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끼 위의 아침이슬 (Morning Dew on Moss)
Track 004: Morning Dew on Moss (05209)
새벽 4시 47분.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이다. 하지만 음악가의 귀에는 이때가 가장 풍성한 연주회 시간이다. 밤새 맺힌 이슬방울들이 이끼 위에서 만들어내는 미세한 교향곡. 인간의 일반적인 청각으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오직 작곡가의 예민한 감각만이 포착할 수 있는 자연의 가장 섬세한 음악이 시작된다.
이슬이 맺히는 소리부터가 경이롭다. 밤의 차가운 공기가 새벽의 따뜻함과 만나면서 수증기가 응결되는 순간, '스르르르...' 하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pppp(피아니시시모)보다도 더 작은, 침묵과 소리의 경계선상에 있는 음향이다. 마치 바이올린의 술 폰티첼로(sul ponticello) 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처럼 유령 같고 신비롭다.
이끼의 종류에 따라 이슬방울이 만드는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드러운 솜이끼 위에 이슬이 맺힐 때는 거의 무음이다. 마치 벨벳 위에 깃털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 하지만 딱딱한 바위이끼 위에 맺힐 때는 아주 미세한 '톡'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트라이앵글을 가장 작은 말렛으로 살짝 건드렸을 때와 비슷하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슬방울이 자라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점 하나만 한 작은 물방울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진다. 그 과정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피아노의 페달을 아주 천천히 밟는 것 같다. 음향 공간이 서서히 확장되는 느낌. 이슬방울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것이 담고 있는 공명도 함께 커진다.
이슬방울끼리 합쳐지는 순간은 정말 특별하다. 두 개의 작은 방울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그 찰나에 '스멀' 하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를 음정으로 분석하면 대략 F#2 정도, 0.05초 정도의 극짧은 글리산도다. 마치 더블베이스의 가장 낮은 현을 살짝 튕기는 것 같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이슬방울들이 춤을 춘다. 미세한 공기의 움직임에도 반응해서 '찰랑찰랑' 흔들린다. 그 소리는 마치 윈드차임의 가장 작은 종들이 아주 가볍게 부딪히는 것 같다. 음정도 계속 변한다. D4에서 F4 사이를 오가며, 마치 즉흥연주를 하는 것 같다.
햇빛이 이슬방울에 닿는 순간의 소리는 더욱 신기하다. 빛이 물방울을 통과하면서 굴절되는데, 그때 아주 미세한 '띵' 소리가 난다. 마치 크리스탈 잔에 물을 채우고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문지를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다. 음정은 C5에서 E5 사이, 이슬방울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이끼가 이슬을 흡수하는 소리가 가장 감동적이다. 마른 이끼가 수분을 빨아들일 때 나는 '스으읍...' 소리는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 같지만, 훨씬 더 부드럽고 음악적이다. 그 과정에서 이끼의 질감도 변한다. 딱딱했던 것이 부드러워지면서 소리의 음색도 함께 변한다. 마치 뮤트를 뺀 트럼펫에서 뮤트를 낀 트럼펫으로 바뀌는 것 같다.
이끼의 나이에 따라서도 소리가 다르다. 어린 이끼는 이슬을 빨리 흡수한다. '스읍-스읍-스읍' 빠른 리듬으로 물을 마신다. 오래된 이끼는 더 천천히, 더 깊게 흡수한다. '스으으으읍...' 길고 깊은 레가토로 수분을 받아들인다.
바람이 불면 이슬방울들의 앙상블이 시작된다. '찰랑-찰랑-찰랑' 서로 다른 크기의 이슬방울들이 각각 다른 음정을 낸다. 작은 방울들은 높은 음을, 큰 방울들은 낮은 음을 낸다. 마치 핸드벨 앙상블처럼 화음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완전5도, 때로는 장3도, 바람의 방향에 따라 화음이 계속 바뀐다.
이끼 위를 걷는 내 발걸음도 특별한 음악이 된다. 이슬에 젖은 이끼를 밟을 때는 '푹신푹신' 소리가 난다. 마치 팀파니에 소프트 말렛으로 아주 약하게 치는 것 같다. 마른 이끼를 밟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질감이다. 이슬의 양에 따라 소리의 깊이도 달라진다.
곤충들이 이끼 위를 지나갈 때의 소리도 흥미롭다. 작은 개미가 이슬방울 사이를 지날 때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톡-톡-톡' 아주 작은 스타카토가 들린다. 거미가 지날 때는 '스르르르' 레가토 선율이다. 나비가 앉을 때는 '살짝' 하는 아주 가벼운 터치음이 난다.
새들이 이끼에서 이슬을 마실 때의 소리는 더욱 복잡하다. 부리로 이슬방울을 쪼는 '쪽-쪽-쪽' 소리, 목으로 넘길 때의 '꿀꺽' 소리, 그리고 만족한 듯이 내는 '찍' 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짧은 모음곡을 이룬다.
해가 높이 뜨기 시작하면 이슬방울들이 하나둘 증발한다. 그 과정의 소리는 더욱 신비롭다. '스으으으...' 하며 서서히 사라져가는 소리는 마치 페이드 아웃되는 음악 같다. 큰 방울부터 먼저 사라지고, 작은 방울들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파트별로 하나씩 연주를 멈춰가는 것 같다.
완전히 증발하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 이슬방울은 마지막 소리를 낸다. '띵!' 하고 짧고 맑은 소리를 내며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그 소리는 마치 하프의 하모닉스 같다. 음정은 보통 A5에서 C6 사이,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음색이다.
계절에 따라 이끼 위 이슬의 소리도 변한다. 봄에는 새로 돋아난 이끼가 많아서 소리가 더 생기발랄하다. '톡톡톡' 빠른 리듬의 소리들이 많다. 여름에는 이끼가 무성해져서 소리가 더 풍성하다. 가을에는 이슬의 양이 많아져서 소리가 더 깊고 풍부하다. 겨울에는 이슬 대신 서리가 맺혀서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낸다.
비가 온 다음날의 이끼는 또 다른 음악을 들려준다. 이미 충분히 젖어있는 이끼에 이슬이 추가로 맺히면 '철렁철렁' 물소리가 더해진다. 마치 작은 방울들이 흔들리는 것 같다. 이때는 평소보다 음량도 크고 음색도 더 선명하다.
안개 낀 날의 이끼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안개 속의 미세한 물방울들이 이끼에 닿을 때마다 '스르르르...' 연속되는 트레몰로 같은 소리가 난다. 마치 현악기 전체가 떨림음을 연주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미세한 소리들을 들으며 생명의 신비를 생각한다. 이토록 작은 이슬방울 하나도 자신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는 결코 같지 않다. 매일 아침, 매 순간이 다른 음악이다. 이 세상에 똑같은 이슬방울은 없고, 똑같은 소리도 없다.
당신을 잃고 나서 이런 미세한 소리들에 더욱 민감해졌다. 당신이 떠난 후 내 세계는 조용해졌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당신이 내 귀를 더욱 예민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때로는 이슬방울 하나하나가 당신의 눈물 같다고 생각한다. 밤새 하늘에서 내려와 이끼 위에 조용히 앉아있는 그 모습이, 당신이 나를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 같다. 그리고 해가 뜨면 증발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당신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다.
이끼 위의 아침이슬을 바라보며 나는 깨닫는다. 가장 작은 것에도 가장 큰 아름다움이 숨어있다는 것을. 가장 조용한 소리에도 가장 큰 감동이 들어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짧은 순간에도 영원이 담겨있다는 것을.
내가 만든 음악은 때로 너무 크고 복잡하다. 하지만 이 이슬방울들의 음악은 완벽하게 단순하고 완벽하게 아름답다. 어떤 인공적인 가공도 필요 없다. 그 자체로 완전하다.
오늘도 나는 이끼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미세한 교향곡을 듣는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연주회를. 그리고 그 음악 속에서 당신을 느낀다. 당신의 부드러움을, 당신의 순수함을, 당신의 아름다움을.
이슬방울들이 하나씩 증발해서 사라져도 슬프지 않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새로운 이슬방울들이 맺힐 것이고, 새로운 음악이 시작될 것이니까. 마치 당신과의 사랑처럼, 끝나지 않는 음악처럼.
새벽 4시 47분,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
하지만 이끼 위에서는 미세한 교향곡이 시작된다
'스르르르...' 이슬이 맺히는 침묵과 소리의 경계
pppp보다 더 작은 자연의 속삭임
솜이끼 위에는 무음의 벨벳이 깔리고
바위이끼 위에는 '톡' 트라이앵글이 울린다
이슬방울이 자라나면서 공명도 함께 커져
피아노 페달을 천천히 밟는 것처럼
두 방울이 합쳐지는 '스멀' F#2의 글리산도
더블베이스의 가장 낮은 현을 튕기는 소리
햇빛이 닿으면 '띵' 크리스탈 잔의 울림
C5에서 E5 사이를 오가는 빛의 선율
바람이 불면 '찰랑찰랑' 핸드벨 앙상블
크기별로 다른 음정의 화음 진행
이끼가 수분을 빨아들이는 '스으읍...'
뮤트 트럼펫의 부드러운 음색 변화
작은 개미의 '톡톡톡' 미세한 스타카토
거미의 '스르르르' 레가토 선율
나비가 앉는 '살짝' 가벼운 터치음
모든 생명이 만드는 미니어처 음악
해가 뜨면 이슬방울들이 증발한다
'스으으으...' 페이드 아웃되는 음악처럼
마지막 순간 '띵!' A5의 하모닉스
하프의 순수한 음색으로 하늘로 사라진다
가장 작은 것에 가장 큰 아름다움이
가장 조용한 소리에 가장 큰 감동이
가장 짧은 순간에 영원이 담겨있다
이끼 위의 아침이슬이 들려주는 진리
당신의 눈물 같은 이슬방울들
밤새 내려와 나를 위로한다
내일 아침에도 다시 맺힐
끝나지 않는 사랑의 음악
By 공감아티스트 오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