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 이야기 4. 배롱나무

시절인연

by 다락방지기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분명히 그때 나와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다.

모든 것은 내 깊은 선택이며 우주적인 계획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법상스님의 글>


바야흐로 배롱나무의 계절이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교화가 백일홍이다. 학교 앞건물과 뒷건물 사이에 둥그렇게 벽돌을 쌓아 만든 화분에 아이 키만한 백일홍이 심어져 있었다. 구불구불 자라난 나무 줄기에서 꽃이 피기 시작할 때 즈음이면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6학년 때 특활 부서로 원예부에 가입했다. 나이가 지긋하시고 배가 나온 할아버지 선생님께서 국화 꺾꽂이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 시절, 백일홍이 백일동안 붉은 꽃이 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것도 같이 알려주셨다.

그 때는 백일홍과 배롱나무가 비슷하게 생긴 다른 식물이라고 믿었다. 같은 종이라면 왜 다른 이름으로 부르겠는가? 기쁨이면 기쁨, 슬픔이면 슬픔이지 기쁘면서 슬프다는 건 없었다.


내가 본 최고의 배롱나무는 단연코 병산서원 배롱나무다.

대학 다닐 때 친한 동기 언니와 병산서원이 있는 안동을 여행했다. 언니는 광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는데 나보다 한 살 위였다. 마르고 자그마한 체구의 언니는 폴로 티셔츠를 입을 때면 단추를 하나도 빠짐없이 잠궜다. 절대로 큰 소리로 말하는 일이 없어 항상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말에 집중하게 만들었는데 때때로 시덥지 않은 농담에도 재미있어 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나게 웃었다.

언니한테는 나 말고도 같은 과에 절친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나랑 그 절친은 대면대면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언니 말로는 같은 과 절친은 함께 있으면 너무너무 웃기고, 나랑 같이 있으면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언니랑 같이 있을 때면 언니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 해야겠다 다짐하곤 했다.


우리는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 유럽여행을 함께 했다.

발령받고 첫 여름방학은 ‘말하느라 지쳐’ 템플스테이를 하러 갔다.

그리고 어느 해 여름 안동에 갔다.


광주에 살던 언니는 우리 집에서 묵었고 아빠가 차로 안동까지 데려다 주셨다. 아빠는 딸의 절친한 친구가 놀러 온 게 무척이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기사 노릇을 자처했다. 하회마을을 돌아보자 한여름 경상도 더위에 그만 지쳐버렸다. 너무 더워 지붕 있는 서원 평상에 앉아 쉴 생각뿐이었다.

힘을 짜내어 병산서원으로 가는데 그 입구에 줄지어 선 배롱나무를 보자 마음이 싹 바뀌었다. 카메라를 꺼내 연신 셔터를 누르며 배롱나무와 우리를 사진으로 담느라 바빴다.

병산서원의 배롱나무 군락은 초등학교에 심어져 있던 백일홍이나 마을주민센터에 심어진 배롱나무와는 달랐다. 이 더위에도 아름다운 꽃이 아이맥스 영화관 같이 시선을 꽉 채울만큼 피어있고 그 뒤로 빛바래고 낡은 목조 입구, 앞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강. 마치 1600년대 어느 날에 시간이 멈춰있는 것만 같았다.

나와 언니는 그 시간이 사라진 순간에 함께 감탄했다.


매년 여름 뜨거운 열기 속 배롱나무 꽃을 보면 언니가 생각난다. 병산서원에서 함께 했던 여름 생각이 유럽으로 갔다가 템플스테이로 갔다가 대학교로 갔다가 동아리로 갔다가 그렇게 떠올릴 게 많아진다.


이십대 초반, 언니는 내게 중요한 인물이었는데 졸업하고 몇 년이 흐르자 손에 쥐고 있던 모래가 빠져나가듯 서서히 멀어졌다. 학생이던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의 교사가 되어 학교를 일하러 다녔고, 언니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 무리 속에서 일상을 이어갔다. 나 역시 언니가 전혀 모르는 장소, 모르는 사람들 속에 내 터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내 결혼을 앞두고 언니를 만나러 광주에 간 적이 있다. 언니한테는 직접 만나서 결혼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나도 알고 지냈던 동아리 선배이자 언니 남편이 광주역까지 마중 나와 주었다. 선배는 언니와의 결혼식 때 봤던 것보다 배가 제법 나오고 헤어스타일도 대범해졌다. 집에서 기다리던 언니는 백일된 아들 때문에 대화에 집중하질 못했다. 아기는 그냥 곤하게 자고 있을 뿐인데 언니는 웬일인지 정신없어 보였다. 남편의 야근을 탓하고 무심함을 나무라고, 딩크족도 괜찮다며 푸념을 늘어놓더니 웨딩 앨범을 꺼내 주고는 아기를 돌보러 갔다.

내가 알던 언니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난 것만 같았다. 몇 년만에 만나 반가웠지만 서로 달라진 삶의 간극을 확인하고 서운했다. 달콤하면서 씁쓸한 기분.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사실만이 변함없는 진리. 언니는 내가 이십대 초반 반드시 만나야만 했던 좋은 사람이었나 보다.


지난 해 테라스 정원에 꽃나무를 심고 싶어 하던 남편에게 배롱나무를 추천했다. 내 기억 속의 배롱나무 이미지는 조금 오래되고 낡은 느낌의 나무라 처음엔 꺼려졌는데 이 더위에 꽃 피우고, 월동도 할 수 있는 꽃나무가 얼마나 되겠는가. 나뭇가지 두 개를 꽂아 놓은 듯 자랐는데 한 겨울을 나며 한 그루만 살아남아 이 더위에 쑥쑥 잎을 내고 있다. 아무래도 올 해는 꽃까지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잘 키워 언젠가의 한여름에 붉은 꽃을 보게 된다면 언니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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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배롱나무들. 껍질이 벗겨진 듯 하얗고 매끄러운 줄기가 오랜 세월 여닫은 탓에 닳은 한옥 문짝 같다.

배롱나무는 나무 밑둥에서도 어린 잎이 나오고 가지치기를 안 해주면 그저 한없이 한 줄기로 뻗어나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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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 심은 배롱나무도 한 줄기로만 쑥쑥 자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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