 왜 ’캐리비안의 해적‘에도 나왔고 ’반지의 제왕‘에도 나왔던 잘생긴 남자 있잖아.”라고 물어보면 “올랜도 볼룸!”하고 툭 치고 나오는 인간검색창이었는데요. 어느순간부터 저도 별수 없이 녹색창에 문의하고 있더라고요.     

 

사람 이름 까먹는거야 애교지요. 글을 쓸 때도 어휘가 단순해지고 비문이 늘어나더군요. 말 할때도 단순한 단어조차 기억이 안 날때가 늘어났어요. 여유시간이 생기면 핸드폰 카톡방외에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게 불가능해졌습니다.    

       

 유일한 낙이었던 블로그도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해야 하니 어느 순간 일 아닌 일이 되어버렸어요. 그렇다고 10년넘게 블루베티라는 닉네임으로 저만의 인생 브랜드를 만들어준 블로그를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죠. 이렇게 제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많은 것들이 하나씩 멀어지거나 변질 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엄마들처럼 저 역시 삶을 통털어 가장 잘한 일이 아이를 낳은 것이고, 아이가 없던 시절은 전생처럼 까마득합니다. 다만 아이가 주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만큼 그 기쁨은 자기의 삶을 내어주어야한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힘든것이지요. 


 사실 그동안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어요.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내 시간을 거쳐가야하는 것이라면 그 어느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조조영화 한편 보는데도 별러야할 정도였으니 무언가를 진득하게 하는 것도 불가능했고요. 


애시당초 우쿨렐레를 시작할때도 뭐라도 해봐야겠다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게 아니예요. 그냥 배우고 싶은데.. 안되면 말고의 정신으로 시작한 것이죠.  

    

설마. 뭐 내가 끝까지 하겠어?어차피 방학하면 꾸준히도 못 나올테고.. 하는 식으로 처음부터 마음을 반쯤 접고 시작한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모르는거죠. 육아를 시작한지 6년만에 처음으로 ’아, 재미있어‘,’이런것이라면 평생해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 것이 바로 우쿨렐레였으니 말입니다. 아이와 남편에게  ’나 오늘배운 거 연습해야돼. 나 방해하면 안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던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가계와 육아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가 재미있으니까!라고 외칠수 있었던 것이 말이죠. 무엇보다 그 시간은 아무에게도, 무엇에게도 절 빌려주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니까요. 


그렇게 저는 0.5퍼센트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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