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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두레밥 Nov 23. 2023

작가 이름 뭐하지?

정겹고 촌시럽고 키치한 단어에 관하여


게임 캐릭터 이름은 정하는 것은 게이머에게 매우 큰 중대 사항이다.

게임 세계의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선 여러 가지 면에서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을 정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인기 게임의 경우 이것도 만만치는 않은 작업이다. 모름지기 캐릭터의 이름이란 멋지거나 예뻐야 하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거기서 거기라 멋지면서 흔할수록 이미 누군가가 채어간 이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때 메이플 스토리라는 게임에서는 게임 캐릭터의 이름을 경매하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는데 단지 그 게임 속 캐릭터 이름을 구매하는데 3000만 원의 돈이 오갔다는 뉴스를 본 적 있었다. 내 이름을 돈주고 지어도 그것보다는 싸게 지을 수 있겠다는 몰이해적 생각이 대뇌를 어루만지나 초인적인 냉정함으로 타인에 대한 똘레랑스를 빠르게 장착시킬 필요가 있는, 요지경 요세상류의 뉴스였다.


여하튼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존경스러운 컨셉의 손님이다. 닉네임의 예술성을 위해 취향까지 바꾸다니









당신은 뭐가 되었든 '이름'을 지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 질문을 조금 바꾸어야겠다.


"혹시 이름을 지어본 적 없어요?"


나의 짧디짧(고싶)은 인생 경험에 비추어볼 때, 다 큰 성인이 평생 이름을 지어본 적 없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자녀 이름, 강아지 이름, 고양이 이름, 햄스터 이름, 게임 캐릭터, 작가명, 각종 포털의 닉네임, 인터넷 카페 가입 닉네임 등. 우리는 한번씩 이름을 지어야 하는 순간에 맞닿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만 인류가 실존적이고도 중차대하며 그 어느 누구도 답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자문을 공통적으로 할 것이다.


'아씨... 이름 뭘로 짓지?'


본디 이름이란 무언가의 정체성과 성격, 배경 등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겠는가.

'이름'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함부로 지을 수는 없는 법.


이러다 보니 사람들마다 이름짓는 전략이 다르다.


누군가는 그때그때 적절한 이름을 생각해 내는 즉석 작명가 유형이 있을 것이고 혹자는 미리 정해놓은 고정 이름들로 짓는 유비무환 작명가 유형이 있을 것이며...


요즘은 캐릭터 배경을 설명하며 AI에게 도움을 청하는 하이테크형 작명가도 존재한다.


녀석의 실력이 제법이지만 '강한우'처럼 갈빗대가 군침도는 이름은 좀 곤란하다.





나의 경우엔 '미리 정해 놓은 이름' 중 하나를 고른다. 따라서 고민의 여지가 남들에 비해 적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여섯 가지 이름 리스트를 정해놓고 만약 이 이름이 누군가와 겹쳐진다면 그다음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나의 비밀 이름 리스트들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한 것으로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밝히지 않는 특급 기밀 정보인데 그리고 그 이름들 중 가장 꼭대기에 올라와있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지금의 작가명 '곤두레밥'이다.




"곤두레밥"




웃긴 건 난 살면서 곤드레밥을 먹어본 적도 없다.


그러나, 난 이 단어를 사랑한다.

이 단어가 가진 키치함 때문이다.

(정확히 미학의 정의에 따르자면 키치(Kitch)가 아니라 캠프(Camp)라는 개념에 가깝다고 하더라만 그런 거에 집착하는 거 자체가 "키치"하지 않으니까 난 그냥 키치라고 하련다. 반지성주의 반동분자라 해도 할 말 없는 태도이긴 하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전두엽 저 편에 처박혀서 꺼내질 일이 없던 단어가 슬그머니 등장하면서 느껴지는 뭔가 모를 정겨움?


곤드레를 '곤두레'로 잘못 쓰는 맞춤법 오류를 저지를것 같은, 등산과 막걸리를 좋아하는 장년층 삼촌의 취기에서 우러나오는, 밉지 않은 촌스러움?


향긋한 곤드레 나물과 밥이 어우러져 뿜는 흙내음과 숲의 향기가 비강에 걸려 머물러있는 듯한 아늑함?


정겹지만 촌스럽고, 허나 밉지 않고 아늑한 곤.두.레.밥


단어하나가 어떻게 이런 복잡한 감정을 인간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단어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떤 말을 사랑하겠는가.


볼로네제 라구 라비올리?

그레이비 트러플 뵈프 부르기뇽?


커프스단추에 레지멘탈 넥타이를 잘 조여맨 남자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위해 의자를 슬그머니 빼어주고는 일류 셰프님이 미학적으로 마련해 주신 아뮤즈부쉬를 향해 손을 뻗는 장면이 상상되는 단어다. 누구나 있을법한 우리 안의 자그마한 사대주의를 살살 긁어대며 미약한 허영심을 떠오르게 하고 그와 동시에 긴장을 불러온다. 왠지 이 음식이 적힌 메뉴판에는 뜻 모를 주류와 음식들이 꼬부랑말로 쓰여 있고 메뉴명 옆에는 더욱 낯선 가격이 5.5 따위의 생소한 표기법으로 적혀 있을 것 같다.


정말 멋진 단어들이지만 내가 가진 아비투스가 촌사람이라 그럴까? 단어에 미묘하게 내재된 지적인 우악스러움이 마음에 조금 걸린다. 좋아할 수 있을지언정 사랑하기 쉬운 단어는 아니라는 감상이 든다.


나는 내가 쓸 글이 '곤두레밥'같기를 바란다.


정겹고 촌스럽고 아늑하고 보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오는, 소화 자알 될 것 같은 그런 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한 그릇, 한 문단 먹고 따뜻하게 나가는 그런 글.


이런 글을 지향하는 작가의 필명이 "샤또네프 뒤 빠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곤두레밥 작가의 곤두레밥 같은 글.

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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