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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May 12. 2020

제가 좀 불안해서 그러는데요.

1. Prologue : 불안의 흑역사

내 불안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8살 겨울,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난 뒤부터 트라우마가 생겼던 걸까. 20대에 과부가 된 젊은 엄마가 나를 버릴까봐 울지 않고 혼자 잘 노는 철든 딸 역할을 하면서 시작된걸까. 아들 셋을 달고 들어온 새 아빠와 엄마가 늘 싸우고 엄마를 때리고 하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였을까. 집을 못 견딘 엄마가 밖으로 나돌면서 할머니와 새아빠와 함께 살면서 방문을 걸어잠그면서부터 였을까. 대학에 떨어지면서 폐쇄공포증을 겪고 재수를 포기하고 히키코모리로 집에 틀어 박히게 되면서였을까. 꽃다운 20대를 음울한 집에서 보내면서였을까. 그 이후 30대는 10대와 20대를 거치면서 겪었던 그 모든 걸 상쇄해주었던 내 삶의 꽃이었다. 대학원을 갔고 직장을 구했고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 이전 시절의 기억들은 전생처럼 까무룩해졌다. 

 

아이를 가지면서 불안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어쩌면 불안의 톱니바퀴는 잠시 멈춰있었던 것일뿐, 임신과 육아라는 내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시작되면서  우울과 허무감은 불안과 두려움의 모습을 하고 나를 다시 찾아왔다.  젊은 시절, 우울과 허무감은 일종의 낭만적 습관이었다. 작가를 꿈꾸던 내게 그것들은 근사한 자양분이자 삶의 장식이기도 했다.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나서, 남들처럼 직장도 갖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으면서 그것이 과거형인줄 알았다.사실 나의 기본시제였는데 말이다. 아...  아니다.아이를 낳고 나니 세상에 대한 허무감은 소중한 것을 지켜야한다는 강박으로 바뀌었고 아이가 열이 날때마다 아이가 기침을 할때마다 아이의 몸에 두드러기가 날때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불안수치를 가중시켰다. 잃을것이 있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불안감은 젊은날의 우울과 허무감은 워밍업에 불과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2019년 7월 갑자기 찾아온 공황은 그래서 내겐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올게 왔구나. 싶었다. 그래서 무섭긴했어도 응급실이 아니라 정신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의 이성이 남아있었다. 그래 어차피 평생에 한번은 갈꺼 같았어. 정신과로 말이야. 


두달간 약을 받아먹고 단약했다. 최소 6개월은 먹어야한다는약인데 선생님과의 상의로 약을 끊었다. 나를 개선하고자하는 의지가 강한것을 선생님이 알아주셨고 실제로도 그랬다. 또 일반 공황환자들과 달리 일상생활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에 그리 심한 공황이 아니라고 판단해주신듯했다. 


그리고 2020년 현재, 살살 다스려오던 불안은 코로나의 유행으로  물만난 고기처럼 멋대로 내 몸과 마음을 휘저어가면서 활개치기 시작했다. 물이 그나마 잘 빠지던 하수의 머리카락이 한가득 막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1일 1지옥이라고. 그날 그날 불안이 써내는 시나리오도 황당하다싶게 다양했다. 아이가 기침을 해도 하루가 불안했고, 남편의 목이 잠겨도 코로나가 아닌가 불안했다. 급기야 나자신도 위장병이 생겨서 식도가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목이 조이는듯하고 쑤시는 증상이 생기면서 주변사람에게 옮길까봐, 아이에게 옮을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하루를 시달리다가 잠이 들면 불안은 잠자리까지 쫓아와서 뺨을 후려치며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자다가도 악몽을 꾼것처럼 벌떡 일어나고 심장이 두근거려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비몽사몽중 식은땀과 오한이 함께 오는 날 다음 아침이면 온 몸이 두들겨맞은것처럼 아팠다. 그나마 다행인건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사건은 리셋이 되긴한다는 것이었다. 

행복감같은건 잠시 찾아왔지만 어느순간부터 이게 행복을 억지로 느끼기 위한 자기 암시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렸다.편안한 날에는 불안감이 또 찾아왔다. 오늘은 뭐 주워먹을거 없나? 싶어서 기웃거리는 이녀석은 편안한 날에는 "어. 오늘은 왠일로 멀쩡하네? 오늘은 안 불안해?"라고 속삭여왔다. 그러면 어김없이 온 몸을 따라 불안이 훅 번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억지로 하루 하루를 다스려 나가야한다는 사실이 신물 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래야할까. 끝은 있는걸까. 남들은 아무생각없이도 잘만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하루가 길고 힘든것일까. 내 뇌를 꺼내서 박박 닦아버리고 싶다. 감옥같은 몸을 벗어나 버리고 싶다. 하는 불가능한 소망들만 머리를 채워갔다. 


지난 금요일, 심리치료센터를 찾았다. 나만의 힘으로, 나만의 의지로 도저히 고칠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많은 책을 읽었고 나를 다스려왔고 스스로 이겨낼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무의식의 경계까지 침투해간 불안이라는 녀석을 잡아 끌어내지 않는 한 이 싸움은 끝날것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는 내 의식의 힘도 지쳐떨어져가고 있었다. 불안은 본능의 언어로 말을 거는데 이성의 언어로 아무리 달래봤자 승산이 없었다. 


심리치료센터 상담기를 기록해볼 예정이다.  나처럼 고통스러워하는 만성불안자들을 위한 해결책을 모색해보기 위해.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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