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다는 것.
엊그제 쓰던 다이어리가 몇 장 남지 않아 새 것을 주문했다.
작년에 ‘불렛 저널’을 알게 되어 같은 제목의 책을 읽어보고 유튜브 영상으로 여러 사람들이 활용하고 있는 방법도 배웠다.
불렛 저널을 쓴 지 1년 반이 다 되어가지만 사실 ‘이거다!’싶은 나만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획기적인 나만의 시간 관리 방법이나, 이걸 쓰고 나서 인생이 달라졌다고 큰 소리 칠 입장도 안 된다. 오히려 지면이 주어져 있으니 그 날의 감상, 아이들과 우스웠던 일, 힘들다는 푸념 등등 건빵 속 별사탕 같은 자잘한 이야기를 모아두는 용도로는 잘 쓰고 있다.
새 다이어리를 주문했으니 ‘나도 좀 계획적인 사람이 되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봐야겠다.’ 마음먹고 불렛 저널 활용 영상을 또 찾아본다. 이렇게 해서 시도한 여러 가지 기록법들이 대체로 나를 옥죄는 느낌이 들거나 피로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에서 자신의 불렛 저널을 소개한 주인공은 서울대 박사 연구생이라고 했다. 든든한 타이틀이 주는 신뢰감에 기대어 집중했는데 그녀의 기록법보다 말이 더 와 닿는다.
내가 ‘한다’가 아니라, 나한테 ‘이것 저것 시켜본다.’는 아이디어가 무척 낯설고도 매력적이었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결과에 대한 책임의 무게도 내 것이다. 목표 달성 위해 할 일을 기록하고 시간을 안배하지만,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을 때(내지는 안 했을 때) 나의 게으름을 탓하게 되면 자존감이 풍선 바람 빠지듯 한다.
반면에 나한테 ‘시킨다’고 생각하면 의지는 내 곁에 앉아 있는 다소간 말 안 듣는 어린애가 된 것 같다.
- 이렇게 했는데 안 되네. 잘 못하네. 그럼 다른 방법으로 시켜야겠다.
나를 탓하지 않고 방법을 탓할 수 있다. 작심삼일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삼일 정도 시도해 볼 기회가 생긴다.
테라스에 심어놓은 글라디올러스도 참 낯선 식물이었다. 활짝 핀 꽃은 그림과 사진으로 흔하게 봐서 익숙했지만 자라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꽃이 피기 전까지 매일의 변화가 낯설기만 했다.
백합과 글라디올러스를 같은 날 심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둘 다 싹이 텄다.
-어떤 게 백합이고 어떤 게 글라디올러스지?
하나는 원통형 줄기에 빙 돌아가면 가늘고 긴 잎사귀가 난다. 다른 하나는 빳빳하고 납작한 잎사귀가 내 손바닥보다도 길게 땅에서 바로 솟아 나온다. 원통형 줄기는 미래가 쉽사리 예측되는데 납작한 잎사귀는 다소 난해했다.
-이렇게 잎이 나는 식물은 처음 보네. 줄기 어디갔어, 줄기.
잎사귀는 한 쪽으로 휘어져 자랐는데 며칠 뒤 반대 방향으로 휘어지는 또 하나의 잎사귀가 뾰족 나왔다. 이후 홀짝 놀이를 하듯 왼쪽으로 기우는 잎사귀, 오른쪽으로 기우는 잎사귀가 사이좋게 기존의 잎사귀들 가운데서 솟아나오길 반복했다.
- 세상은 넓고 식물은 다양하군. 그럼 도대체 아름다운 꽃은 어디서 나타나는 거냐?
잎사귀가 한지같이 얇은데 코팅한 것 같이 빳빳해서 원통형 줄기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7월 초 드디어 궁금해 하던 꽃대가 나타났다! 홀짝 놀이가 이제 끝났다. 가느다란 원통형 꽃대는 잎사귀들 사이에서 위로 곧게 자라났다.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게 느껴질 만큼 빠르게, 그 어느 잎사귀보다 높게 솟아 꽃봉오리를 대여섯 개 맺었다. 열흘 정도 지나 아래서부터 피어나는 노란 글라디올러스 오배티의 꽃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제법 여러 식물들을 키워봤지만 글라디올러스야말로 정말 낯설고도 매력적이었다. 자라나는 모습이 무척 특이하게 느껴졌는데 지나고 보니 같은 날 심었지만 더디게 크고 있는 아이리스도 비슷하고, 요새 마트에 많이 나오는 부추도 들에서 이렇게 자라날 것만 같다. 낯선 식물을 키운 덕분에 한 수 배웠다.
낯설고도 매력적인 식물, 생각, 그리고 세상. 인식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것들.
낯설고도 매력적인 식물, 글라디올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