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여름, <우정의 언어 예술>이 세상에 나왔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아 삽시간에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책은 나와 별개의 생물처럼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같았고, 나는 책이 내는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이 이끄는 길을 따르는 동안 가장 오래 기억해 두었던 다짐은 마지막 챕터 마지막 문단이었다.
"나는 예술이 더 많은 이들의 언어가 될 때까지
일상과 예술 사이의 연결을 좀 더 촘촘하게 엮어보려 한다. 예술 언어로 생태적인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쌓이면 임계점에 다다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공윤지, 우정의 언어 예술, 소장각, p.145)."
이 문단은 책임감을 자극했다. 덕분에 일 년간 내 상상의 범위를 넘나드는 만남이 이어졌다. 제목 그대로 예술로 우정을 맺는 일의 향연이었다. 환경교육가, 디자이너, 교사, 은퇴자, 종교인, 어린이, 지역문화재단 담당자, 문화기획자, 과학자, 양육인, 다큐멘터리 감독, 기후활동가, 기업가, 큐레이터, 연주자 등을 만나 예술을 매개로 우정을 나누고, 생태전환의 다채로운 면모를 상상했다.
유난히 경쟁이 치열한 대한민국에서 예술로 생태전환을 이야기하겠다는 나를 반겨준 아량 넓은 사람들은 '네 덕분에 생명을 사랑하는 본능을 자각했다.'며 눈을 빛냈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바쁜 일상의 틈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생기가 계속 내 등을 떠밀었다. 아스팔트에 덮여 숨을 쉬지 못하는 도시에 살면서도 생태전환을 고민하는 보통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일 년 여 간 일곱 종의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짓;다와 함께한 '지구색 물감 - 클레이 컬러칩 워크숍'에서는 온/오프라인을 종횡하며 지역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해 땅의 색을 관찰하고 물감을 만들었다. 각자가 사는 지역을 '색'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간은 색다른 배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지구색 물감으로 함께 만든 지도는 우리가 사는 땅의 다채로움을 깨닫게 했다.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은평구 지역 돌봄 센터에서 진행한 '예술로 다시 쓰는 기후 시나리오 - 만약에 말야, 우리'를 통해 어린이들과 디스토피아가 아닌 미래의 기후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뜨거운 지구에서 태어난 것은 아이들의 선택이 아님에도,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상정하는 환경 교육의 대안으로써 새로운 기후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표현할 필요를 반영한 프로젝트였다.
김근태 기념도서관에서는 신중년 참여자들을 만났다. '예술로 쓰는 계절일기' 중 '여름' 편을 담당하여 기획하고 운영했는데, 해당 워크숍은 20-30년 전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냈을 신중년 참여자들의 기억 속 비인간 동식물의 목소리를 찾아 시각화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참여자들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공존의 감각이 유년기 여름 기억에서 되살아나는 시간이었다.
(사)환경교육센터 주최로 진행한 '공존사전' 워크숍과 북토크를 통해 동물의 입장에 공감하며 참여자 중심 교육 방법을 익히고, 환경교육을 위한 예술의 역할을 나누었다.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에서의 '쓰레기 워크숍'은 물질의 순환을 생각하며 나의 필요를 채우고 이제 쓰레기라 불리게 된 물건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다뤘다. 두 만남은 환경교육의 기존 문법에 예술이 접목될 때 어떤 파급력이 있을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짓;다에서 진행한 <우정의 언어 예술>을 8주에 걸쳐 촘촘히 살펴보는 강좌는 바이오필리아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동료가 되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했다. 디자이너, 큐레이터, 양육자, 과학자, 과학교육가, 프로그래머, 연극 기획자 등 각자 일의 영역은 다르지만 생명사랑의 본능을 깨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분들과 친구가 될 수 있어 뜻깊었다. 매주 각 사람마다 실천가능한 바이오필리아 씨앗을 찾기 위한 토론을 통해 생태감수성의 근육을 기르는 시간이었다.
창의적 기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방법으로서 대화 중심 미술 감상 방법을 연구한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였다. 연구를 통해 다양한 시각 예술 작품에 드러난 생태적인 메시지를 감상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 교과 및 통합예술교육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해당 연구를 응용해 인천 동양가배관의 Local Project의 일환으로 '도시를 새롭게 감각하는 소리 찾기 워크숍'에 접목하여 지역에 사는 생명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상상하는 시간을 운영하였다. 아울러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예술강사와 교사 대상 연수 프로그램 '그림이 들려주는 지구목소리'와 '그림을 키우는 공존력' 강의를 개발해 실행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외에도 영유아교원 및 유아예술교육가, 숲 해설사님들께 생태전환을 위한 예술교육 방법론을 공유하는 기회들을 통해 예술 언어가 가진 확장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 년 간 예술로 맺은 우정 이야기 덕분에 나의 생태전환의 경험은 보다 밀도 높은 경험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전에 상상했던 기후 커뮤니케이션의 임계점(臨界點)의 심상(心象)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지구 꼭대기 그 어딘가에 있는 온도계에 표시되는 것'처럼 상상했던 임계점이 지금은 '지구 곳곳에서 좌표점을 찍은 사람들이 기후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분포의 밀도가 보다 빽빽해진 모습'으로 변했다. 마치 넓은 강물을 잇는 돌다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듯, 수많은 바이럴과 밈, 식탁 위에서 욕망의 열기를 식히는 대화의 장면들을 말이다.
일상에서 예술이 생태전환을 위한 기술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예술로 맺은 다양한 우정 이야기를 되짚어보며 위 질문을 탐구하는 이야기이다. 일상에서 작은 틈을 벌려 나눈 창의적인 기후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욕망의 열기를 누그러뜨리고, 주변 생명에 귀 기울이게 했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로 맺은 우정 이야기가 여러분의 생태전환의 여정을 계속 이어갈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며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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