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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윤지 Oct 28. 2024

환경교육을 위한 고민의 연대

(사)환경교육센터 SEEDS 자문단 활동 후기

 지난여름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정성스러운 초대 메일을 받았다. (사)환경교육센터의 2030 자문단으로 함께해 달라는 메일이었다. '자문'이라는 말이 가진 육중함이 내게 어울릴까 고민이 되어 선뜻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사나흘 간 환경교육센터 홈페이지와 보내주신 몇몇 자료를 보며 고민한 끝에 용기를 내어 초대에 응하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용기를 내는 데 메일 속 문구가 결정적이었다.


"포용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동시에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교육을 상상하기 위한 자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작가님이 기존에 펼쳐오신 다양한 문화예술 방식의 활동들이 센터가 지향하는 비전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을이 오기 시작할 무렵 자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자문단으로서 첫 공식 행사는 환경교육센터 30주년 기념 후원의 밤이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기본권을 옹호하는 문화예술


 30주년 기념 후원의 밤은 향후 환경교육센터의 방향인 2030 SEEDS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2000년 설립된 (사)환경교육센터는 환경교육의 대중화와 체계화를 통해 시민들의 친환경적인 가치관과 실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설립된 국내 최초의 환경교육 전문기관이다. 후원의 밤에서 센터 관계자는 '환경교육이 기후위기 시대의 기본권'이라 표현했다.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생태 시민이 되어가는 과정이 곧 환경교육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환경교육센터는 탄소중립, 생태, 기후정의, 캠페인을 주제로 환경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또한 모두를 위한 교육을 지향하며 유아기부터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쳐 각 시기 별 발달 단계에 따라 학습 목적을 심화했다. 이와 같은 교육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환경교육센터는 현장, 문화예술, 매체, 직접 행동이라는 네 가지 교육 방식을 취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생태 문제를 직접 탐색하는 기회와 예술을 매개로 생태적인 메시지를 감상하거나 창작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실천하고, 다양한 교육 대상에 맞는 매체를 제작하고 보급하고, 시민들과의 접점에서 생태소양을 체득하고 생태행동을 실천하는 교육 또한 병행했다.


환경교육센터의 주요 교육 주제, 목적, 방식 (환경교육센터 30주년 기념 후원의 밤 발표자료 참고 및 재구성)


 30주년의 역사만큼 다양하고 구체적인 고민을 통해 구축된 철학과 주제, 대상, 방법을 갖춘 환경교육센터는 앞으로 예술을 매개로 보다 적극적인 소통을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환경교육센터는 기후위기로 슬픔과 무기력에 빠진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게 흐르고 있는 진실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게 해주는 문화예술의 힘에서 그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에 문화예술에 기반한 환경교육을 앞으로의 비전으로 삼고자 합니다.


후원의 밤에 전시된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후위기를 담은 결과집.

 센터의 비전을 듣자 나를 자문단으로 초대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센터의 향후 계획은 내가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생태전환교육의 방향성과 맞닿는 점이 많았다(환경교육센터인스타그램). 그간 나의 주제인 예술 언어의 힘, 즉, 과학과 기술, 논리적인 데이터로 설득할 수 없는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하며, 행동을 견인하는 그 힘을 환경교육전문기관에서도 주목하고 있다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 환경교육센터는 새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2022년 모두를 위한 기후예술학교를 열었다. 해당 학교는 영상, 연극 장르 예술가와 함께 예술을 매개로 실천할 수 있는 환경교육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연구였다. 연결된 링크에서 예술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환경교육센터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기사, 영상)


고요히 작은 생명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문학과 미술


 후원의 밤 행사장 한편에는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환경교육센터에서 문화 예술을 접목해 실행해 온 환경 교육 사례를 전시한 것이었다. 첫 번째 섹션에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기후위기를 엿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이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어린이가 불탄 산에 대해 쓴 시화가 눈에 띄었다. 반팔을 입어도 더웠던 아이는 산속 동물과 나무, 바닷속 물살이와 식물의 안부를 물었다. 이어지는 <기후생태위기 X 청소년의 시선> 전시에는 기후생태위기의 당사자로서 청소년의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앞으로 뜨거운 지구에서 우리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가야 할 청소년들들은 기후위기를 마주한 자신들의 몸과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앞으로를 위한 선택을 기술했다.

 전시된 청소년의 글 중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오마주한 한 학생은 무감각적으로 행하는 '살생'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시간을 두고 읽으며 김복희 시인의 시 <요정고기>를 떠올렸다. <요정고기>에서 시인은 희생되는 동물의 혼을 고기요리의 뜨거운 김에 빗대어 표현한다. 그리고 고기에게 영혼이 있다는 생각을 마치 판도라의 상자 앞에 선 것처럼 묘사한다. 독자로 하여금 고기 앞에서 망설임을 불러일으키는 <요정고기>처럼, 전시된 작품 <인간실격> 또한 판도라의 상자 같았다. 어쩌면 이 시를 쓴 청소년은 너무 일찍 비밀을 알아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인간으로서 연민과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갈 청소년들의 미래를 상상했다. 그리고 이런 상상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학과 그림의 힘에 다시금 동요됐다. 이렇듯 문화예술은 기후생태위기로 변화하는 세상을 감각하고, 해석하는 시선을 오롯이 담는 환경교육의 방법으로 적절히 활용되고 있었다.


(좌) 어린이의 시선으로 기후위기를 엿보다 전시 작품, (우) 청소년들의 시선으로


환경교육을 위한 고민의 연대

 

 ‘논리적인 과학의 언어부터 마음을 나누며 상상하는 예술의 언어로 환경교육을 실천한다.'는 환경교육센터의 새로운 비전은 공동체적 연대에 기반한 상호 학습을 통해 개인적 실천부터 문화와 시스템의 전환을 지향했다. 2030 SEEDS 자문단은 새 비전에 동의하는 20-30대 디자이너, 무용수, 예술교육가, 환경교육가 등으로 구성되었다. <우정의 언어 예술>을 쓰며 상상했던 국내에서 생태전환을 시도하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진짜 이뤄지게 된 셈이었다.

 연령과 관심사, 지향점이 비슷한 이들이 모이자 서로의 경험과 관점으로부터 배우는 게 많았다. 우선 미팅 때마다 나누는 먹거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충무로 인근의 비건 음식점들, 접시를 대체한 뻥튀기, 박스에 주스를 따르는 레버가 달려 있는 사과음료가 기억에 남는다. 서로의 취미나 일상을 이해하며 생태 여가의 다양성을 배우기도 했다. 요가와 명상, 해안 정화 활동을 비롯한 심해 청소 등 몸이 가 닿는 곳마다 자연과 공생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었다. 무용과 디자인, 예술교육으로 실천해온 기후행동 사례도 흥미로웠다. 환경교육 전문강사로 활동해 온 분들과는 기존 환경교육과 예술을 접목한 환경교육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환경 교육 현장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대화였다. 서로 배움에 기초해 우리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고, 환경교육센터에서 기존에 실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다각도로 나누는 실험적인 아이디어와 생활 방식이 나의 생태전환의 여정에 현장성을 더했다.


환경강사 대상 <공존사전> 워크숍


 센터에서는 환경교육을 실행하는 분들과도 예술 언어의 가능성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해 주셨다. 2023년 6월부터 진행해 온 생태시민 양성 교육의 일환으로 <우정의 언어 예술> 북토크와 <공존사전> 워크숍을 진행했다. 참여자 대부분이 환경교육에 종사하시거나 관심 있는 시민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무척 궁금했다. (링크)


어스돔에서 진행한 공존사전 워크숍.


 충무로 어스돔에서 진행된 <공존사전> 워크숍은 최근에 만난 야생동물을 떠올리고 몸짓으로 그 존재가 되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각자 떠올린 야생동물의 입장에서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전 <공존사전> 워크숍에는 일상 대화 파트가 없었다. 예술체험이 낯선 환경교육가들을 위해 연극을 하듯 일상의 에피소드를 나누는 방법을 추가했다. 동물이 되어 일상에 대해 수다를 떨다 보니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명의 삶의 터전의 중요성이 피부로 와닿았다.


'우리 집 주변에 내가 좋아하는 먹이가 안 보여서 이사를 가야 되나 고민이 돼.', '산에 사람이 많아져서 요즘은 둥지를 짓기가 어렵네.'


아름다운 이미지 이면에 다양한 생태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몸짓 활동 후 천연물감 패턴지로 동물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콜라주 활동을 했다. 참여자들의 작품에는 땅, 하늘, 바다, 풀, 습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인간의 개입으로 곤란을 겪는 곤충, 양서류, 포유류, 새의 목소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콜라주 작품 주제는 반려동물 유기, 소음공해, 가뭄, 무더위, 무분별한 제초제 사용, 보호종에 해당하는 양서류 채집 등 주요한 생태 문제를 담고 있었다. 참여하신 분들은 그간 환경교육 강사로 일해오며 전달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생태문제를 이렇게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음에 만족감을 표현했다. 워크숍에 이어 진행된 <우정의 언어 예술> 북토크에서는 예술 언어를 통해 촉진하는 생태적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을 쓰는 여정은 내가 그간 생태계가 맺어온 관계의 균형점을 재조정하고, 이 새로운 관계를 표현하는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나누었다. 행사는 나의 여정에 공명하는 기획자님의 후기로 더욱 의미 있게 마무리되었다.


<공존사전> 워크숍을 통해 이 자리가 아니었음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를 수많은 우리 주변에 작은 존재들이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로드킬 당한 개구리, 불꽃 사이로 날아가던 까마귀, 논 사이에 숨어 있던 메뚜기, 오염된 강에 살던 청둥오리 등 수많은 동물들의 이야기가 터져 나왔어요. 그리고 <우정의 언어 예술> 북토크에서 예술 언어는 인간이 기존에 생태계와 맺고 있던 불균형한 방식을 탈피해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실현하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러한 상상력을 경험하는 것이 구체적인 기후행동에 필수적인 여정이라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자문단 활동은 생체시계가 무너져 역대 최고온도를 기록했던 2023년 겨울 마무리 됐다. 얼마나 더 가까운 일상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변화를 상상해야 지구의 온도를 전복시킬 임계점에 다다를 수 있을까. 쉬이 답할 수 없지만, '질문'과 '자문'으로 연결된 ‘공명'의 연대는 지속적인 울림으로 나를 움직인다. (계속)

 


2030 SEEDS 자문단으로 초대해 주신 (사)환경교육센터에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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