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 이야기 9. 정리의 시간

죽어야 볼 수 있는 뿌리를 생각하며.

by 다락방지기

지난 주말, 죽은 수국을 화분에서 뽑아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충치가 생긴 치아를 뽑는 것처럼 밑둥을 꽉 잡고 양 옆으로 흔들어 겨우 빼냈다. 뿌리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앞으로도 볼 일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실 같은 잔뿌리가 화분 모양대로 빙글빙글 엉켜 흙을 꽉 쥐고 있었다. 살고자하는 의지만큼 꽉.

- 저 가는 뿌리로 물과 양분을 빨아 올리고 잎도 피워, 꽃도 피워 참 기특도 하다.


흙은 아무리 털어보아도 식물과 한 몸이 된 것처럼 딱 붙어 있어 뿌리와 같이 ‘썰어냈다’.

그마저도 어려워, 죽은 식물과 꼭 그 덩치만큼의 흙을 같이 내다버렸다.



매일 아침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꽃눈이 나오고 잎사귀가 많아지자 올 해는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겠다며 신이 났다. 꽃망울이 자리 잡고는 몇 개나 생겼는지 세어보며 부자가 된 기분이었고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꽃이 피는 게 감사했다. 비슷한듯 다른 색의 꽃이 활짝 폈고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행복했다.

- 아, 이제야 수국을 좀 잘 키울 수 있겠다. 감 잡았어.


수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더니 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말라가며 순식간에 죽었다. 불과 열흘 사이의 일이었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죽었다는 걸 알았지만 쉽게 정리하지는 못했다.

- 뿌리는 살아있지 않을까?

- 적당한 환경에 두면 다시 조그마한 싹이 올라오지 않을까?

화분 둘레에 잡초가 무성해질 때까지도 쉬이 뽑아내질 못하고 미련이 남았다. 알고는 있었다. 뿌리는 맨 먼저 앓다가 죽었을 거고 잎과 꽃은 뿌리가 죽었기 때문에 그 뒤를 따른 것 뿐.



꽃을 키우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기쁨과 죽은 뿌리를 보는 슬픔은 한 몸이었다. 영원히 사는 식물은 없으므로 테라스에 나가 있는 식물들도 언젠가는 죽은 뿌리를 보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때 이 나무를, 이 꽃을 내가 얼마만큼 사랑했는지 슬픔의 무게로 가늠될 것 같다.


수국이 살던 화분은 덩그러니 비워졌다.


찬 바람불고 눈이 내리고 다시 볕이 따뜻해지면 뭐라도 또 심으면서 기대하게 될거다. 지금은 죽은 뿌리를 보는 슬픔부터 묻은 다음에.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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