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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종류

쉰다면서 쉬지 않는 당신

by 홍충희

여가시간의 첫 번째 축인 휴식에 대해 알아보자.


휴식.


모든 이들이 여가 시간에 빠짐없이 하고 있지 않을까?


굳이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휴식의 중요성을 굳이 역설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소파에 기대고 배달 어플을 눌러 기름진 음식을 주문하는 현대인의 생태를 보면 '휴식'에 대해 일부러 배워야 할까 싶기도 하다.


물론 당신이 이미 충분히 잘 휴식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현대인의 생태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휴식의 양상은 약간 아쉬운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휴식은 피로 해소의 관점에서 큰 이점이 없기도 하고 어떤 휴식은 특정한 피로를 오히려 가중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휴식의 목적에 조금 더 잘 부합하는 휴식들을 알아보고 자신에게 맞는 당신만의 휴식 종목을 선정하여 더욱 편안한 몸과 마음을 가져보길 바란다.


현대인들은 생계를 위해 사회에서 끊임없이 능력 발휘와 상호작용을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피로를 얻게 된다.


현대인들이 겪는 피로는 크게 신체의 피로와 정신의 피로로 나눌 수 있다. 신체의 피로와 정신의 피로는 각각 다음과 같은 하위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신체의 피로

1. 운동계 피로 - 근육, 관절 등의 운동계에서 느낄 수 있는 피로

2. 신경, 감각계 피로 - 감각 처리의 누적으로 생기는 신경계의 피로


내면의 피로

1. 생각의 피로 - 끊임없는 생각, 멀티태스킹, 의사결정 등으로 생기는 피로

2. 감정의 피로 - 특정 감정을 끊임없이 느끼거나 진짜 감정을 숨기고 연기해야 하는 감정 노동의 피로

3. 관계의 피로 - 타인과의 상호작용 중에 여러 이해관계와 권력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소진하며 생기는 피로


하위 범주를 통합하여 정리하면 인간의 피로는


1. 운동계 피로

2. 신경, 감각계 피로

3. 생각의 피로

4. 감정의 피로

5. 관계의 피로


이렇게 5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 피로들을 느끼면 어떤 증상들이 나타날까?


신체의 피로

1. 운동계 피로: 어깨가 결린다, 허리가 아프다, 다리가 저리다, 무릎에서 소리가 난다, 눕고 싶어진다.

2. 신경, 감각계 피로: 눈이 뻐근하다, 머리가 웅웅거린다, 막상 누우면 잠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내면의 피로

1. 생각의 피로: 집중력이 생기지 않는다, 생각을 하려 하지만 멍하다, 글을 읽어도 내용이 안 들어온다

2. 감정의 피로: 웃고 넘길 일에 울컥 화가 난다, 집에선 별로 웃지 않는다, 그렇게 슬프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은 포인트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져서 주변에 민망하다.

3. 관계의 피로: 자신의 감정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 진다, 특정 대화 주제에 대해 피하거나 반대로 과하게 열성적으로 변한다, 타인의 말에 공감해 주기 싫어진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귀찮고 싫어진다. 비교적 편한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점점 무례해진다.


한 번 오늘 하루 자신의 피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퇴근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당신에게 가장 크게 밀려오는 피로는 무엇인가?




신체의 피로와 내면의 피로가 누적되어 결국 버티기 어려운 임계점에 이르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앞선 글들에서 강조했듯이 사람은 직장에서 내가 느끼지 못했던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 등을 여가 시간에 채워야 한다. 그러므로 여가 시간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자, 유, 관을 골고루 챙길 수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피로 누적으로 인해 마음 영양을 채우려 움직일 힘이나 의지가 없다는 것.


이는 지극히 당연하다. 엄밀히 말해 취미도 피로 누적을 시키는 활동이다.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피로 누적의 요소다. 아무리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 한들 이미 꽉 차있는 배에 집어넣으면 소화는커녕 위궤양만 일으킬 것이다. 피로한 당신에게 '취미가 이렇게 좋은 것이니 만들어서 해보세요'라고 하는 것은 피로로 빈자리가 없는 당신의 마음에 궤양만 일으킬 뿐이다.


그러나 여가를 통해 마음의 영양을 보충해야 하고 여가 시간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영양가 있는 음식이 '취미'임을 감안했을 때, 마음속의 꽉 찬 피로를 소화시켜 다른 재미와 활력을 줄 수 있는 빈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마음 영양 결핍을 막기 위해 필수적이다.


인간의 피로는 어떤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는가? 휴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휴식의 종류는 간단히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적극적 휴식

-소비적 휴식


뜻을 설명하기에 앞서 각각의 예시를 보면 어렴풋이 감을 잡기 좋을 것이다.


적극적 휴식의 예시

-명상

-홀로 산책

-20분 이내의 짧은 낮잠

-차 한 잔 하며 멍 때리기

-창 밖의 나무나 하늘 조용히 바라보기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요가


소비적 휴식의 예시

-치킨 시켜서 맥주 한 잔 하기

-OTT에서 재밌는 예능 보기

-친구들과 술 한 잔, 혹은 커피 한 잔 하며 수다 떨기

-SNS에서 친구들 소식 구경하기

-웹툰 정주행하기

-재 목적의 독서

-재미로 모바일, 컴퓨터 게임 하기


적극적 휴식은 오로지 휴식의 목적을 가진 고도의 휴식을 뜻한다. 적극적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오로지 몸과 마음의 회복을 중점으로 하는 휴식이다. 적극적 휴식을 취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여러 가지 피로에서 회복될 수 있으며 적극적 회복의 중요한 포인트는 다른 종류의 피로 누적이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소비적 휴식은 오로지 휴식의 목적을 지닌 휴식은 아니다. 소비적 휴식의 주목적은 하루동안 억눌린 욕망과 쾌락의 김을 빼는 역할을 담당한다. 부수적인 효과로 여러 가지 피로를 해소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으며, 마음의 3대 영양소인 자.유.관 중에서 자율성이나 관계성을 보조하는 활동이다.


이 두 휴식은 피로를 해소하는 방식이 다르다.


적극적 휴식은 인간의 회복력을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휴식이다. 모든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인간의 몸과 마음은 강력한 회복력이 있어서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회복 과정을 시작한다. 즉,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아주 적극적으로 '가만히 내버려 두어서' 몸과 마음이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것이 적극적 휴식의 핵심이다. 인공광, 도시 소음, 뉴스, 가십, 윗사람, 아랫사람, 가족, 업무, 장시간 앉아있기, 서있기 등... 이런 것들은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인간에게 여러모로 자극이 된다. 적극적 휴식은 우리에게 피로감을 주는 모든 자극들로부터 나를 떨어뜨리는 방식을 사용한다.


명상이 가장 자극으로부터의 괴리를 추구하는 휴식이긴 하지만 명상이 조금은 거창하고 접근이 어렵다면 더 쉬운 형태의 적극적 휴식을 취해보아도 좋다. 좋아하는 차를 마시며 그저 차의 향과 색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쭉 바라보는 것도 좋은 적극적 휴식이다. 홀로 조용한 곳을 가만히 산책하는 것도 좋은 휴식이다. 대화 없이 그저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거닐다 보면 감정과 생각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것도 저것도 어렵다면 딱 10분만 식탁이나 소파에 앉아서 그냥 눈감고 멍하니 시간이 가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결국 적극적 휴식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최대한 무언가를 안 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자체로부터 멀어져 인간의 회복력이 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적극적 휴식이다.


반면 소비적 휴식은 자극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휴식이다. 좋아하는 맛과 향을 가진 음식 먹기,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인스타 릴스나 유튜브 쇼츠를 시청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자극 중에 자신에게 유쾌한 감정을 주는 자극은 취하고, 불쾌한 자극으로부터는 의도적으로 멀어지는 형태의 휴식이 소비적 휴식이다. 유쾌, 불쾌를 아예 떠나 모든 자극을 차단하는 적극적 휴식과 이런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소비적 휴식은 선택적으로 무언가를 해서 휴식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기에 여러 부수적 장점도 있다. 유쾌한 자극들은 그 자체로도 억눌린 욕망의 김을 빼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좋은 소비적 휴식들은 인간의 마음 영양소인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을 보충해주기도 하며, 소비적 휴식 자체가 가장 원초적이고 간단하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장점이 많은 휴식이다.




휴식에 적극적 휴식과 소비적 휴식이 있음을 알았으니 이제 자신의 휴식 상태를 점검해 볼까?

어떤가?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휴식을 영위하는 사람인가?


아니 질문을 바꾸어, 당신의 여가 시간에 적극적 휴식이 포함되어 있는가?

혹시 100% 소비적 휴식으로 구성된 여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앞서 말했듯 소비적 휴식은 굉장히 장점이 많은 휴식이다. 휴식임에도 마음 영양을 보조하고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여러 부가적 효과를 지니고 있으므로 인생에서 아예 소비적 휴식을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꽤나 바보 같은 행위라고 부를 수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여가 시간이 오로지 소비적 휴식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수 있다.

소비적 휴식이 모든 것을 커버하는 완벽한 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소비적 휴식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내게 유쾌함과 즐거움을 준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극은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따라서 소비적 휴식 그 자체가 다른 종류의 피로를 부를 수 있음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누워서 생각 없이 유튜브 숏츠를 보는 것은 운동계 피로, 생각의 피로, 관계의 피로를 일으키는 자극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고, 즉각적인 도파민 보상 체계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상당한 즐거움과 웃음거리를 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인공광, 블루라이트와 같은 신경, 감각계 피로를 안겨주며, 여러 자극적인 정보들을 감내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감정의 피로의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유튜브 쇼츠를 보고 난 뒤라면 다시 감각계 피로와 감정적 피로를 다시 해소하는 휴식이 또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겨난 감각계 피로와 감정적 피로를 또 소비적 휴식으로 처리하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면 조용한 장소에서, 아주 속에 있는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밀한 친구와 정말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타인과의 대화는 아주 즐거운 휴식이나, 생각의 피로, 관계적 피로가 축적되는 행위이다.


이렇게 소비적 휴식으로만 모든 것을 처리하려 한다면 마치 짧은 이불을 가지고 몸을 덮었다가, 발을 덮었다가... 끊임없이 짧은 이불을 몸에 맞게 번갈아 덮는 모습과 비슷해진다.


몸을 다 덮고 자기에 짧은 이불만으로 안된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그렇다. 작은 발 담요라도 하나 들고 와서 그 담요로 발은 덮고, 몸은 원래 짧은 이불로 덮어버리면 된다.


누구나 꽤나 멋진 이불을 하나쯤은 들고 있을 것이다. 소비적 휴식은 이미 많은 이들이 잘하고 있다. 유혹과 욕망에 취약한 인간의 특성상 자신에게 유쾌한 감정을 주는 것들을 자연스레 추구하고 있을 것이니까. 말이 거창하지만 '여가 시간에 배달 음식 한 번씩은 시켜드셔 보세요', '술 한 잔 하시면서 스트레스를 좀 풀어보세요.'라고 누가 조언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만 그것이 조금 짧은 이불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닌데요, 제 이불은 두꺼운데요?', '제 이불은 소재가 좋아요.' 무슨 소용인가? 발을 덮지 못해 발이 시린 건 이불 두께나 소재와는 관계없는 것이다.





자산 투자에서 헷지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가?


예를 들어, 내가 가진 모든 자산을 주식의 형태로 100% 보유할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내 주식이 폭락할 때, 하필 그때 마침 자녀의 대학 등록금이 필요하다든지, 부모님 병원비가 필요하다든지, 그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찾아온다든지 하는 현실의 리스크가 왔을 때 막대한 손해를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때를 대비해 주식만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비율, 주식이 떨어질 때 가격이 오르는 채권을 보유해, 주식이 떨어질 때 손해를 줄여 리스크를 관리하는, 아주 기초적인 투자 방식이다.


이 헷지의 개념이 여가 포트폴리오에서도 적용된다.


소비적 휴식은 멋진 여가 자산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투자하는 것은 리스크 관리가 되지 않는다. 당신은 다양한 피로를 마주해야 한다. 그것을 소비적 휴식으로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환상에 가까울 수 있다. 더불어 소비적 휴식은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을 보충할 수 있는 '부수적' 효과가 있을 뿐이지 그게 주된 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직장에서도 자, 유, 관의 섭취가 부족한 데 여가에서까지 부족하다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마음의 영양결핍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음의 영양결핍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ttps://brunch.co.kr/@gondoorebob/21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비적 휴식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 역시 게임이라는 소비적 휴식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인간이며 필자의 여가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상당하다. 그러나 여가 시간에 100% 게임만 즐기는 것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지 않겠는가?


소비적 휴식이라는 여가 자산을 더욱 행복하게 즐기기 위해서라도 적극적 휴식, 취미라는 헷지 자산을 당신의 여가 포트폴리오에 집어넣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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