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만 배우면 나도 스타벅스 파트너!
파트너 등록을 한 날로부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그 사이에 없는 돈을 긁어모아 뉴욕을 여행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화요일은 드디어 첫 출근일이었다.
트레이닝 1일 차
걱정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앞으로 내가 일하게 될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이곳이 나의 캐나다 라이프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줄 이 때는 몰랐다.
나의 트레이닝 일정은 화, 목, 금 8시부터 네시 반까지였다. 한 주의 쉬프트는 에이포 용지에 프린트되어 창고 냉장고에 붙어있었다. 오픈, 마감 등 근무 포지션에 따라 형광펜으로 색칠이 돼있었는데, 아직 미처 시스템에 반영되지 못해 랜덤 한 단어가 쓰여있는 내 이름 옆에는 트레이닝을 뜻하는 주황색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들어가니 줄리가 나를 반겼다. 그리고 먼저 백오피스로 데리고 갔다. 안쪽에는 3일 간 나의 트레이닝을 담당해줄 크리스틴이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틴은 속눈썹이 아주 길고 금발과 짙은 갈색이 섞인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볼 법한 인플루언서 같았다. 크리스틴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내가 자신의 첫 트레이니라며 설레 했다.
크리스틴과는 삼일 내내 함께 했는데 정말 성격이 좋고 나이스 했다. 매장에 모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흔히 미드나 외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외국 소녀처럼 발랄했다. 나중에 크리스틴이 98년생이라는 걸 알고는 정말 놀랐다..! 이때 당시 나이가 만으로 17살. 우리나라로 치면 아직 고3이었다. 오 마이 갓!!
나이를 알고 나니 어려 보이기도 하고, 조금 귀여운 느낌도 났다. 그럼에도 나보다 어렸다니.. 5살이나..! 벌써 누군가를 트레이닝할 정도로 성숙한 게 대단하기도 했다.
트레이닝은 몇 가지 과정으로 나뉘어있었다. 첫째는 이론 교육이었다. 스타벅스 파트너 포탈에 트레이닝 코스가 나와있었는데, 동영상 강의를 듣는 부분도 있었다. 동영상 교육을 다 듣고 나니 학습 마지막에 Knowledge Test가 있었다. 정답률이 80% 이상이 되어야 통과할 수 있었는데 자꾸 Fail을 했다.
뭐지..? 나 분명 잘 듣고 대답한 것 같은데.. 이게 아니라고..?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옆에서 크리스틴은 그럴 수 있다며 재시험 보면 된다고 쿨하게 말해줬다. 거듭되는 탈락에 나중에는 거의 물어보면서 풀었다. 나머지는 다 쉬웠는데 딱! 몇 개가 은근히 어려웠다는 변명을 해본다.
이론 교육이 끝나고 이번에는 매장에 나와서 현장 교육을 받을 차례였다. 첫날은 메뉴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라떼와 카푸치노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스팀 하는 법과 샷 내리는 법, 음료 사이즈에 따른 샷 개수, 시럽 펌프 수 등을 함께 배웠다.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 일관된 규칙이 있어서 비교적 쉽게 외울 수 있었다. 크리스틴은 내가 좀 더 쉽게 외울 수 있게 꿀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크리스틴과 함께 음료 만드는 연습을 해보다가 중간에 주문 들어오는 음료를 만들었다. 실제 손님이 받을 음료라니..! 카페 알바 경력이 꽤 있는데도 괜히 떨렸다. 얼결에 아직 배우지 않은 펌킨 스파이스 라떼와 아메리카노도 만들게 되었다.
방금 전 배운 루틴에 맞게 차근차근 음료를 만들었다. 스팀자에 우유를 부어 스팀을 3초, 우유가 데워지는 동안 종이컵에 펌킨스파이스 시럽을 세 번 펌핑한 후 1샷 버튼을 누른다. 샷이 다 뽑히면 시럽을 수저로 살짝 섞어주고 스팀이 끝난 스팀자는 꺼내서 탕탕. 우유를 부어주고 펌킨 스파이스 파우더를 올려 마무리해주면 끝!
스타벅스는 음료 만드는 모든 과정이 수치화돼있다. 음료 사이즈와 종류에 따라 우유 스팀을 하는 시간부터 시럽 펌핑 수, 쉐이킹 횟수 등 모든 것이 말이다. 스타벅스가 전 세계에 동일한 맛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파트너의 역량에 따른 변수를 배제하고 음료 제조의 모든 과정을 수치화하는 것. 그게 바로 첫 번째 비법이었다.
또한 스타벅스는 인프라적인 부분에서도 일관적인 맛을 내기 위한 노력을 한다. 바로 커피머신에서 말이다. 스타벅스의 커피머신은 전자동으로 되어있어서 에스프레소 샷을 내리고 우유 스팀 하는 과정이 굉장히 단순하다. 스타벅스에서 사용하는 마스트레나 커피머신은 제조사 써모플랜에서 스타벅스에 독점 공급하는 머신이다. 그리고 전 세계 스타벅스에서 동일한 머신을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벅스 음료는 전 세계에서 똑같은 맛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평준화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스타벅스가 유독 태운 원두를 사용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스타벅스는 맛의 평준화에 높은 중요도를 두고 있다.
그 덕분에 나는 첫날임에도 음료를 잘 만들어서 손님에게 건넬 수 있었다.
오븐에 푸드를 데우는 법도 배웠다. 스타벅스 오븐에는 버튼이 여러 개가 있는데 버튼을 자세히 보면 스타벅스에서 워밍 해서 판매하는 메뉴 이름이 쓰여있다. 베이글, 데니쉬, 머핀, 샌드위치 등 카테고리를 누르면 그 안에 각각의 메뉴명이 나온다. 데우고자 하는 푸드명을 선택하면 그 제품에 딱 맞는 시간으로 오븐이 돌아간다. 이렇게 편안하고 신박한 오븐이 있다니!
스타벅스 오븐으로 빵을 데우면 놀랍도록 맛있어진다. 이 오븐을 맛본 뒤로 나는 모든 베이커리류를 오븐에 데우게 되었다.
크리스틴과 베이커리도 몇 개 테이스팅 해보며 트레이닝 첫날은 알차게 끝이 났다.
트레이닝 이틀 차
두 번째 트레이닝 날이 찾아왔다! 이 날도 역시나 출근하자마자 이론 교육을 살짝 진행했다. 첫 날 보다는 좀 더 능숙하게 테스트까지 마쳤다. 오늘은 아이스 음료를 배우는 날이었다. 프라푸치노와 리프레셔, 아이스 쉐이큰 티와 스파클링 티! 우리나라는 스파클링 티를 피지오라고 부르는데 여기는 정직하게 스파클링 티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이스 음료는 첫날에 배운 따뜻한 커피보다 훨씬 복잡했다. 넣어야 할 재료들도 많고 과정도 많았다. 그냥 그대로 머리에 넣는 수밖에!
아이스 음료를 다 배우고 나서 틸도 조금 봤다. 틸이란 주문받는 곳을 말하는데, 우리말로 하면 포스를 보는 것과 같은 의미다. 처음에는 크리스틴이 주문을 받고, 나는 옆에서 보면서 컵에 마킹(주문을 받아 적는)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역할을 바꿔서 내가 주문을 받고 크리스틴이 마킹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음료 주문을 한 개 이상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정말 멘붕이었다! 손님 이름도 받아 적어야 하는데 이름이고 뭐고 스펠링도 모르겠고 혼란만 가득했다. 주문받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심지어 지금은 주문받아서 포스에 찍거나, 컵에 마킹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이 모든 걸 혼자 해야 할 것이었다.
주문 몇 건 받고 힘들어서 너무 어렵다고 했더니 같이 일하는 파트너들은 너무 쿨하게 '처음이잖아~', '연습하면 돼!', '다 익숙해지게 돼있어.'라고 말해주었다.
다들 너무 친절해서 조금 안심이 됐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거 정말 익숙해지기는 하는 걸까? 내가 민폐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트레이닝 마지막 날
정말 오늘이 트레이닝 끝이라고요..!? 정녕 이제는 트레이니 핑계조차 댈 수 없다고요? 그렇게 트레이닝의 마지막 날이 왔다. 마지막 날에는 첫날과 둘째 날 배우지 않은 나머지 음료를 배웠다. 그리고 커스터머 서포트라고 불리는 역할의 업무들을 배웠다.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청소를 하는 등 다양한 매장 전반 관리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또, 모카 소스나 휘핑크림 같이 매장에서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들도 크리스틴과 함께 만들어보았다. 그러면서 유통기한 체크에 관한 것도 교육받았다. 소스마다 유통기한도 다르고 재고가 모자라거나 너무 남으면 안 됐기 때문에 신경 쓸게 정말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받아야 할 것들은 얼추 다 배우고 나서 남은 시간은 틸에 서서 주문을 받았다. 둘째 날 보다도 훨씬 오랜 시간 주문을 받았는데, 그래도 하루 경력 있다고 첫 날 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래도 매 순간 긴장이 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특히 나는 손님들의 이름 스펠링을 받아 적는 게 가장 어려웠다. 잘못 쓰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나도 한 번에 착 듣고 착 적고 싶은데 말이야!
열심히 주문을 받고 있는데 매니저 줄리가 퇴근하는 길에 '내일 트레이닝 아닌 첫날이네~ Good luck!' 하며 갔다.
트레이닝 아닌 첫날이라.. 과연 나는 크리스틴 없이 무사히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인가..!
긴장 가득하기도 했지만 재밌었던 스타벅스에서의 첫 3일이 빠르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