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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고가의 이어폰에 집착했다.
수중에 있는 돈은 30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어폰을 샀다. 음악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귀가 예민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흔히 말하는 ‘막귀’였다. 절대 음감이 있지도 않았고, 드럼 소리와 베이스 라인을 간신히 구분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어폰을 직접 듣고 선택하기 위해 청음샵을 돌아다녔고, 고심 끝에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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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지도교수님이 지인에게 얻은 표가 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별 기대는 없었다. 더군다나 전날 설계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새운 상태여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따라갔다. 그렇게 무대가 시작하는 순간, 눈을 뗄 수 없었다. 배우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진동이 다가왔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소리에 몸이 울렸다. 그건 ‘듣는 것’이 아니라 몸이 같이 ‘진동하는 것’에 가까웠지 않았나 싶다. 힘 있고 기분 좋은 진동에 몸이 울리는 기분. 밤을 새운 상태에서도 몰입하게 되었다.
그 뒤로 비싼 이어폰을 사기 시작했다. 그때의 감각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뭐든 해보고 싶었다. 일상에선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소리. 그것을 이어폰을 통해 다시 느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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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는 ‘황인용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가 있다. 건물의 용도는 명확하다. 음악을 듣는 공간. 입장료를 내고, 커피를 한 잔 받고, 자리에 앉는다. 좌석은 모두 정면의 스피커를 향해 있다. 누구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음악이 끝나기 전엔 자리를 뜨지 않는다. 마치 연극 무대처럼, 음악은 여기서 하나의 연극이 된다.
스피커는 오래되었다.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했다. 스피커의 드라이버는 전 세계에 10대도 남아 있지 않다는데, 그 낡은 기계에서 나오는 울림은 믿기 힘들 정도다. 음들이 떠 있지 않고, 무게감 있게 다가 온다. 밀도 있고 무겁다. 귀가 아니라 몸 전체가 울려서, 듣지 않고 촉각으로 전해지는 것 같은 감각이다.
나는 꼭 평일에 방문한다. 사람이 최대한 없는 한적한 시간에, 스피커와 어느 정도 가까운 좌석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천장을 바라보고, 창에 보이는 숲을 보고, 멍도 때리다가, 핸드폰도 하곤 한다. 그렇게 5시간 정도 지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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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삶에서 떼낼 수 없는 것 같다. 특히 좋은 울림을 맞는 경험을 하면 더욱더, 그걸 찾기 위해 갈구하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이를 현실에서 자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교향악단이 있는 큰 홀, 대형 극장의 뮤지컬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 카메라타는 그런 욕구를 채워주는, 서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이다.
장소: 황인용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
주소: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83
건축가: 조병수 건축가
- 약 1만 원 정도의 입장료가 있습니다.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공간의 재밌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