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덕궁 후원은 오래된 수목과 연못, 나직한 정자가 흩어져 있는 곳이다. 겉으론 조용하고 질서가 있지만,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사람 손이 미치지 못하는 비탈과 잡초 더미가 곳곳에 있다. 담장 너머에서 나는 바람 소리와, 나뭇가지가 툭 부러지는 소리가 때때로 기척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곳을 걸을 때마다 이상하게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가 그 숲속 어딘가에 여전히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2.
사도세자는 그곳을 자주 걸었다. 정조가 아직 세자도 되기 전, 어린 나이의 아버지는 이미 격심한 불안과 분노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록에는 사도세자가 창덕궁 후원에서 칼을 휘두르며 달렸다는 기록이 있다. 때로는 혼잣말을 하고, 때로는 나무를 향해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영화 사도에 나오는 무덤이 있던 공간또한 이곳이다. 엄숙한 궁의 다른 공간들과 달리, 후원은 그를 감추고 도망치게 하는 장소였다.
나는 그가 후원에 남긴 그림자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광기라 불렀고, 누군가는 감당하지 못한 슬픔이라 불렀다. 후원은 궁 안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였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외로웠던 사람이 찾았던 유일한 피난처였을지도 모른다.
3.
조용함은 때때로 가장 큰 소음이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절박함과 고통을 분출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은 비원에 머물렀다. 그는 숨었고, 모두는 그를 보지 않았다.
궁인들은 사도세자를 볼 때마다 눈을 피했고, 왕인 아버지는 아들을 두려워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감금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 결국 뒤주에 갇혀 죽었다.
뒤주, 이름조차 어쩐지 잔인하게 들리는 그 나무 상자 속에서, 그는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채, 사라졌다.
4.
그의 아들 정조는 왕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후원에 머물렀다. 옥류천과 애련지를 거닐며 책을 읽고, 시를 지었다. 겉으로는 유려한 풍경 속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자태였지만, 어쩌면 그는 아버지가 걷던 그 길 위에서, 아버지가 남긴 보이지 않는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었던 존재를, 그리고 끝내 손잡지 못했던 존재를.
사도세자의 광기는 단지 개인의 파열이 아니라, 누구도 그의 속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시대의 외면이었다. 보는 것, 안다는 것, 그리고 곁에 있다는 것의 간극을 우리는 여전히 잘 모른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먼저 고개를 돌린다. 그가 보는 세계가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어쩌면, 그 낯선 풍경 속에 함께 들어가, 잠시라도 함께 걷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보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지나쳐 온 건 아닌가, 그 조용한 고통을 '이해 불가능'이라 단정짓고 외면했던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장소: 창덕궁 비원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창덕궁 비원은 특별 개방때만 들어갈 수 있으므로, 날짜를 잘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공간의 재밌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