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요란법석

우리 집 동물원

by 공담소

이른 밤, 녀석이 탈출했다. 드라이기 코드를 꼽기도 전에 문을 박차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목욕하는 내내 문을 향해 서 있던 녀석이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알몸의 그는 포효를 내지르며 거실로 달린다. 우리 집 흑호가 달린다.

"크아앙-"


사냥감은 이미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덩치 큰 원숭이가 그를 반기더니 이내 엉겨 붙었다. 까만 털빛이 닮아서인지, 둘은 금세 한 덩어리처럼 뒤엉켜 씨름을 시작했다. 휘둘리고 던져지는 건 맹수인데, 정작 그는 자기가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포효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흰 양은 그 뒤를 쫓았다. 알몸으로 원숭이에게 달려드는 녀석을 붙잡아 겨우 속옷을 입히고, 그 위에 잠옷까지 걸쳤다. 임무를 마친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녀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니, 곧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헤-에"

청룡이 웃고 있다. 아직 뱀만 한 크기지만 눈빛만큼은 만만치 않다. 흑호와 원숭이의 싸움을 지켜보더니, 곧 익숙하다는 듯 제 할 일에 몰두했다. 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손을 뻗어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소파 끄트머리를 붙잡고 힘겹게 몸을 세우고, 다시 툭 주저앉았다가 또 일어났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균형을 잡고 서서 흑호의 포효를 따라 했다.

"캬아-"

코를 찡긋하는 표정도 제법이다. 푸르고 신비한 빛이 그를 감싸는 듯했다.


흰 양은 주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기 호랑이를 씻기느라 미뤄둔 설거지를 해야 했는데, 개수대가 이미 깨끗했다. 원숭이가 미리 다 치워둔 모양이었다. 민첩한 그는 현관 앞에 쓰레기봉투와 분리수거까지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양은 잠시 미안한 마음이 스쳤다. 빠른 몸을 가진 원숭이가 늘 많은 몫을 하게 된다. 무언가 보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순간, 빨래 건조기의 경쾌한 알림음이 울렸다.


양이 작은 방에서 건조된 세탁물을 꺼내 개키려는데, 어느새 청룡이 달려들어 따뜻한 옷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 잡히는 모든 걸 입으로 가져 넣는다. 양은 조용히 청룡을 들어 다시 거실로 데려다 놓는데, 그곳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으르렁-"

어린 호랑이가 제대로 약이 올랐다. 웃음기가 사라졌다. 자기는 고양이가 아니라며 울부짖었다. 녀석을 울리는 게 목표였던 원숭이가 '우끼끼- 우끼끼-' 계속해서 그를 놀려댄다. 조금만 더 하면 터질 것이다. '조그만 녀석이 무슨 호랑이냐'며 덤벼보라고 들쑤신다. 흑호가 달려들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기 맹수를 꽉 껴안고 놔주질 않는다.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멀찍이 지켜보던 청룡은 눈빛이 흔들리더니 곧장 흑호를 향해 기어갔다. 오빠를 구하러 가는 듯한 작은 몸짓이었다. 고요하던 양은 돌변하여 서슬 퍼런 눈빛을 쏘았다. 조용하고 점잖게 입을 떼었다.

"울리지 말라고 했지..."

단호한 목소리에 원숭이가 움찔했다. 흑호가 풀려나 양의 품에 안겼다.

"엉엉... 엄마, 아빠가 이렇게, 이렇게, 했어요... 엉엉"

호랑이는 억울한 듯 당했던 일을 일렀다. 원숭이는 재빨리 청룡을 안아 방패 삼았다. 청룡을 안고 있으면 양이 쉽게 들이받지 못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저녁마다 거실은 울음과 웃음이 뒤엉킨다. 누군가는 눈빛을 쏘고, 누군가는 장난을 치고,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리고, 또 누군가는 쓰러졌다가 일어선다. 흑호와 청룡을 키우는 양과 원숭이라니... 이 집의 소란은 어쩌면 숙명일지 모른다.

수요일 연재