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공대언니 Dec 04. 2017

24. 크루즈 승무원, 이런 게 힘들었다

한 달간 지겹도록 듣던 한 마디, Do You Speak English

'Do You Speak English?' 


눈물겨운 합격 통보를 받고 크루즈에 승선하기 전까지

하루를 1년 같이 그동안 못 봤던 드라마를 몰아보고 만화책을 쌓아두고 봤었어. 


합격하기 전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죽자고 9시간씩 영어공부를 했는데

합격 레터를 받고서는 그나마 2-3시간 미국 드라마 보는 게 영어공부의 전부였지. 


입사 후 닥치게 될 현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세상 즐겁게 3개월을 보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특히 언니같이 직무경험이나 해외 경험 없이 입사하는 경우는

합격 후의 시간을  그렇게 의미 없이 만화책과 함께 보내면 입사 후 식겁 잔치하는 거였어. 


2008년 12월 8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루즈 승선하는 날.  

60개국 이상의 승무원들과 버라이어티 한 크루즈 생활을 하게 될 것에 대한 설렘도 잠시, 

프런트 데스크에 바로 투입이 되면서부터 알 수 없는 업무들로 빡센 적응 훈련이 시작 됐거든. 


사진출처 : http://www.royalcareersatsea.com

Guest Service Team의 주요 업무는 고객 응대하는 일이니까

친절함, 서비스 마인드, 융통성, 문제 해결 능력만 있으면 업무가 다 해결될 줄 알았어.


그래서 호텔 실무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었고

면접 준비 때 공부했던 프런트 데스크에서 하는 일들에 대한 기본 정보만 가지고 입사를 한 거야. 


그런데 국가별 visa 법에 따라 필요시 현장에서 visa를 발급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여기서 말하는 visa는 우리가 긁고 다니는 Visa 카드 아니다 얘들아, 국가가 외국인에 대하여 입국을 허가하는 입국사증의 visa를 이야기하는 거야

여행자 수표나 개인수표를 취급하는 등등 상상 초월의 어렵고 낯선 업무들이 쏟아졌고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영어 발음의 컴플레인까지 쏟아지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했지.  


업무적응도 미치겠는데  

싱가폴, 인도, 필리핀 영어로 막 소리를 지르고 컴플레인을 하면 언니는 그저 서서 웃지요. 

말인지 막걸리 인지 알 수 없는 외계어가 들려올 때마다 언니는 눈만 깜빡깜빡 거리며 서 있었고

급기야 열불 터지던 승객들이 던진 그 한마디. 


'Do You Speak English?' 


야, 나도 묻고 싶다. 제발. 

'Do you speak english?' 냐고. 



[기억에 남는 컴플레인 예]

'(멕시코 승객) 나 베트남 비자 신청 안 했어. 비자 없어도 문제없어? 문제 생기면 너에게 책임을 물을 거야' 

'인터넷으로 보던 사진이랑 실제 방이 왜 달라? 창문이 더 크고 더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 해 당장. 아니면 너에게 책임을 물을 거야.' 

'내 캐리어 두 개 아직 못 받았어. 공항에서 트랜스퍼가 안된 거 같아. 그 안에 중요한 물건 다 있단 말이야. 내일 당장 받을 수 있게 해결해놔.' 

'나 베지테리언이라고 분명 얘기했는데 왜 메인 다이닝에서 나만을 위한 테이블은 따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거지? 당장 캡틴 불러와.' 

'우리 딸 아직 16세밖에 안됐어. 그런데 어떻게 클럽 라운지에서 춤을 추고 있지? 미성년자 출입 못하게 단속 똑바로 안 할 거야? 이런 식으로 안전 관리하니 너네들?'

'나 인터넷 딱 5분만 썼는데 왜 정산에서는 50분이라고 나오지? 돈 못줘. 캡틴 불러와. 따져야겠어.' 

'(데스크에 와서 다짜고짜) 넌 해결 못하니까 캡틴 불러와. 너에겐 한 마디도 안 할 거야. 캡틴이랑만 이야기할 거야.' 


이런 컴플레인들 앞에서 언니는 완전 꿀 먹은 벙어리였고

그럴 때마다 승객들이 언니 때문에 더 열 받아서 펄쩍 뛰고 난리가 났었지.


처음 한 달 동안 승객들로부터 Bad Comment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몰라.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어 정말.

 

인터넷 연결 문제, 객실 시설 관련 문제, 크루즈 내 서비스 관련 문의, 기항지 여행정보, 기항지 VISA 발급 문제, 외환 환전업무 등 다양한 이슈들로 프런트 데스크를 방문하는 승객들에게 Guest Service Officer 들은 속전속결로 승객들의 요구사항에 솔루션을 줘야 해. 


호텔에서 일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업무 매뉴얼 book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컴플레인을 마주할 때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호텔 클럽이 지금 몇 층에 있는지 파악도 못했는데 미성년자 출입에 대한 법이 어쩌고 저쩌고, 국가별 여행 비자 관련 업무 페이지는 아직 읽어보지도 못했는데 비자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저도 몰라요' 이럴 수는 없잖아. 


그럴 때마다 언니 옆에서 근무 서던 직원들이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해 줬었어.

눈물 나게 고맙긴 했는데 그걸 또 슈퍼바이저에게 그대로 보고를 하더라. 덕분에 슈퍼바이저에게 제대로 찍혀서 업무 적응기간이 더욱 고달팠었지. 


알아 들기 힘든 영어,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배우는 것도 힘든 부분이었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동료들 때문에 마음이 더욱 힘들더라.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이 곳, 

화려하고 환상적인 이 곳에서의 처음 한 달은

기댈 사람도 없고 도망갈 곳도 없는 감옥 같았어.

직무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직무경험도 중요하고 영어 실력도 중요해



해외에서 근무하기 위해서 반드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못해도 되는 것도 아니야. 

(단, 업종과 부서에 따라서 유창한 실력이 요구되는 곳도 있음.  그런 경우에는 채용공고 상 자격요건에서 유창한 영어실력을 요구함


완벽한 문법, 버터발음으로 원어민처럼 말할 필요는 없어.  

대신, 자신이 지원하는 분야에서의 업무와 관련된 영어는 막힘없이 잘 말할 수 있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업종, 업무 관련 어휘를 많이 알고 있어야 되겠지?   


크루즈 승무원에 합격을 했다면 

호텔 실무영어, 호텔관광영어를 배울 수 있는 서적.

 

항공사 승무원에 합격을 했다면 

항공사 승무원 실무영어를 배울 수 있는 서적으로

현업에서 사용하게 될 영어를 입사 전에 미리 공부를 해야 되는 거야. 


언니의 경우처럼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로 지원을 해서 합격을 했다면

(혹은 직무 관련 실무 경험 없이 최종 합격을 했다면)

더더욱 입사 전에 업무 관련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 



최종 합격했다고 정신줄 놓고 고삐 풀고

월요일부터 불타는 이 밤을 외치면 된다? 안된다? 

절대 안 된다에 한표. 

매거진의 이전글 23. 크루즈 승무원, 누릴 수 있는 혜택과 생활편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