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의 영양 실조

고봉밥, 자기 파괴의 시작

by 홍충희
Google Gemini Generated


옛날 한국의 밥상 사진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현대의 한국 밥상과 눈에 띄게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고봉밥.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밥상 앞에서 사진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조상님들 앞에는 깡마른 체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양의 밥과 소박한 찬들이 개다리소반 위에 정갈히 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상님들이 고봉밥을 드셨던 이유, 더불어 현대에는 더이상 고봉밥을 잘 먹지 않는 이유는 단백질이다.


과거 한국인들은 여러 경제, 사회, 자연, 제도적 원인으로 인해 만성적인 단백질 섭취 부족에 시달려야했다. 우리의 조상님들의 식탁에 올라온 식품 중에 단백질 섭취원이 될만한 것은 콩류, 젓갈 조금 정도. 그나마도 바닷가나 살림살이가 괜찮은 집 기준이었을 테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밥에 미량 들어있는 식물성 단백질을 주로 섭취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단백질 섭취 부족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우리 조상님들의 신체는 고봉밥을 선택했다. 부족한 단백질과 에너지원을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 자연스레 고봉밥을 먹게된 것이다. 조선 말기, 하루 2끼를 먹는 성인 남성의 밥 1공기는 500~600g에 달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현재 즉석밥 1공기의 기준이 210g임을 감안할 때 조상님들은 이 즉석밥을 하루에 6개 정도를 먹은 셈이다.


그렇다면 고봉밥은 한국인의 단백질 섭취 부족 문제를 해결해주었을까? 당연히 해결하지 못했다. 현대에 들어와 육류, 어류, 유제품 등 단백질 섭취가 늘기 전까지 한국은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까지도 만성적인 허기와 발육 부진에 시달려야 했다. 고봉밥을 먹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지만, 결국엔 미봉책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마음의 영양소 결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체가 부족한 3대 영양소를 채우기 위해 식사량을 늘리는 선택을 하듯 마음도 부족한 3대 영양소인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을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한다. 더불어 인간의 마음에 결핍이 생기게 되면 먹는 음식이 많아지듯, 결핍을 채우기 위한 행위가 생기는 것이다. 헌데 이 행위의 방향을 우리가 잘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요즘 인터넷의 만성적인 문제, 악플러들은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고봉밥'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수많은 심리학 연구들이 온라인 공격성의 가장 큰 원인으로 '현실에서의 무력감'과 '사회적 고립'을 꼽는다. 이는 '마음의 3대 영양소' 관점에서 보면, '유능감'과 '관계성'의 극심한 결핍 상태를 의미한다.


악플을 쓰는 사람들의 심리도 결국 본능적으로 마음의 영양소를 추구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자율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도 없고, 그 과정에서 유능감을 느끼며 살지도 못하고, 의미있는 타인과 교류하며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만성적인 마음의 영양소 결핍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든 이 3대 영양소를 채우려 어떤 행위들을 하게 되는데 슬프게도 그것이 악플이 될 때가 있다.


누군가를 싫어하고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은 자율적이라고 착각하기 딱 좋다. 내 의견에 따라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혐오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모두가 칭송하거나, 슬퍼하거나, 기쁜 상황에서 반대의 언행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나는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 '나는 남들이 하기 무서워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이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특별한 언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따위의 뒤틀린 기능감을 얻을 수도 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관계감도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고봉밥이다. 정말 자기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혐오하는 사람은 잘 없다. 보통 인터넷 여론이나 커뮤니티에 따라 부화뇌동한 것에 불과하다. 어느 순간 인터넷 여론이 바뀌면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의견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모습에는 그 어떤 자율성도 발견할 수 없다. '남들이 하지 않는 언행'은 자기가 똑똑해서, 혹은 이성적이어서가 아니라 도덕성이 발달하지 못해서, 혹은 대인관계지능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영향감은 타인에게 2시간이면 잊혀질 얄팍한 영향감이며 관계성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있는 사람', '따뜻한 상호작용' 따위는 하나도 없는 유사 관계성에 불과하다.


악플같은 것이 그 인간에게 진정한 마음의 영양소들을 가져다 줄리는 만무한 것이다.


그럼에도 악플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꽤나 간단하다.

악플이라도 계속 달지 않으면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 없으니까.




마음의 영양 결핍이 극단으로 흐르게 된 예시가 악플일 뿐, 우리도 간혹 마음 영양 결핍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고 있지는 않을까. 직장에서 퇴근한 뒤 공허감에 숏츠나 릴스 등으로 저녁을 떼우거나,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을 마구 주문할 수도 있으며, SNS나 로고플레이등을 통해 과시적인 소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등, 우리도 '고봉밥'같은 실수를 충분히 저지를 수도 있다.


이제 당신의 마음 영양을 위해 스스로 되짚어보자.

진짜 당신의 마음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핍되고 있는 영양소는 무엇인지.


만약 당신의 마음 영양을 위해 고봉밥을 계속 먹고 있다면 이제 수저를 멈춰보자.

이제 양으로만 배를 채우는 '고봉밥'이 아니라 조금은 작더라도 당신에게 필요한 영양가가 듬뿍 들어있는 반찬을 찾아보자.


이를테면 '달걀'같은 것 말이다!

마음의 '달걀'이 되줄 무언가를 찾아나서보자. 마트에서 달걀 한 판 찾는 것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듯,


마음의 '달걀'도 생각보다 먼 곳에 있지 않을 수 있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5화마음의 3대 영양소: 자, 유,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