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기

2010, 2021 여름

by 공담소

울릉도는 대학교 스킨스쿠버 동아리 활동으로 처음 가보았다. 나의 첫여름 원정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여러 다이빙 포인트가 있었겠지만 우리는 조류가 거의 없고 안전한 곳 중심으로 탐험을 했다. 신입에게는 딱이었다. 강사의 지휘 하에 선배들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됐다. 물에 둥둥 떠서 수영장에서 연습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았다. 부력조절기로 공기를 빼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수없이 했던 연습이지만 실제 바다를 마주하니 숨이 가빠졌다. 옆에서 짝꿍 역할을 해주는 선배가 곁에서 '잘하고 있다'는 미소로 안심시켜 주었다. 호흡기에 집중해 다시 차분히 숨을 쉬고, 다리를 뻗어 스쿠버 핀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under the sea~, under the sea ~'

귓가에 노래가 퍼지고, 눈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물 위에서 내려다 보아도 속이 빤히 보였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맑음이 배가 되었다. 유리구슬 속에 있는 것 같달까. 물고기와 함께 헤엄치는 기분은 어릴 적 티비에서 인어공주를 보던 기쁨보다 컸다. 이 신비함은 수영을 하라면 맥주병처럼 가라앉는 나를 '물 만난 물고기'로 만들어 주었다.


스쿠버 외에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관광이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은 데다,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다이빙 업체에서 운영하는 숙소 주변에는 마땅한 편의점도 하나 없었다. 카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방 언니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커피를 배달을 하는 모습을 그곳에서 처음 봤다. 우리의 일탈이라면 저녁을 먹고 30분쯤 걸어 시내로 나가 빵집 팥빙수를 먹는 것이었다. 5박 6일 정도의 일정이었던 것 같은데, 울릉도를 떠나는 날 아침에 산책 삼아 어느 폭포를 한번 구경하고 육지를 향하는 배에 올라탔다. 우리는 바닷속만 ‘쏙’ 보고 돌아왔다. 사실 그래도 충분했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체험했다는 그 자체로 충분히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울릉도는 교통편이 편치 않아 '적당한 여행지'로 쉽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배 타는 시간만 세 시간이 걸리니, 차라리 해외여행이 나을 수 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다시 가고 싶었다. 그 섬에서 시작된 청춘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2021년, 십 년이 훌쩍 넘어 결국 그를 다시 만나고야 말았다.


두 번째 울릉도 여행에서는 스쿠버는 하지 않고 온전히 여행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바다는 여전했다. 지난 10년간 많이 오염이 됐다지만 푸른빛 물 밑으로 바닥이 다 보인다. 그런데 반갑지 않은 손님도 있었다. 35도가 넘는 찜통더위도 함께 찾아왔다. 조금만 걸어도 입고 있던 스커트가 휴지처럼 젖어들었다. 베이지색 치마가 황갈색으로 변해 마치 실수를 한 듯 보여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섬 안에서 이동도 쉽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다 보니 일정이 조금만 틀어져도 버스를 놓쳐버리고는 삼십 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무엇보다 평지가 거의 없었다. 가는 곳곳이 오르막이고, 언덕이고, 산이었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픽업차량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버스정류장까지 가기도 쉽지 않았다. 시원하게 짜증이라도 부리고 싶지만 그럴 때는 또 눈앞에 절경이 펼쳐져 입을 막았다. 카메라에는 십 분의 일도 담기지 않는 풍경, 그리고 가슴을 뚫어주는 바닷바람이 '잘 왔다, 잘 왔다.' 노래를 불러주었다.


이번에는 이왕이면 독도도 보고 싶었다. 사실 필수 옵션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 안 가본 곳은 아직 너무 많고, 독도도 그런 곳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것도 없는 섬을 30분 보려고 배에서 왕복 세 시간을 보내는 건 비효율적인 선택인 것 같고, 심지어 독도에 발을 디딜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들을 '삼대가 덕을 쌓아야 입도할 수 있다'라고 했다. 내 삼대를 시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세 시간이면 울릉도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더 볼 수도, 여유롭게 쉴 수도 있다. 불확실성에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미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그랬다. 그런데 몸이 움직였다. 어느새 독도행 티켓을 손에 쥐고 있었다. 가슴이 시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섬, 우리를 깨우는 섬, 독도에 가야 했다.


배로 한 시간 반쯤 걸렸다. 우리가 탄 배는 입도를 시도했다. 창문밖 독도가 뿌옇게 인사를 해주었다. 선장님이 입도를 시도할 때마다 배가 크게 흔들렸다. 승객들의 염원을 담아 다섯 번 넘게 배를 가져다 댔지만, 반갑지 않은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입도 실패. 아쉽게도 배는 독도에서 멀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안내 방송이 나왔다. 모두 갑판 위로 나와 독도를 구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깎아지른 날카로운 암석 위에 푸른 양털이 덮여 있었다. 동도와 서도, 그 주변의 암초까지도 여기저기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의 뒷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우리나라 동쪽 끝에서 온몸으로 모든 것을 막아낸다. 매서운 바람도, 파도도 두렵지 않아 보였다. 배는 천천히 독도를 한 바퀴 돌았다. 거칠거칠한 표면이 보였다. 물결이 계속 그를 치고 있었다. 입도를 하지 못해 아쉬움도 조금은 있었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발걸음이 닿지 않아, 닳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미 독도는 첫눈에 가슴에 들어왔다. 충분했다.


배 위의 사람들과 섬 하나를 구경했을 뿐인데 친밀감을 느꼈다. 역사적 이슈가 더 크게 쏘아 올렸을 애국심, 독도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고마움,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모두에게 쏟아진 듯했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 어떤 말소리보다 펄럭이는 태극기 소리가 가장 크게 귓가에 울렸다.


울릉도와 독도를 가기로 한 건 애국심 때문은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한 규제가 가장 심한 때여서 해외여행이 막히기도 했고,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 했던 시기기에 탁 트인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특별한 곳이었으면 했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경험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두 번째 울릉도를 택했다. 우리의 신혼여행은 이렇게 값졌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