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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의 구분: 휴식, 취미

당신에겐 '취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

by 홍충희

여가의 구분: 휴식과 취미

아침부터 오후까지 격무에 시달리던 당신. 깔끔히 퇴근하면 좋으련만 처리되지 않은 일을 두고 어정쩡하게 집으로 출발한다. 내일 해야 할 업무를 마음에 남긴 채 머나먼 퇴근길을 거쳐 돌아온 집.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집이라고 마냥 편안하지는 않다. 도착한 집에선 밥 달라고 칭얼거리는 아이들, 어질러진 집, 널브러진 빨래와 설거지 거리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몇 시간의 임금 노동과 가사 노동을 거친 끝에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당신. 조금은 조용해진 집을 둘러보며 비로소 자유 시간이 주어진 것에 대해 안도하는 동시에 이토록 달콤한 시간이 급작스러운 사건으로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조바심이 든다.


남은 몇 줌짜리 여가 시간.

이 시간에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전 글에서 '삶=수면+노동+여가'라는 간단한 공식을 살펴보았다. 이번엔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 여가를 집중 분석하여 우리가 이 소중한 여가 시간을 어떻게 굴려나가 볼지 생각해 보자.


먼저 여가를 나누어보자. 우리가 여가 시간에 영위할 수 있는 행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휴식과 취미다.


혹시 휴식과 취미, 이 두 가지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많은 이들이 휴식과 취미를 어렴풋이 구분하지만 어느 정도 혼재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이는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다. 취미와 휴식이 헷갈리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한 번 생각해 볼까.

'음주'는 휴식인가? 취미인가?


휴식인 것 같기도 하고... 취미인 것 같기도 하고...

이 질문이 조금 헷갈린다면, 여기 술을 좋아하는 가상의 회사원 A와 B의 사례를 통해 그 차이를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먼저 A 회사원의 '음주'. A 회사원은 매주 술자리를 일주일에 3번 정도 가지는 지극히 평범한 애주가다. 고단한 날이면 맛집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에 술 한 잔 하는 게 낙이다. 매 번 보아도 질리지 않는 친구들의 '왔어?' 하는 무심한 인사로 술자리가 시작되면 A는 자기 앞에 놓인 음식과 부장의 어이없는 잔소리, 막막한 프로젝트의 무게감을 안주삼아 술을 넘기고 '내 말이!', '이상한 양반이네 그거', '뭐 그딴 일이 다 있어?' 같은 추임새와 위로가 시끄럽게 술자리를 뒤덮는다. 이어지는 주말 계획, 여행 이야기, 애들 크는 이야기 등을 늘어놓으며 술을 들이키다보면 어느새 알딸딸해지고, 가게를 나서는 A는 조금 가벼워진 기분으로 가족들의 따스함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다음 B 회사원의 '음주'를 살펴보자. B 회사원 역시 매주 술을 일주일에 3번 정도 마시는 평범한 애주가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난 뒤에야 비로소 B의 음주가 시작된다. B는 자신의 집 한편 선반에 놓여있는 위스키 병들 사이에서 오늘의 주인공을 신중히 고른다. 전용 잔에 정해진 양만큼을 따른 뒤, 먼저 위스키의 투명한 호박색을 나지막이 감상하고 향을 맡는다. 책이나 전문가들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 피트의 향이 강한지, 바닐라 향이 있는지, 과실의 향이 나는지 집중한다. 한 모금을 마신 뒤에는 입안에 남는 느낌이나 변화를 느끼려 애쓴다. 그렇게 한 잔을 음미한 B는 자신만의 노트를 꺼내 자기가 설정한 요목에 맞추어 찬찬히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한다.


A와 B는 똑같이 '음주'라는 행위를 했지만 그 양상은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볼까. '음주'는 휴식인가, 취미인가?

그렇다. 답은 '둘 다'이다.


아직 '휴식이란 이런 것이고 취미란 저런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기 전이지만, 예시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누가 휴식으로 음주를 즐기고, 누가 취미로 음주를 즐기는지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A가 휴식으로 음주하는 사람이고 B는 취미로 음주하는 사람이다.


'음주'라는 행위 그 자체가 휴식이 되거나 취미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그 행위를 '휴식'으로서 영위하는 사람이 있고, '취미'로서 영위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행위를 다르게 영위하다 보니 휴식과 취미가 사회에서 혼재되어 사용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들어가 보자.

휴식과 취미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간단히 구분하면 여가 시간에 하는 것들 중에 '취미'가 아닌 것은 모두 휴식으로 간주할 수 있다.


여가=휴식+취미이므로

여가-취미=휴식이라는 식을 간단히 도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하필 '취미'가 아닌 것을 휴식으로 간주할까? '휴식'이 아닌 것을 취미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굳이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는 '취미'가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취미'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고 이 조건에 벗어나면 취미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취미'를 먼저 살펴보고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편리하다.


'취미'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논의가 있지만 그중 '취미와 예술'이라는 책에 나오는 조건과 필자의 표현을 종합하여 소개하자면, '취미'로 불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따라야 한다.


1. 생업과 무관한 자발적 행위

2.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행위

3.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갖출 수 있는 행위

4.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이지 않은 행위


물론 이 네 가지 조건에 수치로 표현 가능한, 절대적인 기준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통념의 안에서 위 네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행위들이야말로 어엿한 취미라고 부를 수 있다.


아까 예시로 돌아가서 A회사원의 음주는 왜 취미가 아닌 휴식일까? 친구들과 즐겁게 술 한잔 하는 것은 생업과는 전혀 무관하며 즐거움을 잔뜩 선사할 수 있다. 술주정이나 주사를 부리는 추태만 없다면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행위도 아니다. 한데 딱 하나, 3번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이 없다. 무언가 노력하여 취향을 개발하고 교양을 쌓거나 성장하고 몰입하는 과정이 생기기 쉽지 않다. 따라서 친구들과의 소셜 드링킹은 취미가 되기 어려운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이 엄격한 기준에 불만이 있을 수 있겠다. 사실 정의하기에 따라서 소셜 드링킹도 취미로 보는 전문가도 있기에 '굳이 전문성 같은 거창한 것이 있어야 취미인가?' 하는 불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저 네 가지 조건은 상당히 까다로워서 아마 '취미'가 하나도 없는 사람도 굉장히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이해하나,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행위만이 취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에 '취미'는 엄격히 휴식과 분리되어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뒤에서 차차 소개하고 다루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취미의 결정적 역할은 '몰입'의 선사다. '몰입'은 그 자체로 강력한 자율성, 유능성을 충족시키는 인간의 상태다. 직장에서 가장 결핍되기 쉬운 마음 영양을 완벽하게 보완하는 영양제가 '취미'인 것이다.


문제는 이 '몰입'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조금 까다롭다는 점이다. 사람이 몰입을 느끼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과 함께 그에 맞는 난이도의 과업이 함께 주어져야 한다. 간단히 말해, 뭔가를 잘하는 사람이 어려운 것을 도전할 때 몰입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시간을 쏟아붓는 분야에 전문성이 거의 없다면, 역량이나 난이도라고 할만한 것이 없어 몰입을 이루어내기가 힘들게 된다. 이런 것은 아무리 즐겁다 하더라도 그저 욕구나 쾌락의 충족일 뿐 정말 마음의 영양이 되는 유능성을 선사할 수는 없다.




반면 휴식은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휴식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과 여러 자극들로부터 한 발 떨어져 평온하게 인생을 관조할 수 있게 된다.


좋은 주말, 애인이나 배우자와 별거 아닌 일로 목청 높여 싸우고 씩씩거리다가 까무룩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분노나 원망 같은 감정 순식간에 가라앉는 경험.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 있는가?


이는 휴식의 좋은 예다. 우리는 휴식을 통해 우리를 괴롭히는 부정적 감정들에서부터 한 발 물러날 수 있게 되고 결국 괴로운 감정들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즉 휴식의 포인트는 지루함, 피로, 걱정, 증오, 분노, 짜증 등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으로부터 한 발 멀어지는 것이다. 괴롭고 부정적인 감정을 되새기며 부추기는 행위는 좋은 휴식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자신의 속을 썩이는 남편을 친구들에게 험담했다고 해보자. 그 아내가 퇴근한 남편을 본 순간 그녀의 마음에는 어떤 감정이 들까?


아내의 마음에서 측은함과 미안함, 용서의 감정과 같이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된 이후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생긴다면 험담도 그녀의 입장에서 좋은 휴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험담 후 남편을 보는 순간, 험담했던 순간의 감정과 내가 곱씹었던 장면과 말이 떠올라 짜증이 난다면 그녀에게 험담은 결코 좋은 휴식이 될 수 없다. 남편이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서 아내는 결국 어떤 행위를 통해 본인을 괴롭히는 증오, 분노, 애증과 같은 감정을 전혀 떨쳐내지 못했다. 이는 휴식이 추구하는 바와는 거리가 있다.


휴식을 통해 인간을 괴롭히는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확보해 마음속의 여유를 충분히 만든 후,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즐겁고 건강한 감정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휴식'과 '취미'라는 두 장의 카드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당신은 더 이상 여가 시간 앞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진짜 재미있는 게임은 지금부터다. 이 두 장의 카드를 어떻게 조합해야 최고의 패를 만들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우리를 진정으로 회복시키는 휴식의 종류들을 살펴보고, 그다음에는 우리를 성장시키는 취미의 종류들을 탐험하며, 당신만의 '필승 조합'을 함께 찾아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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