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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3대 영양소: 자, 유, 관

탄, 단, 지만 기억할 게 아니다.

by 홍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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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존을 위해 영양소가 필요하다.


육체의 건강을 지탱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하는 3대 영양소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다. 이 세 가지 영양소는 몸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원이며 생존에 필수적인 칼로리를 제공한다.


만약 탄, 단, 지의 섭취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몸은 움직일 수 있는 열량을 얻지 못하므로 우리 몸에 저장되어 있던 근육, 지방 등의 부분에서 열량을 꺼내어 쓰기 시작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영양소들. 그런데 이런 영양소가 마음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의 마음에도 에너지원이자, 마음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동력을 제공하는 영양소가 존재한다. 그리고 당신은 삶의 매 순간에서 자기도 모르게 이러한 마음의 영양소들을 섭취하고 있다. 만약 마음에도 영양소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신체 건강을 위해 식단을 신경 쓰듯, 마음의 건강을 위해 '마음 식단'을 세우고 신경 쓰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건강한 '마음 식단'을 위해 '마음의 영양소'를 알아보도록 하자.


마음의 영양소를 우리에게 소개한 학자는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으로, 그들은 자기 결정성 이론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고 생동하게 하는 3가지 원동력을 제시했다.


1. 자율성

2. 유능성

3. 관계성


신체에 탄.단.지가 있다면 정신에는 자.유.관 있다.


탄.단.지가 사람의 육체를 살아있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원이라면 자.유.관은 사람의 마음을 살아있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만약 이 셋 중 하나라도 섭취가 부족할 경우 마음은 힘이 빠지고 생동하기 어려워한다. 반면에 이 세 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사람의 정신은 생동감과 행복감으로 충만하게 살찔 수 있다.




마음에도 영양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제 각자의 '마음의 식단'을 자세히 세우기 위해 자, 유, 관이 각각 어떤 영양소들인지 간단히 알아볼 필요가 생길 것이다.


첫 번째 영양소는 자율성이다. 자율성은 내가 선택하고 원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충만감이다. 인간은 자기가 선택한 과업에 대해 훨씬 높은 만족감을 느낀다. 반면 타인이 시킨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거나,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 통제감을 느낄 때 인간의 만족감은 급감하게 된다. 즉 인간의 행복감을 위해서는 세 가지 중 하나에는 해당되어야 한다. 내가 선택한 과업을 하거나, 타인에게 부여받은 과업이라 하더라도 과업 해결 방식은 내가 선택하거나, 타인이 시킨 과업과 방식이더라도 내가 진심으로 동의했거나. 이 셋 중 하나라도 해당될 수 있다면 충분한 자율성 섭취가 가능하다.


두 번째 영양소는 유능성이다. 유능성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욕구이다. 환경에 따라 적절하게 나 자신이 기능하고 행동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충만감이다. 유능성은 인간에게 자신의 능력과 존재 가치에 대해 긍정적 재평가를 하도록 돕는 감정이다. 충만감을 위해서는 적절한 난이도 설정이 중요하다. 적절한 난이도란 본인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때 겨우 해결되는 정도의 난이도를 뜻한다. 너무 어려운 난이도의 과업은 해결 자체가 어려우니 유능성의 트리거가 될 수 없고 너무 쉬운 난이도는 해결이 된다 해도 유능성을 부를 만한 자극이 되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애써 노력한 끝에 무언가를 해결하거나 해낼 때 유능감을 느끼며 마음을 배불릴 수 있다.


세 번째 영양소는 관계성이다. 관계성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과 따뜻한 상호작용을 할 때 느끼는 충만감이다. 이 관계성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관계성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사람', '따뜻한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그저 길을 가며 지나치는 무작위 한 사람들보다는 가족, 친구, 지인, 동료 등 그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일수록 관계성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따뜻한 상호작용'도 매우 중요하다. 아무 상호작용으로는 관계성을 느끼기 어렵다. '인정', '격려', '지지', '기여', '공감' 등 '따뜻한 상호작용'에 해당되는 관계를 주고받을 때 인간은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즉 정신이 건강할 수 있는 '마음의 식단'에서 우리가 목표해야 하는 것은 자.유.관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고 그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내가 자율적으로 선택한, 조금은 어려운 과업들을 결국에 해내고 그 과정에서 타인과 따뜻하게 잘 지내는 것.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위 문장에는 다음과 같은 예시들이 있을 것이다.


산이 좋아서 스스로 등산 동호회에 가입하고, 평소에는 엄두도 못 냈던 '지리산 종주'를 목표로 설정한다. 종주를 위해 몇 달간 꾸준히 체력 훈련을 하고, 산행 중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완주해냈을 때 엄청난 성취감을 느낀다. 혼자였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를 힘든 순간에, 사람들이 "다 왔어요!", "조금만 더 힘내요!"라며 서로를 응원하고 이끌어준다. 정상에서 함께 일출을 보며 나누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눈다.


평소 동경하던 문화권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에서 스스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외워도 계속 잊어버리는 단어와 복잡한 문법 때문에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공부하여 결국 원어민과 어느 정도 가벼운 대화는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혼자 하는 대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서로의 발음을 교정해주고 문화 교류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요즘 고민이 많은 친구를 위해, 내가 직접 메뉴를 정하고 장을 봐서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로 마음먹는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조금 복잡한 요리에 도전해서 레시피를 보며 애쓴 끝에 꽤 그럴듯한 음식을 완성했을 때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의 모습에 뿌듯해하며, 식사 내내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음악이 좋아서, 학창 시절의 꿈이었던 밴드를 만들어보기로 친구들과 의기투합한다. 처음에는 손가락도 잘 안 움직이고 화음도 맞지 않았지만, 꾸준히 합주를 연습한 끝에 좋아하는 밴드의 어려운 곡을 완벽하게 연주해냈을 때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 작은 실수도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맞춰가는 과정 속에서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다. 동네 작은 카페에서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함께 땀 흘린 멤버들과 맥주 한 잔 하며 서로를 격려한다.


도시 생활에 지쳐 흙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에,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서툴지만 나만의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다. 씨앗을 심어도 싹이 나지 않거나 벌레가 생기는 등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책과 유튜브를 보며 배워가며 마침내 직접 키운 첫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옆 텃밭의 어르신께서는 병충해를 막는 법을 알려주시고, 나는 넉넉하게 수확한 상추를 나눠드린다. 서로 농사 정보를 교환하고 가끔은 막걸리도 한잔 하며 땀 흘리는 즐거움을 공유한다.


만약 당신의 삶이 이 예시들과 위와 유사하다면 스스로의 삶을 나쁘게 표현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그러나 위 문장과 무언가 큰 괴리가 존재할 경우 당신의 삶에서 마음 영양 불균형이 조금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체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챙겨 먹듯, 우리의 마음도 세심한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어쩌면 당신은 이미 스스로의 마음을 위해 좋은 영양소를 섭취하려 애쓰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줄 몰랐을 뿐. 세상에 완벽한 식단이 없듯, 오늘의 마음 식단 역시 세 가지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는 식단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결핍을 자책하기보다, 오늘 내 마음에 가장 필요한 영양소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기꺼이 챙겨주려는 그 다정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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